(관찰일기) 공감

다큐멘터리를 보고

by 올제

그는 23년간 대동물 수의사였다. 의사 가운을 입어서 까맣게 탄 얼굴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의·치·한·수의예학과만 살아남은 현재의 대학 입시 추세로 보면 하얗고 뽀송뽀송한 의사 가운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귀여운 펫을 돌보고 싶어 하고 자신처럼 대동물 전공 희망자는 40명 중에 1명 있을까 말까 한다고 했다.


새벽에도 한밤중에도 그는 항시 대기다. 전화가 오면 시골 둑길을 터덜터덜 달려간다. 축사에는 산통을 견디다 못한 어미 소가 눈물을 글썽이며 쓰러져 있다.


한밤중에 축사에 들어간 그는 영락없는 산파다. 어미 소에게서 송아지를 끄집어내고자 땀을 뻘뻘 흘리는 그를 보면서 눈물이 난다.


그의 노고에 공감하면서 대동물 수의사의 삶을 조명하고자 만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줄 안다. 감독의 뜻도 알겠다.


하지만 어미 소의 붉어진 눈망울의 뜻을 더 잘 알겠다. 대사 하나 없이 자신의 산통과 산고를 눈부신 카메라 불빛에 그대로 노출당한 어미 소의 민낯을 더 잘 알아듣겠다.


수의사가 평생 대동물 치료에 헌신하며 사는 것의 보람을 고백하는 순간에도, 핏덩이 송아지에게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모습이 카메라 앵글에 어슴푸레 잡힌 희미한 어미 소의 심정을 더 잘 알아듣겠다.


알아듣기 위해서는 꼭 말이라는 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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