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212]
그래도 읽을 사람은 읽는다
손편지를 올린 지 만 2년이 넘어 212회에 달하면서 두 가지가
감사했습니다. 약속한 요일, 정한 시각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는 것,
또 하나는 이렇게 호흡이 길어질 줄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왕 시작한 것이니 정성을 다하고 신실하자는 다짐은 있었어요.
편지를 쓰게 된 동기가 딴엔 순수했습니다. 예수님이 당부하신 ‘이웃과
나누라’는 말씀을 품고 있다가 뒤늦게 심중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가진 것이 없는 비루한 사람입니다.” 그랬었는데 어느 날 마음에
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준 달란트가 있잖아.” 그 작은 울림이 컴퓨터
자판을 끌어당기게 했습니다.
미약한 문장이지만 대신 곡진한 마음을 담으면 몇몇 분에게라도 작은
위안? 작은 기쁨?, 뭐가 돼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횟수가 늘면서
그 온기가 반향 돼 오고 해외로 번지는 걸 보며 희망을 찾았습니다.
선물도 받았어요. 50여 년간 소식이 끊긴 친구와 지인을 찾았고, 귀인을
만나고, 연재할 수 있는 지면도 얻었습니다. 긴 세월을 가장의 책무를
좇아 글을 쓰다가 오롯이 자신에 집중할 수 있는, 지금의 글쓰기가
기쁨이고 감사일 뿐입니다.
글이 오른 뒤엔 댓글보다 카톡, 메일, 전화가 옵니다. 지난번 올린
<설날 떡국 한 그릇>을 보고 지인들이 연락을 주었죠. ‘잘 읽었다’는
그런 덕담이 아니라 ‘그런 일도 있었어요?’ 내 사연이 궁금한 것입니다.
편지의 사연이 다 내 얘기로 채워지는 건 아닙니다. 글감이 스토리라는
가공 과정을 거치면서 내 ‘어머니’가 우리 어머니가 되고, 화자인 ‘나’도
모든 사람의 ‘나’가 되기도 합니다.
친구들 사이에 ‘짜(?)’기로 유명한 화가 분이 있는데, 학교 다닐 때부터
그림 한 점 친구라고 주는 법이 없었죠. 습작 한 점 건넬 만도 하지만
어림없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의 말에 귀를 열게 되었지요.
“작품은 값을 치른 만큼 대우받는다.”
작품은 화가에겐 자식 같은 분신입니다. 원하면 전시회에서 구입하는 게
정도겠지요. 책도 그렇습니다. 증정본은 사는 책만큼 잘 읽히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도 책은 사 보라고 권합니다.
요즘엔 종이책 읽는 사람 찾기가 힘듭니다. 버스나 전철에도 책을 편
사람들이 없으니까요. 그러면서 교보문고의 그 많은 책을 걱정하다가
지하철을 타면 책 읽는 사람부터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간 버스에서 두 분, 전철에서 여덟 분이 다였지요.
이 딱한 현실 앞에서 오늘도 글과 책으로 마음의 양식을 만들어내고자
고심하는 수많은 분들의 헌신적인 노고가 무상해 보였습니다.
영상도 같아요. 여성이 즐겨보는 드라마가 20-30대에게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내가 만난 젊은 여성들은 “요약본이나 예고편에
혹하지 않으면 재낀다”는 군요. 하긴 글과 책을 멀리하는 현실이 놀랍지
않은 것이, 볼거리가 넘치는 세상이니까요.
그럼에도 신기한 것은 책과 글이 어떤 형태로든 유통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본능 탓이겠지요. 결국 콘텐츠의 문제인 듯한데, 인기 강연자가
비슷한 말을 했어요. 딱딱한 것일수록 스토리로 풀어야 한다고요.
철학, 과학 같은 비인기 주제는 스토리를 만들어야 만족도가 높답니다.
자극적이고 독창적인 것. 세상이 원하니 자극성이 강한 기술만 발전할
수밖에요. 빠른 전개, 선명한 얘기가 광속으로 퍼지는 기술입니다.
책 속에 반짝이는 한두 줄 문장으로, 연예 프로는 톡톡 튀는 자막으로,
오감을 흔들어 놓는 기술이 중요합니다. 이 같은 기술이 스토리를
생필품으로, 유튜브를 중독성에 빠뜨리죠.
이야기의 가치가 자극과 흥미, 재미 위주로 가공되고 잘리고 압축된 채
현대인의 욕구를 채우는 스마트 폰의 소셜미디어 창이 모두 그렇게
반짝입니다.
오늘 친구가 ‘단톡 방’에 미국 친지로부터 받은 글을 올리고 혹시 내 글
아니냐고 묻습니다. 새해에 띄운 글이 돌고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자
한 친구가 “이 작가 글 맞네. 안 보셨나 봐?” 그러자 솔직히 다 챙겨
읽지 못했다고 미안해합니다.
오늘 두 가지를 깨쳤습니다. 광속의 세상을 사는 사람들도
읽을 것은 다 읽는다는 것.
공짜보다 유료가 가치 있다는 것.
-글 이관순 소설가/ ks812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