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되는 말, 독이 되는 말

이관순의 손편지[30-09]

by 이관순

복이 되는 말, 독이 되는 말


등산모임이 있는 날에 한 친구가 나오지 못했습니다. 손자를 봐야

한답니다. 그 사정을 모를 리 없지만 유독 한 친구가

버럭 소리를 냅니다.


“그 친구 왜 그리 살아? 그러니 허구한 날 붙잡혀 살지.” 그러자 다른

친구가 “자넨 손자가 지방에 있지? 옆에 있어봐 똑같아” 손자 양육이

논쟁으로 커집니다. “난 선언했어, 내가 애를 보면 성을 간다!”

‘키 작은 남자와는 절대 결혼 않는다’는 처녀, ‘난 죽어도 요양원에는

안 간다’고 한 선배, ‘딱 100세만 살 거야.’ 호언했던 대학 동기...

그런데 어쩌나, 다 헛맹세가 됐으니까요.


여자는 키 작은 남자와 천생연분을 맺고, 선배는 치매가 찾아와

일찌감치 요양원으로 향했지요. 100세를 장담할 만큼 건강했던 친구는

아홉수에 걸려 69세에 심장마비로 떠났습니다.

나이 들며 갖춰야 할 덕목이 ‘절제’입니다. 삶에 고루 적용되는 말이지만,

여기에는 ‘조심’하라는 뜻이 있지요. 무엇보다 ‘말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듣는 귀가 둘인데 비해 말하는 입은 하나뿐인 것도 같은 이유지요.


우리가 수없이 내뱉는 말에는 사람을 살리는 말도 있지만 죽이는 말도

많습니다. 같은 말인데도 누구는 복이 되는 말을 하고, 누구는

독이 되는 말을 합니다.


황창연 신부의 말처럼 말의 세 부류도 같습니다. 말씨, 말씀, 말투가

그것이죠. 씨를 뿌리는 사람(말씨), 기분 좋게 전하는 사람(말씀),

말을 던지는 사람(말투)이 있는 것처럼 말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말씀은 말과 다릅니다. 때때로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야 되겠다고 다짐하는 경우가 있지요. 이같이 감동을 전하는

사람의 말을 우리는 말씀이라 합니다.

말로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초등생 어린이에게 “씩씩하고

멋지구나. 넌 장군감이다.” “야, 어떻게 그리 말을 잘하니? 넌 커서

변호사가 되겠구나.” 이렇듯 말에 복을 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좋은

언어 습관은 말씨를 잘 뿌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전철에서 중년 여인이 경로석에 앉은 할머니에게 말을 건넵니다. “어쩜

그렇게 곱게 늙으셨어요?” 그런데 할머니의 반응은 시큰둥한 표정입니다.

다음 역에서 아주머니가 내리기 무섭게 할머니가 풀 먹은 소리로 “그냥

고우시네요 하면 좋잖아. 늙은 거 누가 모르남.”

ㅎㅎ듣고 보니 그렇기도 합니다.

프랑스 작가 장 자크 상페는 자신의 책 ‘뉴욕 스케치’에서 뉴요커들의

긍정적인 말버릇을 관찰했습니다. 뉴요커들의 말하는 특징은 빤한 얘기를

하는데도 습관처럼 상대의 말꼬리에 감탄사(!)를 붙이고,

물음표(?)를 달아준다는 것입니다.

물음표와 감탄사를 달아준다는 것은 내 말에 관심을 갖는다는 표시로

받아들여지고, 서로의 삶과 이야기를 격려해주는 ‘말 효과’를 높입니다.

이를테면, 누가 “나 이번에 터키를 다녀왔거든요.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옆에서 “터키보다 그리스가 더 좋아요. 난 터키를 두 번

가봤거든요.” 이렇게 말을 받으면 말문을 열다가 주춤하게 됩니다.

이럴 때 뉴요커들은 자기 경험을 내세우지 않고 이렇게 말한답니다.

“터키 다녀오셨다고요? 어머, 참 좋았겠다!” “일정은 어땠어요?”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말머리를 계속 상대에게 돌려줍니다. 물음표와

느낌표를 번갈아 쓰면서.


얼쑤, 같이 장단 맞추어 추임새를 넣어 상대를 신나게 해 주는, 뉴요커의

말 습관이 좋아 보이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대화를 하면서 느낌표와 물음표를 얼마나 사용하나요? 자기를

먼저 앞세워 대화를 하게 되면 상대의 말에 이러한 부호를 찍어주기가

어려워집니다. 오늘도 내가 한 말을 돌아보면서 느낌표와 물음표를

달아주는데 인색했음을 깨닫습니다.


내 말에 감탄하며 나의 감정과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만큼 귀한 사람은

별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자기 할 말만 생각들 하니까요.

말이란 닦을수록 빛나고 향기가 납니다. 말할 때도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합니다. 말을 나눌 때는 상대방의 입장을 늘 염두에 두라고 합니다.

적어도 실언이나 허언 같은 말실수는 막아야 하니까요.

그러면 덤으로 얻는 것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리 말을 예쁘게 하세요?”

“복 들어올 말만 하시네요.” 정겨운 말은 모두를 기분 좋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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