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266]
연극에 재미를 붙인 건 ‘추송웅’이란 배우 때문이었다. 1977년 삼일로 극장에서 초연된 ‘빨간 피터의 고백’이란 연극을 보면서였다. 이 연극은 추송웅 혼자 제작, 기획, 연출, 연기, 분장까지 수행한 모노극이다. 극은 밀림에서 포획된 후 서커스 스타로 거듭난 원숭이 ‘빨간 피터’가 자신이 인간화된 과정을 보고하는 형식으로 짜였다. 카프카의 소설 중 ‘어느 학술원에 보고된 자료’가 연극의 원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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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획 때 입은 상처가 붉게 남은 ‘빨간 피터’와 배우 추송웅의 캐릭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개막 4개월 만에 6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당시로는 흔치 않은 흥행에 성공한 연극으로 화제가 됐었다. 인간은 동물을 포획할 권리가 있는가? 생명의 자유와 평등, 인간의 야만을 원숭이의 감정으로 희로애락을 실감 나게 연기한 배우의 인상이 강렬해 ‘추송웅’은 피터요, ‘피터’는 추송웅이란 등가가 성립되었다.
빨간 피터가 연극의 재미를 준 작품이라면 ‘고도를 기다리며’는 아직도 답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이 연극이 초연될 때 나는 ‘고도’가 킬리만자로 고봉에서 사라진 사람쯤으로 알았다. 그런데... 그런 고도가 아니란 것을 대학에서 사뮈엘 베케트의 작품을 대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처럼 낯 뜨거운 기억을 안고 공연장을 찾았는데
이 번에는 연극 내용이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이렇다 할 줄거리도 없이 두 사내는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기만 했다. 무대에 등장도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정체모를 두 인물. 불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대화가 연극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제일까 저제일까 기다림은 지쳐가는 데, 극은 벌써 끝날 시점에 서 있었다. “결국 고도씨는 오늘 밤에 못 오지만 내일은 올 예정”이란 황당한 결말로 관객들에게 충격(뭐야!)을 주며 막이 내려졌다.
세계 연극사의 이정표를 놓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베케트는 시와 소설을 쓰다 47세 늦깎이로 처음 희곡을 발표한 것이 대성공을 거두어 세계 50여 개국 무대에 오르며 유명해졌다. 많은 사람이 고도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두 사람이 그토록 기다린 고도를 종교적 구원자로 연결하려고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과 피신생활을 겪는 베케트에게 고도는 무엇일까.
흔히 이 작품을 대표적인 부조리 연극으로 칭했다.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시작된 서유럽의 부조리한 사회상을 풍미한 부조리극은 새로운 연극 운동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작가의 엄격한 이미지와 작품의 난해함에도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건 고통스러운 인생의 비애 속에서 잃지 않은 유머 때문이 아닐까? 찰리 채플린을 좋아한 작가는 웃음의 효능을 익히 알고 있었다.
열광적인 독자가 그에게 말을 건네었다. “전 선생의 열렬한 팬이죠. 40년 동안 선생님 책을 읽었거든요.” 그러자 베케트가 “많이 피곤하셨겠소." 난해한 글을 읽느라 고생 좀 했겠다는 뜻이었다. 독자가 또 물었다. 나도 주인공처럼 뭔가를 계속 기다리는데 그것이 무언지 알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행복? 장수? 부자? 사랑? 딱히 손에 잡히질 않는다고 하자 작가의 답은 “피곤하시겠소." 똑같았다.
언젠가 ‘르몽드‘지에 이런 연극 평이 실렸었다. “이 저녁에도 어딘가의 무대에서는 두 명의 사내가 오지 않은 ‘고도’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이 밤에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이 연극이 공연될 것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의지가 무기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은 고도를 기다린다. 그 기다림 자체가 부조리한 것임에도 기다림을 포기할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란 것이다. 그것이 나, 아니 우리 인생일 수 있겠다.
무엇 때문에 사는지,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르고 홀로 외롭게 분투하다 황망하게 떠나는 인생을 생각하면, ‘고도…’의 무정함을 깨닫게 된다. 인생에 크나 큰 목표가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짧은 인생을 살아보면 딱 부러지게 한 것이 없어 보여서다. 누구는 거창하게 살고, 또 누구는 실없이 사는 것처럼 보여도 각기 주어진 삶을 자기 방식으로 살뿐이다.
인생은 성패로 좌우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저 펼쳐지는 이야기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이 물음은 우리에게 철학을 요구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거창한 삶? 비천한 삶? 그보다는 남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고 사는 ‘보통 사람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이 비범하게 들리는 것은 세상엔
보통 사람의 삶마저 어렵게 하는 요소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도’는 기다려야 한다. 오늘 안 오면 다시 또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