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예 아닌 것이 있을까

이관순의 손편지[268]

by 이관순

깊어가는 가을. 올해의 서울시 건축상을 받은 곳이 있다 하여 종로구

창신동으로 ‘서울 여담재(女談齋)’를 찾았습니다. 학교와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도심 속 휴식공간입니다.


사찰이 있었지만 관리가 안 돼 방치된 공간을 서울시가 매입해 4년간

리모델링을 통해 여성 교육공간으로 변신한 곳이죠. 건물 앞에 서면

과거와 현재의 결합이 이렇게도 되는구나 감탄이 절로 납니다.


우아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한옥 지붕과 기둥을 살려 유리벽으로 꾸민

현대적 공간이 이질적이고도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현대 한옥의

가능성을 보여준 21세기 하이브리드 한옥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곳.


나이가 들면서 한옥에 자주 눈길이 갑니다. 젊어서는 현대 건축가들이

설계한 집들이 눈에 쏙 들어오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관점이

달라진 겁니다.


장단점으로 따지면 현대 건축의 편리성과 기능성을 앞설 수 없지만,

한옥이 주는 편안함과 아늑함은 한옥만이 지닌 가장 큰 덕목입니다.

곡선이 주는 심적 미감을 직선이 넘볼 수 없어서죠.


전국 곳곳에 이름을 올린 한옥마을을 찾는 발길이 늘고 있다고 해요.

외국인들도 반하는 한옥은 서울의 북촌과 안동, 경주, 전주, 공주, 오성,

영천, 군위 등 팔도에 고루 퍼져 훌륭한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그중에도 애착을 갖는 곳이 충청지방의 외암 민속마을입니다.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터를 잡은 마을이지요. 한국의 전통적 마을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양반촌의 격식이 잘 보존되었다는 점이 다른 마을과 차별되는 곳이죠.

500년 전 형성된 이 마을은 충청지방 고유의 격식인 반가의 고택과

초가, 정원과 길이 5.3㎞의 자연석 돌담이 잘 보존돼 있습니다.


집주인의 출신지나 관직을 따서 참판댁, 감찰댁, 참봉댁, 종손 댁 등

택호로 불립니다. 민속관과 물레방아, 디딜방아, 솟대도 볼 수 있고,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클래식’ ‘취화선’의 촬영지이기도 해요.


풍수에서 명당인 배산임수는 삼산(三山) 양수(兩水)로 이뤄지는데, 이곳이

명당의 전형입니다. 마을 뒤로 세 봉우리가 병풍을 치고, 두 방향에서

흘러온 계곡물이 마을 앞에서 합수되는 모양새가 그래요.


마을 주민의 절반은 예안 이 씨죠. 이 가문의 뛰어난 인물로는 조선

후기 문신인 우암 송시열의 여덟 제자(강문 팔 학사) 중 한 분인 외암

이간과 고종 때 이조참판을 지낸 퇴호 이정열을 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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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충청남도가 전통마을을 지정하려 할 때, 퇴호 이정렬의 종손

이득선 씨 집에 1000여 점의 민속자료가 보존돼 있다는 소문이 돌며

외암마을이 세상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외암마을은 1988년 국가지정 전통건조물 보존지구로 지정된 데 이어,

2000년에는 국가지정 중요 민속문화재로 등재되고, ‘한국의 살기 좋은

마을 10선’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마을 이득선 씨.


고향 집에서 사서삼경을 공부하다 서울로 유학 간 그는 한양대에서

석사(토목) 공부를 하던 중 부친 별세 소식을 듣고 낙향합니다. 70년대

중동 건설 붐이 한창인 때이지만 자손의 도리를 앞세웠지요.


그리고 묘 옆에 초막을 지어 3년 시묘를 시작합니다. 굴건제복을 입고

매일 해뜨기 전 집을 나와 3㎞ 밖 묘소를 찾아 절하고, 싸간 누룽지로

점심을 먹고, 옹달샘 물을 마시며 지내다 해 질 녘 내려옵니다.


머리도 수염도 깎지 않아요. 겨울엔 무덤 주변에 쌓인 눈을 두 손으로

치웁니다. 아버님 누우신 곳을 빗자루로 쓴다는 게 불경스러워서죠.

“한 번은 일이 있어서 군청에 갔다가 난리가 났구먼유.”


가정의례준칙이 반포되던 때, 장발에 굴건제복 차림의 사내가 군청에

나타났으니 그럴 수밖에요. 공무원들이 붙들고 제발 머리 좀 깎고

굴건 좀 벗어 달라고 통사정을 했답니다.


“알았다구고 했쥬. 그런다구 안 하남유. 그러면서 하는 거유.” 그렇게

3년 3개월…. 그러는 동안 새들과도 친해져 그가 뜸부기 소리를 내면

뜸부기가 초막으로 찾아들 만큼 친해졌다고 합니다.


“3년에다 3개월은 또 뭔가요?”라는 질문에 “아 그야 덤이 지유.” 3년

시묘살이도 아쉬워 석 달을 더 보태어하다니…. 요즘 세태의 눈으로

보면 보통 억지가 아니겠지요.


유교 의례인 3년 시묘엔 보은의 뜻이 담겨 있어요. 부모가 나를 낳아

품에서 기른 기간을 대략 3년으로 본 것과 맥이 통합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일상에 예(禮)가 아닌 것이 있을까.


길을 갈 때도 신발 한쪽이 닳게 걸으면 안 된다죠. 마음, 심장 박동,

걸음걸이 3박자가 맞아야 해요. 내 집에선 방을 돌며 맷돌 잠을 자도,

남 집에선 웅크리고 자는 개잠이나 반듯하게 누운

송장 잠을 자야 하죠.


코를 골거나 이를 갈며 자서도 안 되지요. “사는 게 다 예절인 거유.

어려서 가르쳐야 몸에 배유. 그래야 뿌리가 튼튼하고 나라도 안정되는

것 아닌가유?” 이치가 그렇다는 이득선 씨 말입니다.


벌써 오래전 기억 속의 얘기네요. 세월이 참 많이 흘렀습니다.

-소설가/ daumcafe 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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