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2022.05.09
그렇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한다더니 그녀가 지금 그 짝인 셈이다. 여자 나이 서른셋, 여자로 익을 만큼 익은 나이지만, 지난해 가을 시집을 보내던 친정어머니의 표정은 만 가지가 다 안쓰러움뿐이다.
“어쭙잖게 나이만 찼지 살림을 아나, 세상 물정을 아나, 그저 신랑 하나 좋아 헤헤대며 따라나선 내 꼴이 꾀나 철딱서니 없어 보였겠다….” 이제야 느끼는 감정이다.
신랑 떨어져 시부모 모시고 한 번 살아봐라, 눈물이 쏙 빠질 테니까. 요즘 세상에 아직도 그런 집안이 있니? 신랑은 발령을 받아 서울로 올라가고 새색시는 시집에 그냥 눌러있게 하다니 그게 뭐하는 짓이랴? 며느리 수업을 받아야 한다고, 우리 집 가풍이 그렇다고 주접떨 때 하 서방 내 그때 알아봤다…. 눈시울까지 붉히며 지난 설 명절 때 처음 친정에 들린 딸을 보고 이것아, 얼마나 고생이 되면 얼굴이 반쪽이냐 하며 타박하던 엄마 모습이 아릿하게 눈에 밟히는 것도 요즘의 그녀 마음이다. 겁 없이 덥석 시댁 생활 1년 약속을 받아들인 게 잘못이다. 친정 동생이 군에서 제대할 날짜를 꼽느라 달력에 엑스표를 치며 살았다는 말이 지금의 심정 이리라.
아직도 여섯 달이 남아 있다. 말이 신혼이고 단꿈이지 지금 그녀에겐 이것도 지옥이구나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때 신랑 꽁무니 잡고 따라나섰어야 했는데, 시부모 마음 헤아려 입술을 깨물다가 신랑만 서울로 보낸 것이 원초적인 죄다. 그렇다고 시집살이가 고된 것은 아니다. 외관상으로는 투정 부릴 것이 없는 비교적 후한 시집 여건이었다. 끔찍이도 막내며느리라고 되레 보살핌을 받는 입장이다. 식구라곤 두 시어른뿐이니 어지럽히는 사람이 있나 편하다면 한없이 편한 시댁이었다. 단 하나, 신랑이 돌아오는 주말까지 혼자 독수공방을 하는 것이 큰 흠이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 하나님을 부르짖어야 할 정도로 고독과 쓰라림이 아긋아긋 벌어지는 것이었다.
“자기가 약속한 것 아냐? 열 달 참지 못 하겠냐고! 서울에 혼자 있는 나도 힘들어요.”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앙앙거리는 색시를 얼리다 달래다 하던 신랑도 괴롭다는 듯 말을 했다. 마침 주말이 돼 시부모가 결혼식이 있다고 일찍 나가셨겠다 그녀는 그동안 별러온 남편과의 일전을 작심하고 달려들었다. 남자는 신혼 때 꽉 잡지 못하면 평생을 후회한다는 선배 언니 말을 되살리면서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굵지도 않은 손목이 드러나도록 팔을 칭칭 걷어 부치고 입에 억지 거품을 물었다. 어둠이 내린 저녁녘 부모님이 돌아오기까지 젊은 내외는 찬물을 벌컥 들이키며 설전에 냉전을 거듭한 결과 성에는 안찼지만 그래도 맘이 후련한 것은 여자 쪽이었다. 현실이 현실인 만큼 어차피 올가미를 벗을 수 없는 쪽은 색시란 것을 신랑이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나도 괴롭다. 힘들다. 나 이렇게 달력에다 매일 같이 X표 긋고 사는 사람이야.”
신랑은 양복 주머니에서 깨알처럼 날짜 위에 X표를 그어댄 손 달력을 여자에게 내보이며 탄식했다. 순간 코끝이 찡해온 건 여자였다. 그러면서도 멍청하긴 사내대장부가…. 그 속도 모르고 신랑만 닦달한 자신이 좀 심하지 않았나 하는 미안함이 스쳤지만, 눈을 질끈 감는 게 상책이다.
어쨌거나 이날을 계기로 남편과 어른 간에 어떤 내막이 생겨났는지 알 수 없지만 시어머님이 묻지도 않은 말을 자청하고 나서는 것이었다.
“아가, 지금은 이 생활이 쓰겠지만 좀만 참아내면 훗날 다 약이 될 거다. 있는 날까지 남편한테 투정 부리지 말고 잘해.”
뜻 모를 시어머니의 말이 그녀의 목에 가시처럼 걸렸다. 아직도 엄마엄마 해가며 미주알고주알 다 쏟아내는 신랑의 얼굴이 야지랑스럽게 떠올랐다. 아직도 마누라 치마폭으로 못 들어오고 엄마 치맛자락에 놀고 있는 남편이 철없어 보이기도 딱하기도 했다. 방에 들어와 쪼그리고 생각하니 또다시 눈물이 삐죽 흘러나왔다. 그래 참자. 지금까지 잘 해왔는데 그르칠 수는 없잖아. 얼굴을 거울에 들여대고 화장을 고친 후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고대해온 주말 저녁, 땅거미를 밟고 허청 대며 신랑이 집으로 들어왔다. ‘색시야 나 왔어’ 방싯거리는 신랑의 모습, 그래도 반가운 건 신랑이었다. 한 주간의 고단함을 씻는 순간이었다.
“잠깐만 들어와 봐, 오빠 나보고 싶었어? 정말?”
안방에서 인사하고 나온 신랑을 방으로 밀고 들어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딴에는 정제하며 털어놓을라 치면 영 손발이 안 맞고 어긋나기 일쑤다.
“아직도 애네 우리 색시. 자 어서 나가 저녁 해야지. 어른들 시장하시겠다.”
분위기 좀 잡으려고 하면 이런 식으로 찬물 뒤집어쓰고 색시는 부엌으로, 신랑은 안방으로 각자 약진을 해야 하는 아픔을 씹어야 했다. 그때마다 야속한 사람 얄미운 사람, 색시는 소금장수 물 키듯이 섭섭함으로 헛배를 키우며 부엌 한 모퉁이에 서 있었다. 그러한 색시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신랑은 안방에만 들어가면 하세월이었다. 연속극이 다 끝나고 엄마가 TV를 끌 때까지 자리 보존하다가 야심해서야 색시 앞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아직 안 잤어? 피곤하잖아?”
저 뻔뻔. 몰라서 저럴까 알면서 능청일까. 색시는 등을 돌려 누며 눈을 감았다. 신랑이 등 뒤에서 수작을 걸었지만 오늘 내가 꼼작이나 하나 봐라. 어림없지. 신랑의 손이 닿을 때마다 달팽이처럼 몸을 말아 틈을 주지 않으려고 오기를 부렸다.
“색시야, 또 삐친 거야? 미안해.”
“뭐 하러 왔어? 그렇게 좋으면 엄마랑 자지 왜. 여기 잠자는 하숙집 아냐.”
존심도 상해 생각 같아서는 밤기차에 올라타고 친정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도 일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주말에 내려왔다 하면 안방에 무슨 꿀단지라도 박아놨나 낄낄대다가 과일 찾고, 커피 주문하며 그 넉살을 혼자 다 떨고 있는 것을 보면 참 태평천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색시야. 질투할 게 따로 있지, 그러지 마. 엄마와 난 선택의 대상이 아냐.”
어쩌면 신랑이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말이라도 자기밖에 없어 왜 말 못 하는 거지? 편의 주의자, 이기주의자 남자란 다 저 모양일까. 생각이 이쯤 미치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결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차라리, 때늦은 후회가 폴싹 거리기도 했다.
“나도 자기 맘을 다 알아. 하지만 저녁 숟갈 놓고 바로 일어날 수는 없잖아. 보기에 그렇잖아. 우리 이 집에서 사는 날까진 어른 중심으로 살자. 나도 불편하지만 그렇게 하는 게 편하다.”
피곤하다고 하고 나오면 안 돼? 아님 몸이 안 좋다고 하던지. 그런 주변도 융통도 없어? 턱을 차고 넘어오는 말마디를 문질러 삼킨 색시는 주르르 눈물을 흘린다. 남편은 갑자기 어진 신랑이 되어 아내의 눈물을 닦아준다. “우리 각시님도 어쩔 수 없는 여자군.”
그래 나 속 좁다. 그러는 오빠는? 색시는 입에서 오물거려지는 말이 있었지만 내뱉지는 않았다. 말하고픈 의욕도 기력도 없어진 듯했다. 자기가 무슨 독립투사야, 입만 열면 대의를 위해서고, 가정 평화고 더 이상 그런 구호에는 신물이 넘어온다. 그런데 신랑은 한발 더 나간다.
“내가 안방에 앉아 좀 있기로, 그런 식으로 시위하는 건 지혜롭지 않은 거야. 밖에서 괜히 콩콩 소리 내어 걷고 기침하고 방문을 열었다 닫았다… 그러지 좀 말자.”
얼굴이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알긴 다 알고 있었구나. 저 거미줄 같은 탄력 좋은 감성으로 어쩜 하나뿐인 자기 사람에게 저렇게 차고 이성적일 수 있을까. 이질적인 개체들이 하나의 동질로 이루어가는 게 부부라면 우린 애 저녁에 그르친 건 아닐까…. 이 같은 실망감이 들기 시작하면 섬뜩하다.
이 날따라 서방님은 자정이 돼서야 안방에서 돌아왔다. 혼자 무엇이 그리 좋은지 입가에 치약 거품 같은 웃음을 베어 물고서. 저런 웃음을 가증스럽다고 하는 게지. 마음이 상한 색시는 남편을 보고 등을 돌렸다. 언제 옷을 벗어던졌는지 이부자리에 들어오는 남자의 맨살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색시는 도망치듯 등을 앞으로 밀어갔다.
“색시야. 얼굴 들고 날 좀 봐봐.”
신랑의 팔이 어느새 색시의 목과 어깨를 가볍게 감싸고 있었다. 색시의 식어빠진 눈빛이 태양처럼 환한 서방님의 눈빛에 부시었다.
“색시야. 엄마가 오늘 승낙하셨어. 기을에 살림을 내주시기로 했어.”
색시는 서방님의 달뜬 목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가슴을 때리는 천둥소리였고 예리하게 꽂히는 비수의 칼끝이었다.
“그 따가운 색시 눈총 참아가며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모를 거야. 입 악다물고 이날을 기다려왔는지 색시는 모를 거야. 이 속 좁은 여자야.”
“진짜? 정말 어머님이 그랬단 말이야?”
“아님 가짜라면 좋겠어? 내가 그동안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조기 졸업하려고. 그것도 모르고 앙탈만 부리고.”
오 마이 갓! 이들 둘은 으스러지게 서로를 끌어당겼다. 그토록 이질적으로만 느껴왔던 서방님이 이 순간처럼 동질로 느껴진 적은 없었다. 부부는 일심동체란 걸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미안해 난 그것도 모르고 오빠한테 투정 부렸어, 사실 내 맘은 그런 게 아녔어. 알아 다 알아. 온몸이 장작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동창이 열리고 아침 해가 한 발도 넘게 떠올랐는데도 불구하고 집안에 새댁의 그림자가 보이질 않았다. 시어머니가 밥을 짓고 아침상을 다 차렸는데도 기척이 없다. 밖에서 시아버지의 헛기침소리, 야들아, 야들아! 시어머니의 애끓는 부름도, 백방이 무효였다.
“연탄가스 마신 건 아닌지 모르겠네. 문이라도 뜯어야겠네.”
허겁 대는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요령처럼 꿈결에서 흔들렸다. 문 두드리는 소리에다 문짝 뜯는 소리가 날 때, 젊은 내외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오빠, 이를 어쩜 좋아?” 두 사람의 눈빛이 난감하게 엇갈렸다.(*) 25.4
-소설가/ daum cafe 이관순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