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무엇으로 먹고사나

이관순의 손편지[30-07]

by 이관순

아버지는 무엇으로 먹고사나

서양 속담에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어요. 역사가 보여준 인과(因果)를

다시금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종이기도 합니다. 마크 트웨인이

“과거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더라도 분명 그 운율은 반복된다.”라고 한 말도

의미 심장합니다.


요즘, 22년 전 악몽을 떠올리며 근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아픈 역사가 반복되는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IMF사태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을 때, 나는 대학 강단에 있었습니다.


기업 도산에 가정 파탄, 실직자, 노숙자가 거리에 넘쳐나던 때 신입생들이

들어왔습니다. 신학기 강의실에서 상견례를 나눈 뒤 새내기들에게 물었어요.

“만약 여파로 아버지가 실직되거나 부도가 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눈을

감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떠들썩하던 강의실이 조용해졌습니다.


무작위로 8명에게 답을 들은 것은 현실을 읽는 학생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입니다. 답하는 남학생의 굳어진 얼굴, 입술을 깨물며 감정을 삭이는

여학생의 모습을 볼 때는 나도 시선이 흔들렸지요. 생각보다 학생들의

대답은 대견했습니다.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아버질 도와야죠.”

“일단 군대부터 가겠습니다.” 겉으론 깔깔대는 철부지 같지만

속으로는 나름 위기감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그중에도 인상적인 것은 ‘아버지와 여행을 가고 싶다’는 남학생의 말입니다.

왜 그런 생각을 갖느냐고 물었더니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고 싶어서”라는

말이 돌아왔지요. 평소 아버지와는 단답식 물음과 답이 대화의 전부지만,

상황이 달라지면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고 싶다는 겁니다.


학생들 응답에서 우리 사회의 경직된 ‘부자간 문화’를 봅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아버지와 영화구경을 같이 가본 학생이 단 한 명, 경기장은 2명,

음악회 전시회 등은 아예 없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가 겪는 어려움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그리 멀지도

않은 시절, 나물죽으로 허기를 채우며 보릿고개를 넘을 때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죽 숟갈을 들려주며 힘내 공부하라던 아버지, 전구를 넣어 터진

양말을 깁던 어머니도 그 좁은 공간 속에서 희망을 얘기했지요. 가족끼리

공유하는 희망만은 살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8년 IMF 환란의 시기엔 희망마저 위기에 몰렸습니다.

물질적 한파보다 진실로 무서운 건 정서적 한파입니다. 문 닫는 자영업자,

늘어나는 실직자, 청년 실업자... 불안한 것은 고립되는 가장, 기가 꺾인

가장, 그래서 희망을 놓고 표류하는 가장이 늘고 다는 것이죠.

뼛속 깊이 절여오는 외로움은 절망이란 병을 부릅니다. 여기에는 따뜻한

말 한마디, 손을 잡아주는 가족의 위로가 가장 좋은 치료제입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아버지의 낙심과 좌절에 대해 말했습니다.

상황이 악화될수록 대화는 단절되고, 무력감과 소외감은 더 커질 텐데,

그런 아버지들은 어디에서 위로를 받겠느냐고. 가정환경 탓에 도시락을

못 싸는 학생들이 부쩍 는다는데, 너희들은 대학에 진학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사람임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지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교양과목 첫 과제로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제시했습니다. 취지에 공감해준 학생들이 흔쾌히 따라 주었어요. 수신은

집이 아닌 아버지의 직장과 일터로, 발신은 학교 주소를 쓰도록 했지요.

예상대로 "주소를 몰라요." “어디 계시는지 모르는 데요.” 란 말이

잇달아 들렸습니다.

이 기회에 아버지가 다니는 직장(일터)이 어디에 위치하고, 내가 다니는

학교 주소는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둬라. 나의 소속을 분명히 해두는 것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첫걸음이라고 이해를 시켰습니다. 편지는 봉투에 넣어

우표를 붙이되 봉하지 말고 제출하게 했지요.

200여 통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안도한 것은 학생들이 생각보다

건전하고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차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표현만 없을 뿐, 생각은 멀쩡한 아들과 딸임이 편지마다 녹아 있었거든요.

이 과제는 기대 이상으로 성공했습니다. 학생들의 호응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아들과 딸의 편지를 받아 든 아버지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기특하다’ ‘잘 커줘 고맙다’ ‘큰 선물을 받았다’ ‘가슴이 짠하다.’

이로 인해 아버지가 답장을 보내오고, 틀어졌던 부녀관계가 회복된 학생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보너스를 받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여름방학 때

부자간 여행을 제의 받은 학생도 여럿 나왔습니다.


편지 한 장의 위력을 학생들이 직접 체험한 과제였지요.

이것이 인문학의 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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