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기다림
큰딸이 시집 간지도 십여 년이 지났다.
딸이 쓰던 방을 서재로 꾸몄다.
늘 제대로 된 서재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래간만 집에 온 딸은 자기 방이 없어진 것에 좀 섭섭해하는 것 같았다. 난 하나 남은 딸마저 결혼하면 방 4개의 큰집을 팔고 방 두 개나 세 개 집으로 옮길 생각이다. 그러면 차액도 좀 생길 테고 관리비도 좀 덜 들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들이 왔다가 자지도 못 하고 갈까 봐 걱정이 되는 것 같다.
아파트 같은 라인 같은 평수에도 두 노부부만 살면서 큰집을 지키고 계신 분들이 더러 있다.
그분들은 아이들이 손자 손녀를 데리고 오면 잘 곳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큰집을 갖고 두 부부가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와서 자고 가는 일이 일 년에 몇 번이나 있을까? 막연한 기대는 실망감을 느끼게 할 뿐이다. 지방도 아니고 같은 서울에 살면서 아이들은 왔다가 밤늦게라도 집으로 돌아가지 자고 가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다르다.
아이들이 와서 온 가족이 다시 모여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푹 자고 아침식사라도 한번 더 하고 가길 바란다.
그걸 바라고 그 큰집을 두 부부가 지키고 관리한다는 건 어쩌면 비 효율적 인지도 모른다.
막상 아이들이 왔는데 잠자리가 불편해서 가야겠다고 한다면 얼마나 미안하고 민망한 생각이 들까? 이런 생각 때문에 아이들이 결혼을 해서 다 떠나갔는데 집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게 대부분이다. 혹 결혼한 자식들이 독립해 살 여건이 안 돼서 함께 사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건 처가살이고 시집살이 일뿐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불편할 뿐이다. 능력이 안되니 참고 살아보자 해봐도 그건 결국 마음 상하는 일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몰라도 요즘같이 백세를 사는 시대에는 집을 줄여서라도 노후 자금을 더 만들어 놓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나이가 들어서 자식에게 기대는 것보다는 스스로 노후 생활을 해 가는 것이 자식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일 아닌가?
우리 부모 때는 자식들을 결혼시킬 때마다 집을 줄여가는 일이 흔했다. 다들 살기 힘들 때 모아둔 돈은 없으니 전답을 팔거나 집을 팔아야 했다.
그렇게 자식들을 모두 결혼시키고 힘든 노후 생활을 보내거나 자식에 의지해서 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니 젊어선 돈 버느라고 늙어서는 자식들 눈치 보고 살았다.
모두가 자식들만 위해서 살았던 착한 바보들이었다
요즘 부모들은 배울 만큼 배웠고 알만큼 알아서 경제적인 논리도 가치관도 확실해졌다.
자식들도 교육시킬 만큼 교육시켰다. 웬만하면 모두가 대학을 졸업시킨다. 그러니 자식들도 자기 앞가림은 스스로 하는 게 맞는 거다.
사회가 어렵고 힘드니 그렇지 못하는 자식들도 있겠지만 대학까지 교육시켰으면 스스로 독립하는 게 맞는 거고 그러는 것이 자식들의 미래에도 비전이 있는 거다. 미국의 자식들은 대학을 졸업하면 결혼을 안 해도 부모 곁을 떠나 독립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자식들이 안쓰러워서 데리고 있는 건 어쩌면 자식을 더 바보스럽게 만드는 일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모든 게 역경을 이겨내면서 강해진다.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말년이 좋아야 인생이 행복하다는 말도 있다.
자식들이 안쓰러워서 모두 퍼주고 자식 눈치 보면서 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부모가 재산이 있어야 자식들도 잘 보이고 싶어 자주 찾아온다. 궁색한 부모는 자식들도 잘 찾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내 노후는 내가 챙겨야 한다. 그게 부모 자식 간 서로 좋은 일이다.
아직도 착한 바보 같은 부모들은 자식들이 떠나간 빈자리를 채우고 싶어서 힘들어도 참고 사는 건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딸의 방문을 닫으며 많은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