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286]
산책을 나왔던 닭과 나귀가 사자를 발견하고 사색이 되어 동굴에 몸을 숨겼다. 사자의 발자국 소리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터질 듯한 심장을 가누지 못한 닭이 죽기 살기로 울어댔다. 닭의 울음에 신경질이 난 사자가 스트레스받는다며 발길을 돌려 그냥 나가버렸다. 그러자 나귀가 생각했다. “괜히 졸았잖아. 닭 한 마리가
운다고 놀라 도망을 가다니! 그런 게 사자였어?” 졸아든 가슴을 편 당나귀가 우쭐해 건방을 떨었다. “너 여기
있어. 내가 나가서 사자를 혼내주고 올 테니까.” 말리는 닭을 뿌리치고 으스대며 나간 당나귀는 그 길로 살아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진정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내 삶의 구석구석에서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1986년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후 75초 만에 ‘펑~’ 폭발하면서 승무원 모두 사망했다. 챌린저호 발사가 전 세계에 TV로 생중계되던 터라, 폭발 장면은 온 세계 사람들로 비명을 지르게 했다. 수 억 개의 뇌세포 가운데
하나만 잘못돼도 바보가 되는 게 우리 인간이 아닌가.
우리 동네 열 살짜리 어린이가 비교적 손쉽다는 뇌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는데 말을 못 했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불행은 순간순간 삶의 현장 곳곳에 덫을 놓고 있다. 그럼에도 내게는 ‘그런 일이 없을 거야.’ 망각하며 사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말은 청산유수로 모든 걸 다 아는 척 떠들지만 실제 행동은 말과는 동떨어진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곤 한다.
연약한 인간이 지닌 삶의 가장 큰 덕목은 ‘겸손’이다. 섣부른 위로보다 밥 먹듯 성실하게 사는 인생이 제일이다. 마음까지 온유한 사람은 내 연약함을 살피며 배려하는 최고의 삶을 살아간다. 옛 선현이 말했다. “너무 착한 사람, 너무 공부 잘하는 사람 말고 관찰하는 사람이 돼라. 겨울 베란다 창가에 놓인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여자는 언제 울고 노인은 언제 웃는가”를 살피라고 했다.
관찰하는 사람은 내 안에 갇혀 살지 않고 시선을 밖으로 돌려 살피면서 산다. 세상은 밖으로 열려 있지, 안으로는 이기적인 자아가 있을 뿐이다. 열린 사람이 돼라는 것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넉넉히 품으라는 말이다.
우리는 오늘도 일어날지 모른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얼마나 근심 속에 살고 있나? 마음에 이는 불은 전국 소방차가 다 달려와도 끄지 못한다. 미움과 시기, 내 아집이 마음에 불씨를 만든다.
온유한 마음, 겸손한 태도는 모난 사람을 품어 둥글게 다듬어 준다. 여기서 나오는 친절한 마음은 모순과 다툼을 풀어주며, 어려운 일을 수월하게 하고, 어두운 마음에 불을 밝혀 준다. 누가 열불 나게 만들거든 말을 하기 전에 열부터 세어 보자. 그래도 안 풀리면 ‘참을 인(忍)’자를 소리를 내어 열 번 써 보자. 교만은 소리부터 내지만 온유한 사람은 마음으로 삭이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명철한 사람은 사람을 얕보지 않고 사람 관계에서 악을 멀리 한다. 남의 행위와 말은 언제나 선의로 해석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겠다. 좋은 글과 책을 읽는 것도 선한 마음을 닦는 일이다. 괴테는 좋은 글이란 “어린이에게 노래가 되고, 청년에겐 철학이 되고, 노인에겐 시가 되는 글”이라고 했다. 계층과 연대를 초월한 감동을 준다.
책 속의 세상에 공감이 된다면 꽤 좋은 책이다.
긴 시간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설교를 들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이 없을 때가 참 많다. 짧은 만남, 짧은 글을 읽고도 떠오르는 말이나 문장이 있다면 꽤 괜찮은 만남, 좋은 글을 읽은 것이다.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된다고 안달하며 탐심에 갇혀 살까. 나누고 비우면 채워지는 것도 있으니, 감사한 마음, 행복한 마음이다. 죽을 때 남기는 것은 닦은 마음과 지은 사랑뿐인 것을.
누군가 사랑하며 감사하며 살아도 부족한 날들.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된다고 마음 아파하고 화를 내면서 살까. 참지 못하고 성부터 내는 사람이 손해라고 말하면서, 오늘 나는 몇 번 화를 내고 아픈 말을 했을까. 되는대로 말하고 목청을 높이는 일은 스스로를 동굴에 가두는 일이다. 대화의 첫 번째는 듣는 데 있다. 말하는 동안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귀는 열고, 차근차근 말하는 루틴을 만들었으면.
많이 웃자. 웃음은 전염이 빠르다. 슬픔과 아픔에 위로가 되고 남남을 친근하게 이어 준다. 웃는 건 썩 좋은 습관이다. 감사하며 나누고 배려하는 삶은 마음속 미소로 시작되는 법이다. 노력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모이면 관행을 만들고, 관행이 모여서 전통을 만든다. 우리 집 가풍도, 사회적 관습도, 나라의 전통도 내가 놓는 벽돌 한 장으로 시작된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