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18-4]
신분당선 운행으로 청계산을 산행 코스로 잡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청계산 입구역에 내려 화장실에 들르면 한 마디씩 구시렁댑니다. 전철역
화장실이 사치하다는 생각에서죠. 고속도로 휴게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한국 하면 화장실에 ‘엄지 척’하는 외국인들이 그리 많답니다.
화장실 콤플렉스는 아닙니다. 오래전, MBC-TV가 프로그램 ‘그때를
아십니까?’를 방송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지요. 현대화 물결에 밀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생활 풍속 등을 조명해 보는 기획 시리즈입니다.
방송에서 소개하듯 ‘뒷간‘ ’ 변소‘로 불렸던 우리의 재래식 화장실은
전설 속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침마다 그 앞에 줄을 서던 기억을 많은
사람이 떠올릴 테니까요. 집집에 화장실이 없던 시절, 서울의
외곽 동네엔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중 변소라는 것이 있었지요.
겨울이면 똥탑을 쌓고, 똥통에 물이 고이면 한 덩이 눌 때마다 엉덩이를
들어 올려야 했고, 순서가 올 때까지 밀려 나오는 설사를 발을 구르며
참던 기막힌 사연들. 그리 멀지 않은 시절의 기억들입니다.
누구도 그때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좋든 싫든 추억은 그리운 것이니까요.
뒷간에서 변소로, 다시 화장실로 진화하면서 공중화장실은 이제 전철역
화장실이 대신합니다. 냉온수가 나오고 비누, 건조기가 있고 칸칸이 화장지도
비치했습니다. 가히 세계 화장실 문화 선도국가라 할 만합니다.
어린 시절, 시골의 외갓집 추억은 뒷간에서 시작됩니다. 방학 때마다 외가에
가는 일은 설렘이었지만 화장실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섭니다. 아이가 똥독에
빠졌다는 소리를 들은 후로는 고민이 더 깊어졌지요.
울타리 구석의 위치도 싫지만, 뒷간마다 귀신이 있다는 외삼촌 얘기가 있은
뒤로는 밤에 용변 보는 일 자체가 공포였지요. 촛불을 든 외할머니가 앞서지만
뒷간에 앉는 일부터는 온전히 내 몫입니다.
앉기 무섭게 코부터 틀어막지요.
“할머니?”
“오야, 예 있다. 잘 보래”
중간중간 할머니를 불러보고 그 대답으로 무서움을 달랩니다.
철이 들어서야 “뒷간과 처갓집은 멀리 둬야 한다.” ”똥은 꼭 집에 와서
누어야 한다 “는 어른들이 주고받은 말의 뜻과 뒷간의 역할에 대해 알게
됐지요. 똥은 단순한 배설물이 아닌 농작물의 성장에 필요한
농촌의 귀한 자원임을.
뒷간의 ‘뒤’는 방위로 북녘입니다. 북녘은 어둡고 음습해 가급적 멀리
떨어뜨려 놓습니다. 또 뒷간에는 심술이 고약한 뒷간 귀신(廁間神)도 있다고
해서 이래저래 화장실 고충은 컸지요. 설상가상으로 설사까지 겹친 밤이면
최악의 상황이 됩니다.
이러한 고충이 요강을 부추겼습니다. 뼈대 있는 양반집은 요강을 전담하는
‘요강 담사리’라는 종을 따로 두었다지요. 요강은 본래 소변 전용으로,
마님의 나들이에 챙겨야 할 필수품이었습니다.
궁궐에서는 대소변 공용으로 ‘매우(梅雨) 틀’이란 특제 요강을 사용했다고
해요. 학자들은 경복궁에 적어도 28개소의 뒷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양의 거리마다
똥냄새가 진동할 수밖에요.
하지만 농촌에서는 ‘똥재’로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한 사발의 밥은 주어도
한 삼태기 똥재는 주지 않는다.”는 속담이 생겼을 정도니까요. 똥재는 농사에
필요한 양질의 천연비료입니다. 수원에서는 똥재 가격이 상품 한 섬에
30전, 중품 20전, 하품은 10전에 거래되었다는군요.
이처럼 뒷간은 완벽한 리사이클링의 자연친화 제품을 생산하는 곳입니다.
수질오염 문제를 남긴 서구의 수세식 화장실과는 차원이
다른 설계인 셈이죠.
일본은 배설자의 신분에 따라 등급을 매겼답니다. 금테 두른 똥이 생긴 거죠.
상품은 귀족의 똥재이고 다음이 공중변소, 상민, 범죄자 순으로 값을 매겼다고
합니다. '섭생(input)'에 따라 '분뇨(output)'의 품질이 달라질 테니까요.
뒷간의 추억은 외갓집을 떠올릴 때 들춰지는 단골 메뉴입니다. 뒷간에서 나와
바라본 밤하늘도 잊지 못할 풍경입니다. 온 하늘에 보석을 뿌려놓은 듯한
별들의 반짝임... 그 장엄한 별빛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지요.
우리는 슬프게도 그런 밤하늘을 잃었습니다. 서울의 밤하늘에 별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어느 순간,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살던 제비들이 사라져 갔듯이,
하늘은 잿빛으로 덮였습니다.
이따금 밤 하늘에서 ‘별이다!’하고 용하게 반짝이는 것을 찾기도
하지만, 그것은 별이 아니라 과학이 쏘아 올린
인공위성임을 알았습니다.
나를 소름 돋게 하던 파란 밤하늘의 별들. 아름답던 추억들. 이미 오래 전의
일입니다. 주마등처럼 스쳐간 그 별들이 그리울 때는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뭍 별이 살아나기를 기다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