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보이는 것들

이관순의 손편지 [256]

by 이관순

저녁 창으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손을 씻다가 깨달았습니다. 비누가

나를 씻어주는 줄만 알았는데, 문득 떠오르는 상념이 ‘아! 내가 비누를

씻어주고 있구나!’ 가슴을 스쳤습니다.


제 몸이 다 닳도록 나를 위해 아름다운 소모를 하는 줄 알았다가 나도

비누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난 뒤

비로소 깨친, 서로를 위하고 씻어주는 관계임을 알았습니다.


쇠붙이에 녹이 슬면 쇠가 부식되어 망가지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다

녹이 쇠를 보호한다는 사실을 깨쳤습니다 세상에 헛 것이 하나도 없고

헛 된 연(緣)이 하나도 없구나.


오른쪽으로 감아도는 칡과 왼쪽으로 감는 등나무가 만나면 얽히고

꼬여 갈등(右葛左藤)을 빚는 줄 알았는데 그러므로 하나로 동화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새끼를 꼬고 밧줄을 만들 때 칡과 등나무 줄기가 좌우로 얽히듯

꼬임이 필요함을 이치로 알았습니다. ‘한 줄보다 두 겹이면 견딜 만

하고 세 겹줄은 쉬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생의 진리인 것을···.


“저녁노을이 종소리로 울릴 때, 비로소 땀이 노동이 되고, 눈물이

사랑이 되는 비밀을 알았다 "고 하는 시 ' 눈물 한 방울‘이 이어령

선생의 것임을 알았습니다.


내일 다시 해가 뜨려면 저녁에 노을이 져야 하고, 내일 웃으려면

오늘 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눈물 한 방울에 신의

은총이 있고 구원이 있음을 가슴으로 알았습니다.


오늘이 고통스럽고, 내일이 암담하고 슬프고 괴롭고 외로울 때.

‘눈물 한 방울’의 위로가 얼마나 크고 넘치는 것인가를 알았습니다.

눈물이 최상의 언어요, 격려요, 나눔임을 말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생명은 누구를 통하여 내려보내는 하늘의 은총입니다.

그것만은 똑똑히 기억하세요.


사람을 귀천으로 나눌 수 없듯 생명은 하나하나가 다 귀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다가 생명을 멸시하는 우(愚)는 범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늘을 조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니까요.


이를 아는 사람은 생명이 귀하고 생명을 품은 사람의 존귀를 압니다.


밤하늘의 뭍 별을 바라보세요. 저 많은 별자리와 셀 수 없는 별들도

다 제자리가 있습니다. 그 많은 별이 하늘에 자리가 없는 별은

하나도 없습니다. 누군가를 향하여 반짝이는 별입니다.


사랑을 탕진하고 희망을 쏟고 세상에 원망만 남을 때 돌아보십시오.

누구인가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나도

누구의 버팀목이어야 하고 기도해야 할 사람임을 알게 합니다.


네가 무너지면 함께 무너지고 내가 좌절하면 너도 주저앉는 사람인(人).

삶이 힘겹다고 어깨를 내리면 무너지는 건 나뿐이 아닙니다. 한 방울의

눈물을 나눌 때 기쁨이 되고 푸른 희망이 있습니다


세월이 이따금 내게 물을 겁니다. 그때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를 존중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미움은 아침 안개이고 설움은 풀잎 위 이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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