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함께 할 친구가 있나요

이관순의 손편지[278]

by 이관순


누가 그의 임종을 지켰을까? 지난해 봄 코미디계의 대부 쟈니 윤의

부음을 듣고 떠올린 생각입니다. 일찍이 미국 NBC의 ‘자니 카튼 쇼’에

동양인 최초로 발탁돼 꽃길을 걸은 사람입니다.


국내에선 ‘쟈니윤 쇼’로 토크쇼의 새 장을 열었지요. 하지만 삶은 화려해

보였어도 말년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LA의 한 허름한 요양원에서 치매

등과 싸우다 홀로 쓸쓸히 눈을 감았습니다.


인생도, 등산도, 성공은 하산에 있습니다. 돈 많고 지체 높은 세도가들도

모든 게 한 순간, 끝까지 잘 내려오는 게 성공한 삶입니다. 살아볼수록

그 이상의 가치가 없어 보여서죠.


“너무 바쁜 사람과는 친구 하지 마라.” 선배 분이 병상에서 아들에게

남긴 말입니다. 임종을 앞두고 친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 모양입니다.

왜 그런 말을 남겼을까….


죽음은 경험을 못 하니 앞서 간 분들의 말에서 유추할 뿐입니다.

세계적인 갑부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이 세상을 뜨기 전,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후회를 했습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었어요.

무소의 뿔처럼, 오직 한 곳만을 향해 치달리며 살다가 삶의 잔뿌리를

내리지 못한 겁니다.


위기의 순간에, 곁에 친구가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돈으로 산 친구는 돈 때문에 떠나지만, 가슴으로 만난 친구는 가슴이

아플 때 나타납니다.


톨스토이도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이 문제를 다룹니다. 임종을 앞둔

이반 일리치가 괴로운 건 용변을 볼 때마다 남의 도움을 받는 겁니다.

이 견디기 힘든 일을 도와준 건 하인 게라심이었어요.


생각하니 내 처지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대해 준 사람은 게라심 뿐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잠들기까지 곁을 지키는 그에게 미안함을 표하자

게라심이 주인에게 말합니다.


"우린 다 언젠가 죽잖아요. 그러니 주인을 위해 수고 좀 못하겠어요?"

이반 일리치는 게라심이 곁에 있다는 데 큰 위안과 행복을 느낍니다.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의 일화도 있어요. 미국 내브래스카 대학의

한 학생이 포천(Fortune)이 주최한 '여성과 일'이란 주제의 강연회에서

세계적인 부호에게 묻습니다.


“현 위치에서 걸어온 길을 돌아볼 때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겠습니까?"

그의 답은 이랬습니다. “누구는 원하는 것을 많이 얻는 걸 성공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나이가 되면 알지요.


당신이 사랑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해주면 그게 성공입니다.

당신은 세상의 모든 부를 다 얻고 당신 이름의 빌딩을 가질 수 있지만,

사람들이 당신을 생각해주지 않으면 그건 성공이 아닙니다.”


버핏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배경도 전합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됐던 유태계 여성이 있었는데, 세상을 떠나기

전 내게 이렇게 말했어요.”


“워런, 나는 친구를 사귀는 게 너무 더딘 게 탈이에요. 왜냐하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속으로 여러 번 이런 질문을 하거든요. 저 사람이 나를 정말

숨겨줄 수 있을까?”


워런은 말합니다. “위험에 처한 나를 숨겨줄 만한 사람들이 주위에

많으면 성공한 거고, 반대로 아무도 당신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면

성공했다고는 말 못 해요.”


학교를 같이 다니고 나이가 비슷해야 친구가 되는 건 아닙니다. 나이

차가 많아도 진정 마음이 통하면 가능합니다. 워런 버핏은 25세나 어린

빌 게이츠를 친구라고 불렀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친구를 원하면서도 내가 그러한 친구가 되려고

노력했는지는 깊이 생각지 않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무관심하게 지낸

지난날이 후회될 때가 되면, 친구는 내 곁에 없기 쉬워요.


진정한 친구를 찾으십니까? 먼저 진정한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십시오.

대만의 한 잡지사가 노령 인구의 빠른 증가로 인하여 달라질 미래의

모습을 다룬 웹 영화를 만들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특히 ‘미래의 노후(친구 편)’은 많은 독신 네티즌의 공감을 샀습니다.

성공한 4명의 자식들과 떨어져 혼자 사는 노인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아들과 손자가 온다는 소식에 들떠 정성껏 음식을 준비합니다.


준비를 다했는데 사정이 생겨 못 오겠다는 전화가 옵니다. 준비했던

음식은 그만 주인을 잃고 맙니다. 노인은 우중충한 밖을 보다가 친구를

생각합니다.


색 바랜 수첩을 펼치고 앞뒤로 넘겨 보지만, 나와 같이 식사해줄 만한

마땅한 친구를 찾지 못합니다. 조용히 수첩을 창가로 다가갑니다.

창밖엔 비가 옵니다.


결국 노인은 음식을 가득 차린 식탁에 홀로 앉아 식사를 시작합니다.

음식이 목으로 잘 넘어가지 않는지 목젖이 위아래로 움찔댑니다.

그 위로 마지막 엔딩 자막이 뜹니다.


끝까지 함께 할 친구가 있습니까?

22.1월호.jpg

*참고- 이 원고는 월간 목마르거든 신년호에 게재했습니다

이 잡지는 사랑에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교회가 매월 2만 부를 발행합니다.

2년 전부터 고정 필자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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