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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관찰한 이어령

이관순의 손편지[289]

by 이관순

시대의 큰 어른이 죽으면 ‘별이 졌다’라고 하거나, ‘별이 되었다’라고

하잖아요. 같은 뜻이겠지만 굳이 ‘하늘에 별이 되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지금과 같은 때.


시대의 지성으로 불리던 이어령 교수(89세)가 2월 26일 세상에 부음을

알렸습니다. 그토록 곡진한 사랑을 쏟았던 딸(이민아 목사)이 하늘에 별이

된 지 10년 만에 아버지도 별이 돼 하늘로 이사했습니다.


2012년 젊은 딸이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의연하게 별이 되자, 췌장암을

앓던 아버지도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꼿꼿하게 일상의 삶을 지탱하면서

마지막 벽을 응시하다가 별이 된 것이, 부녀가 닮았습니다.


선생은 통증을 잊기 위해 일을 하고 피를 토하듯 열강을 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통증을 줄이려는 방법임을 사람들은 몰랐죠. 죽음은 보는 사람을

선하게 만듭니다. 스토리 텔러 김지수가 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도

인간 선함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어령의 죽음은 그를 경험한 사람에 따라 천재 지성인의 죽음이고,

학자의 죽음이고, 전직 장관의 죽음이고, 혹자는 88 올림픽 개·폐막식을

지휘한 지성 엔터테이너의 죽음이라고도 말할 것입니다.


생전에 그를 따르던 수식어들. 문학평론가, 대학 교수, 언론인, 소설가,

수필가 등 화려한 이력이 오히려 천재의 깊이에 집중할 수 없게 하는

요소지만, ‘다작 작가의 죽음’에는 모두가 동의하겠지요.


많은 이가 이어령 선생을 천재 작가라기보다 천재 지식인으로 말하는

이유는 무얼까? 대부분의 작가들은 부박한 전두엽을 다잡고 고뇌하고

고통과 부실함에 싸우다 산물로 적당한 ‘문장’을 건집니다.


내가 천착하는 이어령의 문장은 ‘굴렁쇠’, ‘눈물 한 방울’, ‘관찰’이라는

세 개의 문장입니다. 굴렁쇠와 눈물 한 방울은 선생의 비장한 관찰이

없었으면 생겨나지 못했을 문장입니다.


들판에서 굴렁쇠를 굴리던 여섯 살 아이가 바람 속에서 바라본 것,

내 일생에 헌신한 쭈그러진 발톱을 깎다 뚝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은

그만이 관찰할 수 있는 삶과 죽음의 통찰의 산물이었으니까요.


때마침 읽은 책이 로보트 루트번스타인 부부가 쓴 ‘생각의 탄생’입니다.

“수학이 애먹인다고 걱정하지 말게. 나는 자네보다 훨씬 심각하다네.”

아인슈타인이 수학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동료를 배려하는 천재 과학자의 지나친 겸손이었을까? 아인슈타인의

동료들은 그가 실제로 수학에 약했으며, 자신의 작업을 진척시키기

위해 다른 수학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흔히 천재란 복잡한 이론과 논리로 철저하게 사고하는 사람으로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해요. 아인슈타인은 “과학자는 공식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요.


“직감과 직관, 사고 내부에서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심상이 먼저

관찰된다. 말이나 숫자는 이것의 표현 수단에 불과하다”라고.


저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피카소, 스트라빈스키처럼

학문과 예술 분야에서 창조성을 빛낸 천재들의 사례를 통해 생각하는

방법을 탐구하고 이를 ‘상상력’과 ‘관찰’로 요악됩니다.


모든 지식은 먼저 ‘관찰’에서 시작됩니다. 관찰의 대가였던 피카소가

하루는 기차를 탔습니다. 옆 좌석의 신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신사에게

실재의 본보기가 있다면 내게 보여줄 수 있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신사는 지갑에서 아내의 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내 아내죠.

놀랍도록 같아요.” 피카소가 사진을 위아래로 한참을 살핀 뒤 말합니다.

“당신 부인은 아주 작군요. 게다가 납작하고요.”


피카소는 예술이란 사람들이 진실을 깨닫게 하는 거짓말이라고 했어요.

그는 상상이 사실보다 진실하다고 믿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이어령의 관찰을 생각합니다. 그는 삶 너머 죽음도

관찰하고 싶어 했어요. 마지막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까지. 그의 말이

화려한 언변 수사가 아님은 그의 죽음에서 확인합니다.


그의 아들이 전하는 선생의 임종 장면은 온몸에 전율을 일게 합니다.

죽음을 응시하고 보고 싶다던 말대로 죽음 앞에 꼿꼿했던 눈빛….

선생은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눈을 뜬 채로 맞았습니다.


하늘에 또 하나 별이 떴습니다. 이제 살아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남긴 많은 문장의 숲을 거니는 것뿐입니다. 그 숲을 거닐다

아주 가끔 생각이 날 때면 밤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겠지요.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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