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30-08]
외줄 위의 곡예사
2020년 봄의 착잡한 심정은 1998년 이래 처음입니다. 가정, 기업 등
경제주체가 벼랑에 몰리고 바이러스 앞에 문명세계의 민낯을 바라보는
씁쓸함까지 더해지면, 앨빈 토플러의 책 ‘미래 쇼크’도 감지 못한
바이러스 발 쇼크가 두렵게 떠올려집니다.
1998년 IMF 환란을 겪으면서 수많은 미래 예측서가 쏟아져 나왔지만,
20여 년 후 오늘의 피폐를 내다본 선견지명은 없었습니다. 선견이
부족하면 후견에서 찾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요.
이 시점에서 1998년 봄을 기억한다면, 나는 어떤 말을 할까. 아마도
‘아버지’라는 이름 밑에 밑줄을 두 번 칠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의
위상은 힘들고 어렵습니다. 아버지의 등짐은 줄지 않았고, 심리적 압박감은
예전보다 훨씬 더 정교해졌습니다.
아날로그 시대의 아버지, 디지털 시대의 아버지 상은 ‘코로나’를 분기점으로
또 한 번 크게 출렁일 것입니다. 아버지가 어떤 시대를 걸어왔는지를 보면,
앞으로 걸어갈 디지털 시대의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1998년 봄, 신록이 넘치는 남산 길엔 아침부터 늘어선 주차 차량들로
가득했었지요. 집에 실직했다는 말은 못 하고 남산으로
출근한 아버지들입니다.
이즈음 북한산, 도봉산에도 등산화, 등산복을 빌려 주는 신 업종이 성업을
이뤘습니다. 신사복 차림의 중년 남자가 수천 명씩 찾아드는 곳. 갈 곳 없는
아버지들을 박대하지 않고 넉넉한 품으로 받아준 곳은 산 뿐이었으니까요.
1998년 IMF 환란이 비등점을 향할 때, ‘그때를 아십니까?’를 제목으로 단
한 기업의 신문 광고가 우리 사회에 가슴 찡한 울림을 주었지요. 희생과
헌신의 한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상을 담은 전면 광고가 일간지에 실리면서
아버지의 허상과 실상에도 눈 뜨게 했습니다.
아내와 자녀들의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었던 광고 속 주인공도 세월 따라
세대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아날로그 시대의 아버지를 연민하던 자녀들이
그 자리에 올라서고, 그들의 자녀가 디지털 시대의 아버지를 연민합니다.
코로나 쇼크는 경제의 주름을 더 깊게 할 테고, 디지털 사회로의 빠른
이행과 기업들의 온라인화를 촉진하면, 우리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세상과 마주해야 합니다. 감싸주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가족들의 따듯한
터치가 중요한 때입니다.
20세기 말의 삼성 광고가 21세기 오늘의 아버지상을 반추하게 하는 것은
왜일까. 역사는 반복하는 것일까. 생각이 그때와 오늘을 오갑니다.
자신조차 잊고 열심히 살아온
아버지, 힘내십시오.
선배와 상사는 하늘이고 진리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설이 되어 버렸습니다.
똑 부러지게 똑똑한 후배들은 스스로가/ 하늘이고 진리일 따름입니다.
그 가운데 당신이 서계신 곳은 어디입니까.
주말도 휴일도 없이 언제나 바쁜 당신/ 제때 귀가는 고사하고 밤을 세 울 일은/
왜 그리 많았는지요./ 하지만 미안한 마음조차 잊고 살아야 하는/
늘 못난 남편으로 지내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애 담임선생님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몇 학년 몇 반인지, 친구는 몇 인지/
둘째 아이의 무릎은 왜 깨졌는지/ 충치는 몇 개나 뽑았는지도 모르는/
아버지는 아닙니까?
60년대 황무지를 맨손으로 일어나/ 70년대 바람 부는 언덕을 허위허위 올라/
80년대의 벼랑 끝을 외줄 타기로 돌아/ 어느덧 90년대를 사는 이 땅의 아버지
썩 자랑스러울 것도 없다지만 보릿고개/ 판자촌, 황톳길을 건너/
이젠 부끄러울 것도 없는 이 땅의 오늘을 만들어낸 아버지
힘내십시오, 이 땅의 아버지들이여!/ 당신은 시대가 요구한 희생자가 아니라/
역사 이래 가장 빛나는 이 시대를 만들어낸 주인공입니다.
열심히 살아오신 아버지가 계셨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합니다.
삼성은 이 땅의 모든 아버지께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1998년 봄, 삼성 그룹 광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