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236]
친구로부터 존경받기란 쉬운일이 아니죠. 예수님도 고향에서 배척당하는
쓴 경험을 하셨으니까요. 그럼에도 ‘존경’이란 수식어를 달아주고 싶은
기업가 친구가 있습니다.
얼마전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다가 놀랐습니다. 출퇴근을 전동 킥보드를
타고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동안 1시간을 걸어서 출퇴근한다는 건
알은 터이지만, 그 일도 예사롭지 않은 건데 일흔 넘은 나이에 전동
킥보드라니!
돌아보니 한쪽에 킥보드와 헬멧, 무릎보호대 등 안전 장구가 보입니다.
늘 풍부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걸 찾고 도전하기를 즐기는 것이 그의
일상이라해도 이런 사고를 칠 줄은 몰랐습니다.
시작한 지 달포 남짓, 엉치에 든 멍과 발목에 남은 부기를 직접 보고야
그 가상한 용기와 기백에 새삼 눈을 떴지요. 시작하면서 열 번만 넘어
지자고 계획했는데 아직 여섯 번 남았다고 자신이 넘칩니다.
친구는 지난 해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습니다. ‘내 인생에 가장 비참한
날’ 이라고 조용히 아픔을 알려왔었지요. 고인의 뜻에 따라 부음이란
상례없이 간소한 가족장으로 아내이자 애들 엄마와 이별을 했습니다.
친구는 지난 1년을 아무도 모르 게 두 얼굴로 보냈지요.
낮에는 1조 클럽의 기업 CEO로 열정적인 활동을 하다가, 퇴근하면
투병 중인 아내의 병 시중을 드는 남편으로, 또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퇴근길에 마트에서 아내가 원하는 식재료를 사다 조리하고, 밥하고,
청소하고, 통증을 호소하는 아내를 연민하지만, 주위에선 이런 사정을
몰랐습니다. 외부의 조력없이 홀로 아내의 곁을 지킨 겁니다.
그동안 내 주변에 짝 잃은 분들이 여럿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죽음처럼
준비없이 만나는 게 또 있을까? 나름 준비를 한다고 하지만 막상 일을
당하면 광야에 홀로 떨어진 자신과의 만남은 똑 같습니다.
흔히 여자 먼저 보내고 혼자 된 남자처럼 안 된 것이 없다고 해도
누가 먼저 가든 색깔만 달리할 뿐입니다. 배우자를 잃고 겪는 낯선
슬픔과 어려움은 남녀라고 유별할 게 없으니까요.
혼자된 친구들을 떠올리다 ‘젓가락 한 짝이 부러졌다’는 생각이
가슴에 공명을 일으켰습니다. 두개가 짝인 젓가락을 쓰다가 어느 날
하나가 부러진다면? 남은 한 짝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감성이 풍부하고 섬세할수록, 부부 간 정이 깊고 다감한 사람일수록
젓가락 한짝의 상실감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친구의
홀로서기는 내 인식에 변화를 자극했지요.
친구는 아내와 이별도 내 인생이 늘 겪는 하나의 시련이고, 내가
넘어야 할 산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평생을 그렇게 살았잖아. 인생
전체로 보면 한 과정이라 생각해. 지금까지 많은 역경을 견뎠는데
그 중 하나. 이겨내야지 도리없잖아?”
오히려 아내가 ‘자유’라는 큰 선물을 주고 떠났다고 합니다. “나를 모든
속박에서 풀어주는 자유를 주었으니 그 선물을 즐기려 한다”는 말에서
‘바로 저것!’ 삶은 인식하기 나름임을 재우쳐 깨닫습니다.
그는 회사 창업이래 43년 동안 사업가의 험한 도전의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과의 동행을 늘 갈망했습니다.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온몸으로 체화한 것이 ‘감사’고, 감사 뒤엔 늘 열매가 따른다는
진리를 터득한 사람입니다.
이젠 아내가 준 자유에서 ‘기쁨’을 찾겠다고 합니다. 감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감사를 즐긴다’는 뜻입니다. 아내가 떠나면서 모든 관계를
정리해 주고 신경 써야 할 모든 것을 걷어갔으니, 내 관심은 미래에
있지 과거로 회귀할 수 없다는 겁니다.
더 일에 몰입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픈 열망이 생긴다고 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간밤에 들어온 메일을 꼼꼼히 살피고, 외국어 공부
시간을 늘리고, 주(週) 2회 하던 헬스는 전일로 확대했습니다. 전동
킥보드도 그중 하나죠. 건강이라는 기본에 충실하자는 겁니다.
떠난 지 한 달이 넘는 동안 아내한테는 한 번 갔다고 합니다.
“가까우니까 갈려면 자주갔겠지. 그런데 집사람이 그러는 것 같아.
그동안 나 때문에 수고했는데 여긴 그만 오고 당신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라고.”
돌아오는 전철에서 생각합니다. “사랑도, 봉사도 살아있을 때 일” 임을.
아내를 보내고 자유의 날개를 새로 단 친구에게 마음의 편지를 씁니다.
'그 날개는 아내가 선물로 준 것이니, 남은 여생을 더 열정적으로 살고,
매사에 감사하고 즐기시게.'
그리고 얼마를 지났을까. 퇴근 길에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친구를
보았습니다. “한 가지 더 추가했어. 여기까지 전동 킥보드로 오고
인라인 스케이트로 바꿔 열바퀴 정도 타다 가. 이것도 재밌드라고. 하체
운동 많이 되고.”
그러던 그도 외짝의 삶을 근원적으로 치유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딸과 통화를 하다 울컥 뜨거운 것이 넘어와 소리내 울었다는···. 하지만
그는 이미 젓가락 한짝으로 사는 법을 터득한 사람입니다.
지난 주엔 1년 이상 코로나로 막혔던 해외출장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미국공장 준공에 맞춰 40일 간 출장길에 오르는 모습에서 삶의 도전
앞에 늘 품위와 겸손으로 맞서는 그가 아름답고 좋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