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4월의 끄트머리 30일에, F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4월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노래입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친구만큼이나 반가웠습니다.
목련꽃그늘 아래로 스며드는 서정이 그러합니다. 피리 소리를 찾아서
구름꽃 언덕을 넘어, 이름 없는 항구를 돌고 돌다가, 그러다 찾은 것이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이라면, 그래도 4월은 찬연하고 선연합니다.
늘 멜로디에 사람의 얼굴을 얹거나 모습을 떠올리며 불러야 제 맛을
내던 노래…. 학창 시절 무지개로 떠오르던 얼굴들은 지고, 지금은
노래의 구절마다 흔적 없는 세월의 연민이 뒤따를 뿐입니다.
1953년 산하를 핏빛으로 물들이던 6.25 전쟁이 끝날 무렵. ‘학생계’라는
잡지에서 학생들의 정서를 다독이고 희망을 노래하는 곡을 만들기로
하고 두 분에게 직시와 작곡을 의뢰했습니다.
노랫말은 박목월 시인이 시로 짓고 작곡가 김순애 선생이 곡을 붙여
태어난 노래가 ‘사월의 노래’입니다. 노래가 잡지에 실린 후, 입에서
입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피리를 불어 추억을 노래했습니다.
꽃다운 청춘들이 학도병이란 이름 아래 참혹하게 희생된 전쟁의 잿더미
위로 다시금 피어날 봄을 사모한 노래입니다. 우리에게 시론(詩論)을
가르친 박목월 선생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목련화가 화사하게 핀 목련목 그늘에서 책을 읽는 여학생의 얼굴을
상상했다. 파란 하늘에 뜬 흰구름, 눈부신 흰꽃과 하얀 학생복을
입은 여학생의 구도가 만든 순백의 아름다움을…. 구차한 피란살이
숨 막힌 생활에서 벗어나 나 홀로 동경의 세계로 훌훌 날고 싶은 계절의
유혹을, 젊음이 누릴 수 있는 낭만과 기쁨에 담았다”
세월은 가고 4월 끄트머리에 다시 찾아온 ‘4월의 노래’. 아름답다 못해
서늘하기조차 한 나무 밑 그늘. 음미할수록 파란 하늘에 떠도는 구름과
같이 아련하고 아득한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 대신 이어폰을 끼고, 눈물 어린 무지개를
눈물 없이 흥얼거리고, 이름 없는 항구 대신 이름 있는 항구, 여수항을
떠올리면서 찬란한 5월의 모란을 기다립니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청보리는 얼마나 자랐을까? 지금이 모란이 필 때가
아닐까? 조금만 지나면 감꽃도 아카시아도 필 텐데. 그냥 들판으로
나가고 싶다, 순백의 생명이 등불을 밝히는 들판으로….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