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간'의 추억

이관순의 손편지[30-10]

by 이관순

‘뒷간’의 추억


신분당선 운행으로 산행코스가 청계산으로 바뀐 뒤, 청계산 입구역에

내려 화장실에 가면 한동안 구시렁대는 소리가 들렸지요. 전철역 화장실이

사치스럽다는 이유에 섭니다. 고속도로 휴게소도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한국 하면 화장실에 ‘엄지 척’ 하는 외국인들이 그리 많답니다.

화장실 콤플렉스는 아닙니다. ‘그때를 아십니까?’에서 보듯이 ‘뒷간‘과

'변소'로 불렸던 우리의 재래식 화장실은 먼 전설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침마다 동네 공중변소 앞에 줄을 서던 기억을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떠올릴 테니까요.


겨울이면 똥탑을 쌓고, 여름이면 똥통에 물이 고여 한 덩이 눌 때마다

엉덩이를 동시에 들어 올려야 했던 기막힌 사연들... 그리 멀지 않은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때를 탓하지 않습니다. 좋든 싫든

우리의 추억이고 그리운 시절이니까요.

뒷간에서 변소로, 다시 화장실로 진화하면서 공중화장실은 이제 전철역

화장실이 대신합니다. 냉온수가 나오고 비누, 건조기가 있고 칸칸이

화장지도 비치했습니다. 가히 세계 제일의 화장실 문화 선도국입니다.

어린 시절, 시골의 외갓집 추억은 뒷간에서 시작됩니다. 여름방학이면

외가에 가는 일로 설레지만 화장실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섭니다.

마을의 한 아이가 똥독에 빠졌다는 소리를 들은 후로는

고민이 더 깊어졌지요.


울타리 구석의 위치도 싫지만, 뒷간마다 귀신이 있다는 외삼촌 얘기가

있은 뒤로 밤에 용변 보는 일은 공포였지요. 촛불을 든 외할머니가

앞서주긴 해도 뒷간에 앉는 일부터는 오롯이 내 몫입니다. 앉기가

무섭게 코부터 틀어막지요.

“할머니?” “오야, 할머니 예 있다. 걱정 말고 잘 보래.” “가면 안돼.”

중간중간 할머니를 불러서 무서움을 달랩니다.

철이 들어서야 “뒷간과 처갓집은 멀리 둬야 한다.” "똥은 꼭 집에 와서

누거라." 철이 들어 어른들이 귀에 박히게 말했던 이유와 뒷간의 역할에 대해

알게 됐지요. 똥은 단순한 배설물이 아닌 농작물의 성장에 필요한

농촌의 귀한 자원임을.

뒷간의 ‘뒤’는 방위로 북녘입니다. 북녘은 어둡고 음습해 가급적 멀리

떨어뜨려 놓습니다. 뒷간에는 심술이 고약한 뒷간 귀신(廁間神)도 있습니다.

이래저래 화장실 고충은 컸지요. 설상가상으로 설사까지 겹친 밤엔

최악의 상황이 됩니다.

이러한 고충이 요강을 부추겼습니다. 뼈대 있는 양반집은 요강을 전담하는

‘요강 담사리’라는 종을 따로 두었다 해요. 요강은 본래 소변 전용으로,

마님의 나들이에 챙겨야 할 필수품이었습니다. 궁궐에서는 대소변 공용의

‘매우(梅雨) 틀’이란 특제 요강을 사용했다고 해요. 학자들은 경복궁에

적어도 28개소의 뒷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양의 거리마다 똥냄새가 진동할 수밖에요. 하지만

농촌에서는 ‘똥재’로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한 사발의 밥은

주어도 한 삼태기 똥재는 주지 않는다.”는 속담이 생겼을 정도니까요.

똥재는 농사에 필요한 양질의 천연비료입니다. 똥재 시장은 수원을 제일로

쳤는데, 똥재 가격은 상품 한 섬에 30전, 중품 20전, 하품 10전에 거래가

되었다고 해요. 이처럼 뒷간은 완벽한 리사이클링으로 자연친화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입니다.


수질오염 문제를 남긴 서구의 수세식 화장실과는 차원이 다른 실속 있는

설계입니다. 수세식은 일단 눈에 띄지 않게 치우고 보는, 겉치레에 중점을

둔 외화내빈형 개념입니다.


일본은 배설자의 신분에 따라 등급을 매겼답니다. 금테 두른 똥이 생긴

거죠. 상품은 귀족의 똥재이고 다음이 공중변소, 상민, 범죄자 순으로 값을

매겼다고 합니다. '섭생(input)'에 따라 '분뇨(output)'의 품질이 달라진다는

합리적 셈법을 채택한 것이지요.


뒷간의 추억은 외갓집을 떠올릴 때 들춰지는 단골 메뉴입니다.

뒷간에서 나와 바라본 여름 밤하늘도 잊지 못할 풍경입니다. 별자리도

여름 밤하늘이 가장 화려하다고 합니다. 온 하늘에 보석을 뿌려놓은 듯한

별들의 반짝임. 그 장엄한 별빛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지요.

슬프게도 그런 밤하늘을 잃었습니다. 이미 오래전 일일입니다. 주마등처럼

스쳐간 그 별밤이 그리울 때는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뭍 별이 살아나기를

기다리지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복이 되는 말, 독이 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