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기) 시인처럼?

by 올제

“미스 고♬ ~~~ 미스 고~~~~ ♬♪” 꺾인 음이 한 번 더 꺾이고 또 한 번 꺾이는 노래였다. 가수는 짧은 순간에 그녀의 한과 슬픔과 애절함과 안타까움을 절절이 담아냈다.


한때 절대로 듣지 않던 트롯이 들리기 시작하니 세월은 이런 건가 싶다. 시선을 사로잡은 TV화면에 노랫말도 한 음 한 음 꺾이며 올라왔다.


“시인처럼 사랑하고 시인처럼 스쳐간 너. 계곡처럼 깊이 패인 그리움만 남긴 너”


주인공은 ‘미스 고’가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상처가 계곡처럼 깊이 패였단다. 노랫말을 다 읽어 보니 직유와 은유가 가득하다.


다른 건 다 이해가 됐다. 그런데 ‘시인처럼 사랑하고 시인처럼 스쳐간 너’라는 구절은 색다르게 다가왔다. 예전 같았으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지금은 ‘그러려니’가 되지 않는다.


이 노래의 화자는 ‘시인처럼’이라는 부분에서 뭔가 낭만적이거나 몽환적이거나 짧은 시간 자신의 마음을 뺏고 바람처럼 사라졌다거나 하는 느낌으로 상대를 원망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시가 안 써지는 나의 입장에서는 떠난 상대방이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얼마나 아프게 손을 놓고 아득히 사라져 갔을 지에 방점을 찍게 된다.


떠나간 ‘미스 고’를 대변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며 괜히 씁쓸해진다.


하지만 so what?


청소기 끄고 멈춰 서서 멍때리고 있는 나의 모습에 왠지 더 씁쓸해진다. 이럴 땐 하던 일이나 계속하는 게 최고다.


우웅~~~~~우우웅~~~ ♬♪


(청소기 소음이 트롯처럼 자꾸 꺾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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