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들의 말법

이관순의 손편지[240]

by 이관순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거르면 서운함이 남는 사람이 있다
만나면 우리가 얼마를 더 만나랴!
이심전심으로 동창들을 만난다


그래서 만나면 언제나 시끄럽다
‘형’ ‘아우’ 족보 싸움은 여전하고
‘형수님’ ‘제수씨’ 호칭은 지금도
계속된다.


주민등록증 까자!
자네 군번 좀 대봐?
말문이 막히면 아직도 나이와 군번을
들먹이는 사이다



우린 친구를 가려가며 만나지 않는다
절대 그런 부류가 아니지
그 셈법은 오래전 고장 난 벽시계···.
이젠 서로가 만인지상, 만인지하다.


“별일 없냐?”
“별 일 있으면 나왔겠냐?”
“저 말법은! 너 얼굴 좋아 보인다.”
“남들도 그래”
“미친놈”



얼굴 도장만 찍어줘도

반가워하는 사이
만난다고 무슨 긴요한 얘기가 오가랴
우리 사이엔 말이 없어도

시간이 잘 간다

고마운 친구는 날이 좋으나 궂으나
꼬박 얼굴 디밀고 도장 찍는 친구고
밉상은 가리는 것과 이유 많은 친구다
때로는 그런 친구가 그리울 적이 있다

“아우, 잘 가게!”
“음. 제수씨한테 안부 전해라”
“미친놈”

오늘도 서산에 지는 노을이 곱다.
내일도 아침이 온다는 징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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