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전쟁 잊힌 승리

이관순의 손편지 19-05

by 이관순

잊힌 전쟁 잊힌 승리


전쟁에 끝나면 사람들은 참혹한 기억에서 서둘러 도망치려 합니다. 그 점에서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임진왜란 때도 그랬으니까요.

7년 전쟁을 끝낸 일본이 전후사 연구를 몰입하던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유성룡의 ‘징비록’을 보고 조선에도 반성하는 사람이 있다며 놀라 했다는

얘기가 우리의 부끄러운 처지를 말합니다.


6.25 70주년. 이념의 더께는 여전하고 무심한 세월만 덧씌웠습니다. 폐허 된

벌판에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지고, 경제대국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만든

전쟁임에도 우리의 기억은 멀리 도망가 있어요. 잊힌 전쟁, 잊힌 승리로.


40주년이 되던 1990년, 서울시청 정문 위에 한 장의 대형 흑백사진이

내걸려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았어요. 6.25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한 장의 사전. 부모를 잃은 소년이 길을 헤매다가 덕수궁 우물가에서 잠든

것을 외신기자가 찍어 ‘라이프’지에 실었던 ‘우물가 소년’입니다.


그해 6월 25일 자 조선일보는 “전쟁고아 ‘우물가 소년’이 하버드 박사가 돼

40년 만에 돌아왔다.” 는 소식과 사진을 톱으로 올렸습니다.

임종덕(J. 화이트)씨. 화려하게 인생을 반전시키고 돌아온 그의 첫 말은

“6.25를 잊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때의 참상을 알리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때 그분의 육성 증언을 들었습니다.


공무원인 소년의 아버지는 전쟁이 터지자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하고 마루 밑에

구덩이를 파고 숨었습니다. 그러나 악착같은 인민군이 끝내 아버지를

찾아내어 인민재판에 세웁니다. 그들은 마당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총살하고,

자녀들이 감금된 안방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 광경을 14세 소년은 감나무 위에서 지켜봤습니다.


오갈 데 없는 소년을 데리고 전장을 좇던 외신기자는 1.4 후퇴 때 전사하고

소년은 고아원 생활로 이어집니다. 그곳에서 소년은 원장의 비리를 수없이

보게 됩니다. 원생들은 시래기죽도 못 먹는데 쌀밥을 먹고 그뿐이 아닙니다.

미국인들이 아이들에게 준 구호품까지 몽땅 회수해 팔아먹는 것입니다.


소년은 당찬 결심을 합니다. 어디 가면 못 살까. 아이들을 집합시킨 후

당돌하게 외쳤어요. “우리 나가자. 따라올 사람은 다 나오라.” 100여 명의

원생 중 82명이 따라나섰습니다. 이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지?

더럭 겁이 났으나 어느새 내친 발걸음은 불광동 고개를 넘어 서울 역에

도착합니다.


남산의 방공호 자리를 아지트로 삼고, 다음날부터 미군 쓰레기장을 뒤져

돈 될 것을 찾아 나섭니다. 깡통 하나씩 옆구리에 차고.

적자생존은 이 바닥에도 다를 바 없습니다. 힘센 자들이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이 잦아지자 소년은 조직을 갖추어 싸움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남대문,

양동, 도동 일대를 돌면서 세 싸움을 벌였고, 마침내 이 일대 양아치의

두목이 됩니다.


별명은 빨강셔츠. 그가 빨강셔츠를 입고 나가면 아이들이 달려와 머리를

숙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멀쩡하던 아이들이 고열로 슬어집니다.

그들을 둘러업고 달려가 병원 문을 두드렸지만 양아치라며 모두 문부터

닫아겁니다. 하루 사이 32명의 아이가 홍역으로 죽어나갔어요. 시신을

남산에 그러 묻으며 소년은 돈독이 오릅니다.


그런 소년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와요. 하루는 서울역 앞에 미군 세단이

서고, 별 단 장군이 내리는데, 소년의 눈에 비친 것은 뒷좌석에 놓인

가죽 가방. 직감에 ‘돈이다’ 판단하고 삽시에 가방을 빼돌려 골목으로

뛰어들었지만, 가방에는 접힌 지도 한 장뿐입니다.


지도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죽 가방만 챙겨 남대문 시장에 내다 팔고

나오는데 낯익은 남대문경찰서 형사들이 덮칩니다. " 미공군 사령관 가방

어딨다 치웠어? 네놈 소행이지?” 그 가방에 비밀지도가 들었다면서 방방 뛰는

형사 손에 끌려서 서울 역에 이르니 오니 경찰과 헌병들이 쫙 깔렸고 애들은

몽땅 무릎이 꿇려 있습니다.


소년은 “아이엠 쏘리, 베리 쏘리, 이리 오케이, 저리 오케이”를 연신 써가며

쓰레기통에 버린 지도를 찾아줍니다. 큰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오만 걱정이

들던 소년에게 찾아온 건 벌 대신 사랑이었어요. 미공군 사령관 화이트 장군이

지도를 돌려받은 고마움으로 사령관 가방 보이로 채용한 겁니다.


그로부터 사령관 가방을 들고 따라다니면서 영어를 익힙니다. 소년에게 따뜻한

사랑을 주었던 사령관은 불행히도 한국전에 참전 중인 외아들이 전사를 하자

소년을 아예 양아들로 입양시킵니다. 1952년 8월의 일이었어요.


소년의 미국 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답니다. 재기 넘치고 명석한 두뇌를 가진

소년은 양부모의 헌신적인 후원 아래 하버드대 정치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육군에 입대해 대령으로 전역하기까지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주요 보직을

수행했어요.


그는 “하버드대에서 하루 3시간 자면서 공부할 때나 미군에서 근무할 때,

단 하루도 6.25의 아픔과 한국을 잊은 적이 없다”라고 했어요.

우물가 소년의 ‘비극과 승리’는 바로 우리 자신의 스토리입니다. 하지만

까맣게 잊고 살아요. 대한민국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지켜지고, 융성해

졌는지 그 과정을 망각하고서.


70돌의 6.25가 우리에게 그것을 묻습니다. 역사를 망각한 민족은 미래가

없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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