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18-5]
올 추석은 무거운 마음으로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문 닫은 자영업자들, 취업하지 못한 젊은 백수들, 구조조정에 내몰린
사람들, 일일이 셈할 것 없이 민낯을 드러낸 최악의 실업률이
이를 설명합니다.
지난주 내내 도로는 벌초에 나선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우리 민족의
추석 마중은 조상 묘소를 가꾸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추석
연휴가 시작되면 수백만 대의 차량이 전국의 고속도로를
가득 채우지요.
가장 힘든 추석이 되었던 1998년. 경제가 어려워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했는데, 이 예측은 빗나갔습니다.
당시 언론은 예년과 같은 2000만 명의 인구가 움직였다고 보도했었죠.
모두가 형편이 어렵고 고향에 가져갈 소식이 없어도 찾아가는 곳,
고향은 그런 곳입니다. 부모가 계시고 조상의 얼이 서린 고향은 언제
찾아도 푸근하고 마음에 평안을 줍니다.
고향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고향에 갈 때 가져가야 할 것은 무엇일까.
선물일 수도 있고, 기쁜 소식일 수도 있겠지요. 그보다 중요한 것은
고향에 대한 감사의 마음일 것입니다.
고향을 지키고 있는 사람에 대한 감사뿐 아니라, 고향 땅에 박힌 돌
하나, 한 그루 나무까지, 고향의 풍경을 만드는 모든 것들이 감사의
대상입니다. 그런 것 없이 고향의 품에 안기기란 쉽지 않아요.
고향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탕자나 갈 곳 없는 주검을 제외하고,
돌아오는 모든 자를 넉넉하게 받아주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죠.
젊어서는 쳐다보지 않다가 늙어서야 고향을 찾았다는 자괴감 때문에
동구 밖을 서성이다가 끝내 발길을 돌렸다는 분도 있습니다.
고향이란 문제에서 드물게 돋보인 사람은 소설가 이청준입니다.
전남 장흥의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광주의 한 중학교에 합격합니다.
고향을 떠나기 전날, 어머니와 온종일 개펄에서 게를 잡았습니다.
친척집에 기식하러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며칠 뒤 소년은 끙끙 짊어지고 간 게 자루가 상한 냄새를 풍기며
쓰레기통에 버려진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때의 상처가 고향과 괴리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훗날 소설가가 돼
고향에 돌아가고자 했을 때, 자신이 고향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로부터 이청준은 고향의 대소사를 챙깁니다. 후배들 취직을 위해
나서고 어른들에게 문안을 잊지 않습니다. 고향 어디에 무슨 나무가
있고,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 훤히 알 만큼 친숙해졌습니다.
그때서야 그는 그곳에 집필실 한 칸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고향은 영원한 나그네인 인간에게 평생을 작용하는 땅입니다.
추석에는 집집이 차례를 지냅니다. 전통적인 제사 방식은 예부터
가가례(家家禮)라 해서 지역과 집안에 따라 다르죠. 하지만 같은 것은
상에 올릴 조율시이(棗栗柿李)라는 제수 과일입니다.
다시 말해 대추, 밤, 감, 배 순서로 상을 차리고 그중에도 대추, 밤,
감은 빠지지 않지요. 이들 세 과일이 차례상에 상석을 지키는 연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과일의 생물학적 특성과 효사상이 상징적 연관을
가지고 있어서입니다.
대추는 꽃마다 기어코 열매를 맺는 성질이 있지요. 대추의 이러한
상징성은 자손의 번성을 바라는 사람들의 기원과 맞닿아 있습니다.
자손의 번성은 살아 있는 후손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로 삼자는
숨은 뜻이 있답니다.
감나무는 과실나무 중 특이하게 반드시 접(接)을 붙여야 감이라는
열매가 열립니다. 그렇지 않고 방치하면 감이 열리지 않고 고음이란
엉뚱한 열매가 맺히지요.
고음은 감과 비슷하나 이보다 작고 감과는 다른 맛을 냅니다. 이러한
감나무의 특성으로 자손에게 혼배(婚配)의 중요성과 학문의 필연성,
효의 근본을 알립니다.
밤은 그 이유가 좀 더 특별합니다. 땅에 심은 모든 씨앗은 썩어서
뿌리의 양분이 된 후 없어져야 싹이 나옵니다. 그것이 이치인데
밤나무는 아름드리가 돼도 뿌리 어딘가에 ‘씨밤’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차례상에 밤을 올리는 까닭은 되묻지 않아도 분명해집니다. 조상의
대를 영원히 이어가겠다는 것과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조상에 대한
숭모의 표시입니다. 그래서 조상의 위패는 밤나무로 깎지요.
이러한 전통 민속은 점차 사라지거나 변형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핵가족으로 가속화되고 당대 중심의 문화를 빠르게 확산시키면서죠.
이로 인해 홀로 추석을 맞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홀로 살다가 쓸쓸히
죽음을 맞은 노인들의 아픈 사연이 심심찮게 전해집니다.
효자 소리 듣기도 어지간히 힘든 세상이 됐습니다. 늘어나는 평균
수명이 이를 더 어렵게 하죠. 상황과 환경은 늘 시대에 따라 바뀌어도,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보름달에 비치는 부모님 얼굴입니다.
올 추석에는 차례상의 과일들을 떠올리며 선조들의 깊은 뜻을 되새겨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죠. 온 가족이 함께 휘영청 밝은 한가위 보름달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차례 상 과일 이야기를 전해 주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