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기) 의자

by 올제

시인 구상은 ‘지금 네가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자리, 이 의자에 왜 앉아 있는가? 시를 쓰기 위해서? 하루 종일 의자에 대해 생각하다가 의자에 대해 쓰려고 의자에 앉으니 도무지 의자에 대한 글이 하나도 쓰여지지 않는다.


저녁을 짓다가 노트북을 주방 싱크대에 올려놓고 식탁 의자를 빤히 쳐다본다. ‘너에 대해 써야 해. 아무 말이나 좀 불러 줘. 너는 어떤 마음이야? 무슨 생각을 하니?’


대답 없는 의자가 답답해서 내 몸을 ‘ㄴ’ 자로 만들어 의자가 되어 본다. 그대로 의자에 나를 포개고 의자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굳어버렸다. 말을 잃었다. 딱딱해진다. 움직일 수가 없다.


사람 1이 앉아 밥을 먹는다. 사람 2가 앉아 한숨을 쉰다. 사람 3이 앉아 방귀를 뀐다. 사람 4가 앉아 트림을 한다. 사람 5가 앉아 엉엉 운다. 사람 6이 앉아 휴대폰을 본다.


휴대폰 속에서 레이디 고디바가 알몸으로 말을 타고 있다. 남편인 영주가 세금을 내려주길 기도하며 당당하게 마을을 돌고 있다.


말은 의자를 닮았다. 고디바의 알몸을 안고 고디바의 마음을 고스란히 등에 받들고 천천히 마을을 돌고 있다. 고디바의 말은 그녀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안아주는 공간이고 시간이고 품이었다. 모든 걸 막 들켜도 되는 비밀의 안장을 내밀어 주었다.


식탁의 의자들이 방석을 안장 삼아 사람들의 비밀을 꼭 끌어안고 일어나 움직인다. 의자들이 테니스공처럼 생긴 발굽을 신고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거쳐 간 사람들의 한숨과 비밀과 힘겨움을 제 몸에 꾹꾹 눌러서인지 걸음이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아뿔싸!

현실의 신발을 벗고 공중에서 허우적거리던 사이, 설거지도 하지 못하고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였다.


이러다 의자에 제대로 한 번 앉지도 못하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관찰일기) 시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