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기) 제로섬 게임

by 올제

시간은 늘 나를 장풍처럼 뒤에서 밀어붙이는 것 같다.


이른 아침 싱크대에 휙 날려 보냈다가 설거지가 끝날 양이면 엘리베이터에 쿵 날려 보낸다. 일을 하고 있는데 또 일을 하라고 툭! 툭! 밀어붙인다.


나를 위한 시간이 나에게 있지 않다. 어딘가에 숨겨진 것만 같다. 시간에게 쫓기는 하루가 매번 휙휙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 ‘틈새’라는 시간은 아껴 써야 하고 잘 써야 한다. 볼 일을 보러 가는 사이 동선이 맞으면(가급적 맞추려고 하지만) 무슨 일이라도 하나를 쳐내야 한다. 하루를 아껴 쓰는 방법 중 하나이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는 ‘안 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게 있다. 나와 가족이 먹고 살 식재료를 사는 일이 그렇다.


스마트폰에서 스마트하게 구매하는 방법을 안다. 그러나 시장에서 아날로그로 사는 일을 좋아한다.


날씨가 지원을 해주지 않는 날이면 오늘처럼 대형마트를 이용하는데 주차를 하고 드넓은 진열대를 오가며 긴 계산대를 거치는 과정은 늘 ‘안 하면 안 되는 일’이라 하는 셈이다.


쇼핑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 쇼핑이란 일이 되고 마는 순간이다.


네모난 프라이팬이 보여서 계란말이를 할 때 쓸까 하고 담았다가 잠시 후 꼭 필요한가 하며 다시 가져다 두는데 아까 그 자리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 프라이팬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 대충 올려 두고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카트를 밀고 있다.


계산대에 서 있는데 앞사람이 구매한 양이 어마어마하다. 한참을 기다리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뒷사람을 보니 달랑 병 커피 두 개를 들고 서 있다.


“아저씨, 먼저 계산하세요.”라며 길을 내어 준다.


프라이팬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상쇄하는 순간이다.


계산을 마치고 야외주차장에 오니 아직 땡볕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장본 것을 차에 싣고 카트를 원위치에 두려니 한참을 가야 한다.


마침 차량 근처에 사람들이 카트를 두고 간 공간이 있다. 거기에 나의 카트도 슬쩍 밀어 넣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운전을 시작한다.


퇴근시간이라 도로의 차가 엄청 밀린다. 한참을 기다리다 겨우 좌회전을 할 순간 오른쪽에서 애절하게 깜빡이를 켜고 끼어들지를 못하는 차가 있다. “어서 들어오세요.”하며 자리를 내어 준다.


카트를 방치한 양심의 가책을 상쇄하는 순간이다.


제로섬 게임처럼 일상이 반복된다.


내가 마이너스가 되었을 때 나의 마이너스만큼 플러스가 되었을 누군가를 원망한 적이 있다.


내가 플러스일 때 마이너스로 내려갔을 누군가에게 미안한 적이 있다.


그저 그런 정도의 얕고 좁은 소견으로 살아가면서도 한 번씩 정의를 부르짖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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