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돌아왔어요

이관순의 손편지[232]

by 이관순


내가 대전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도립병원이 제일 크고 유명했어요.

지금의 대학병원처럼 유명한 의사들이 다 모여 있는 병원입니다.

이 병원엔 성정이 따뜻하기로 소문난 슈바이처 의사가 있었어요.

그의 진료실 앞엔 늘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진료실 문을 열고 조심스레 들어왔습니다.

중앙시장에서 생선을 판다고 소개한 50대 여성의 얼굴은 이미 늙어

보일만큼 세파에 찌든 모습입니다.


“선생님 가슴이 벌렁거려 죽으려나 봐요. 살려주세요.“ 의사가 문진을

시작합니다. 증상이 언제 생겼느냐? 무슨 일이 있었느냐? 의사의

자상함에 여자는 자신이 살아온 기막힌 사정을 털어놓습니다.


순자 씨. 동네 시장 생선가게 아주머니죠. 3년째 중풍으로 드러누운

남편과 초등학교 다니는 남매를 건수하는 15년차 생선장사랍니다.

남편 수발에 아이들 키우자니 그 생활이 얼마나 곤궁하고 힘들까.


발단은 결국 돈이었어요. 옹색한 세방에 네 식구가 살면서 억척빼기

순자 씨의 노력으로, 은행의 도움만 좀 받으면 소원인 작은 아파트 살

정도의 돈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모은 돈을 늘려주겠다는,

친척 말에 홀려서 사기로 몽땅 날린 거예요.


땅에 주저앉길 여러 번, 삶의 의욕마저 꺾였습니다. 이제 집은 지옥과

같습니다. 늦은 밤 집이라고 오면 어지러운 집구석에, 누워만 지내는

남편. 그 모습을 보면 열이 뻗치고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합니다.


생선을 떼다 팔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는 일이 점점 힘들고, 집을

나서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인데다 생선 만지는 일도 흥미를 잃습니다.

생각할수록 참담함과 울분만 가슴에 파도처럼 밀려왔다갑니다.


그렇게 넉 달을 지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박사님을 찾아왔다며

나 좀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 얘기를 들은 의사 입에서 사람 살리는

묘약이라도 나올까 기대했는데, 슈바이처 박사는 기대와 달리 실망스런

처방을 안깁니다.


“아주머니는 지금 마음이 아픈 병을 앓고 있는 겁니다. 약으로는 병의

뿌리를 뽑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내 말대로 실천하세요.·.“

세상에, 마음 아픈 건 내가 더 잘 알지 누가 그걸 모르나. 명의라고

찾아왔는데, 일어나는 몸만 무겁습니다.


싱거운 진료를 마치고 진료실을 나오는데 사람들이 다 째려봅니다.

간호사도 냉랭하긴 마찬가지였어요. 그제서 25분이나 의사를 붙잡았고

있었다는 걸압니다. 병원을 나가다가 벤치에 앉아 생각합니다. 의사가

왜 내게 금쪽같은 시간을 떼어 내 온정을 보였을까.


이 비천한 사람을 25분씩이나 붙들고 얘기해 주다니. 고맙기 이를 데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을 바꿔야 삽니다. 내가 시킨 대로 해보고

두 달 후에 만납시다. “ 의사가 한 말을 다시 곱씹어 봅니다.


그러다 마음이 달라집니다. 귀한 어른이 금쪽같은 시간을 내 당부를

했는데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온화한 의사의

얼굴이 눈앞에 일렁입니다.


그래, 의사가 시킨 대로 두 달간 해보자. 다짐을 하고 집에 왔는데 엄마를

대하는 아이들의 무표정은 똑 같았어요. 그런 아이에게 다가가 꼭 안아

주며 말합니다. “엄마가 미안타. 우리 아이들 많이 사랑한다. “


남편에게 다가가서는 “오늘은 목욕 좀 할까요? “ 갑자기 달라진 아내의

모습에서 남자는 혼란스럽습니다. 이날 남자는 모처럼 따뜻한 물에

목욕하고 게운 한 몸으로 잠을 자게 되었지요.


이튿날 새벽, 시장에 나갈 준비를 마친 순자 씨가 자고 있는 아이들을

돌아가며 꼭 안아주고 남편에게 식사 준비를 이렇게 해놨다고 이릅니다.

순자 씨는 매일매일 똑같이 행동합니다. 늘 웃고, 안아주고, 친절하고···.


열흘째 되던 날 새벽입니다. 평소처럼 아이들을 안아주고 대문을 열고

나서려는데 인기척을 느꼈습니다. 돌아보니 자고 있던 아이들입니다.

“얘들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

”엄마 잘 다녀오라고.“

아이들이 시장 일 나가는 엄마를 배웅하러 나온 것입니다.


보름째 되는 날 밤입니다. 마무리가 길어져 늦게 집에 왔는데 이게

웬일인가요? 남매가 밥을 짓고 상을 차려놓은 겁니다. 생각지도 못한

아빠 목욕까지 해드렸다고 합니다. 그녀의 몸에 전율이 일면서 눈물이

와락 쏟아집니다.


“아빠가 오늘이 엄마 생일이랬어. 그래서 동생이랑 해본 거야.”

그날 처음 네 식구가 끌어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엄마가 잘못했다. 용서해줘.”

“엄마, 미안해. 고생하는 거 알아.“

남편도 촉촉한 눈으로 ”으어엉∼“ 짐승 소리를 내며 웁니다.


이날 이후 집안이 환해졌습니다. 순자 씨도 남편도 아이들 모두 웃는

얼굴로 바뀌었지요. 순자 씨는 새벽마다 남매 배웅을 받으며 장사하러

나가고, 아이들은 엄마 대신 밥 짓고 상을 차리고, 아빠 식사를 돕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순자 씨 가슴이 이상해졌어요. 벌렁거리던 심장이

한결 가라앉은 겁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씩 좋아지는 걸 느낍니다.

신기한 경험을 한 순자 씨는 약속한 두 달을 기다렸다가 도립병원으로

슈바이처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박사님, 심장이 벌렁거리지 않아요. 다 나은 것 같아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순자 씨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슈바이처

의사.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번집니다.

“감사하며 사는 마음이 아주머니 심장을 살린 겁니다. 축하합니다.”

우리네 삶은 이처럼 경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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