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관순의 손편지 19-07

by 이관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대지예술가 크리스토(84)가 지난 5월 31일 뉴욕 자택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부부예술가로 평생을 같이 작업하다 먼저 떠난 아내 잔 클라우드의 뒤를

11년 만에 찾아간 겁니다. ‘손편지’가 이들 부부를 다룬 지 꼭 한 달만의

부음입니다. 11년 동안 클라우드 없는 작업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젓가락

한 쪽이 없는 삶, 그런 난망이 수시로 밀려왔겠지요.


대지예술은 십 수 년을 기획하고 제작해 고작 2주 정도를 전시하고 철거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예술이지요. 파도가 바닷가에 애써 쌓은 모래성을

해체시키는 것처럼 말입니다. 영속되는 예술작품은 없듯이, 비록 작품은 잠시

스쳐가지만 많은 이의 뇌리에 흔적을 남깁니다.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대지미술의 선구자인 크리스토와 잔크로드 부부는

영감이 오는 대로 계곡, 해안, 섬 모두를 포장해 버리는 독보적인 포장기술로,

20세기 최고의 독창적 예술가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1935년 같은 해, 같은 날, 불가리아와 모로코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부부가

되고 일생을 같이한 운명적인 삶을 살았던 이들 부부. 미국 이주를 계기로

랜드 마크를 포장하는 거대 프로젝트를 기획해 전성기를 엽니다.


시드니 부근 해변을 따라 1마일을 포장한 ‘해변포장’, 휴양지 마이애미의

11개 섬을 포장한 ‘둘러싸인 섬들’, 400년 역사의 파리의 ‘퐁네프다리’,

독일제국주의 상징인 ‘독일 국회의사당’ 등이 잇달아 포장되었습니다.


이들의 포장예술은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리는 행정당국과의 끈질긴 협상의

산물이기도 해요. 가장 유명한 작업은 2005년 2월 보름간 전시한,

뉴욕 센트럴파크 산책로 36.8km에 설치한 ‘더 게이츠’입니다.


오렌지색 천이 커튼처럼 나부끼는 4.87m 높이 철제 구조물 7503개가 동원된

이 전시는, 뉴욕시와 25년의 협상 끝에 탄생한 뉴욕 최대의 공공미술입니다.

나는 이 전시를 해외출장 중에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졌지요. 당초 뉴욕시는

이 제안을 환경문제를 이유로 반려했답니다.


하지만 크리스토는 설득과 거절까지도 작업과정의 하나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그의 집념으로 빛을 본 ‘더 게이츠’는 4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불러들여 2억 5000만 달러의 경제 유발효과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2016년, 이탈리아 북부 이세오 호수에 설치한 ‘떠있는 부두’도 구상에서

실현까지 46년이 걸린 프로젝트입니다. 마을에서 섬까지 3km의 산책로를

만들기 위해 22만개의 고밀도 폴리에틸렌 큐브로 길을 내고 10만㎡의 노란 천을

씌었지요. 호젓한 호수의 풍경을 하루아침에 탈바꿈시킨 이 부두 길엔

120만 명이 찾아와 그해 세계 최다 관람객을 기록한 전시로 기록됩니다.


크리스토는 외부지원을 받지 않고 소요되는 큰 비용을 자신의 작품 판매 등을

통해 조달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소수의 부자 컬렉터를 위한 예술이 아닌,

모든 이를 위한 열린 예술을 추구했으며, 철거 후엔 모두 재활용으로 마무리하는,

은화처럼 맑은 예술혼을 지녔었지요.


크리스토는 2018년 유작이 될 ‘포장된 개선문’ 계획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2021년 실버 블루 색상의 천으로 포장될 개선문 프로젝트를 마무리 못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특정지역의 랜드 마크를 포장해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우리에게

선물했던 크리스토와 잔크로드.


그래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라는 명구가 나왔겠지요. 그들은 우리 곁을

떠나갔어도 사람들 기억에 오래 남을 크리스토. 그의 뒷모습이 그래서 더

아름답고 아쉬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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