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가 있던 그날

이관순의 손편지 19-06

by 이관순

9·11테러가 있던 그날


오래전 일본출장을 갔다가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한 광고를 봤어요.

‘리더는 오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단 한 줄의 문장을 지금도 기억하는

걸 보면 꾀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귀국하는 대한항공 기내에서 또 하나의 문장과 만납니다. ‘친절은

전염된다.’ 냅킨에 찍힌 글이 가슴에 닿았어요. 사람은 문장 하나에

용기를 얻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행동을 통해서라면 울림은 더 크겠지요.


지난 달, ‘9.11테러 19주년’ 을 앞두고 세계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끼친

세계무역센터(WTCA) 총재 이희돈 박사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그날이

WTCA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9.11 추모기와 맞물려 더 큰

안타까움을 불렀지요.


WTCA는 100여 개국 320개 무역협회로 구성된 국제조직으로 무너진

110층 쌍둥이 빌딩 자체가 그 위상을 말합니다. 이희돈 박사는 아시아인

최초로 WTCA총재에 올라 한국인의 위상을 높였지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좌절하는 세계 젊은이들에게 꿈과 도전의 혼을

일깨웠습니다. 후일 옥스퍼드대 종신교수에 이르지만, 공부하게 된

사연은 눈물겹습니다.

“영국 유학을 올 때 부모님이 편도비행기표만 끊어주셨어요. 그리고

공항에서 봉투를 주시더군요. 봉투 안에 돈이 얼마나 들었을까 궁금해

좌석에 앉자마자 봉투를 열었는데, ‘네 조상 하나님이 너를 도우시리라!’

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만 들어 있었어요.”


세상에 유학 떠나는 자식에게 무일푼으로 비행기를 태울까. 이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었다고 해요. 그의 유학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하고 싶었던 그는 매일 캠퍼스를

돌면서 간절히 기도했고 잠은 바닥에서 잤어요.


학장 면담을 요청했지만 비서가 지금은 입학시기가 아니라고 막습니다.

이역 땅에서 고생하며 왔는데 면담도 못하고, 그러니 계속 캠퍼스나 돌며

기도할 뿐입니다. 기약 없는 날이지만 쉬지 않았어요. 이를 창밖으로 본

비서가 그를 불렀고 학장 면담이 성사되었어요.


학장이 묻습니다. “등록금이 비싸다. 공부할 실력은 되고? 학비는 있고?”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돈은 학교에서 장학금을 주시면 됩니다.” 당찬

한국 청년의 말에 학장은 장학금을 주었고, 그는 졸업 후 WTCA에

직장을 갖습니다.


그후 옥스퍼드대 평의회 회원이 결원이 생기면서 참신한 인물을 찾을 때

학장 추천으로 종신교수로 임명됩니다. 그는 여왕 초청으로 이뤄지는

영예로운 임명식 자리에서 이렇게 수락연설을 했어요.

“이 학교는 진리와 자유 탐구를 목적으로 세워진 학교로 압니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진리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확신컨대 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라고.


그에겐 9.11테러와 얽힌 충격적인 스토리가 있습니다. 수석부총재 시절,

워싱턴에서 뉴욕으로 출퇴근할 때였어요. 테러가 있던 그날 아침엔 오래전

부터 준비한 중대한 회의가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날 밤 아내가 심한 복통과 경련을 일으킵니다. 커피 5잔을 마신

게 탈의 원인이었어요. 밤새 시달린 박사는 아침이 되자 출근을 위해

공항으로 나갔습니다.


문제는 뉴욕공항에 내리면서 시작된 복통입니다. 공항에서 마신 주스가

떠올랐고, 30분을 화장실에 갇혀 진땀을 흘려야 했어요. 5분만 늦어도

길이 꽉 막히는 곳, 이 중요한 날에 30분을 화장실에서 탕진하다니.


차를 타고 오며 세 명의 비서에게 전화를 합니다. 어떤 일인지 아무도

받지 않습니다. 15분 단위로 일정을 소화하기 때문에 비서들이 스케줄

조정 문제로 바쁘게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무역센터가 시야에 들어왔을 때 가까스로 비서와 통화가 됩니다. 회의는

멤버 전원이 참석한 상태에서 일일이 양해를 구했고, 나머지 일정은

조정 중이라 했어요. 이래저래 면목 없는 날이 돼버렸습니다.


무역센터에 거의 다 왔을 때, 반대편에서 낮게 날아온 비행기가 순식간에

쌍둥이빌딩에 꽂혔습니다. “차 돌려!” 그 사이, 또 한 대 비행기가 돌진해

굉음을 내면서 마천루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진주만 공습의 피해보다 훨씬

큰 3천여 명이 숨지는 참사가 눈앞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회의가 정상으로 열렸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어떻게 아내의 경련도

부족해 나까지 복통을 일으켰을까. 계속되는 의문입니다. 나를 원인으로

비서진과 이사회멤버 10여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한 섭리는 어디서

작용한 것일까.


사람들은 이를 기적이라고 말했지만, 정작 본인의 가슴엔 ‘내게 새로운

사명을 주시려나보다.’ 뜨거운 울림이 오더랍니다.


이후 이희돈 박사는 WTCA총재로 선출돼 봉직하면서 해외선교 활동에 발

벗고 나서 국제사회가 존경하는 뜨거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10년간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고, 61세 되던 해 하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9월 3일자 떠나는 진짜 시간표를 받은 것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