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318] 2022. 10. 24(월)
조선 17대 숙종은 어느 왕보다 풍성한 일화를 남겼다. 이날도 암행에 나선 숙종이 어느 오두막집을 지나다 걸음을 멈추었다. 집안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문밖으로 흘러나왔다.“가세가 어려워 보이는 허름한 집에 웬 웃음이 저리도 많을꼬?” 숙종이 주인장을 불러서 지나는 나그네라며 물 한 그릇을 청했다. 잠시 열린 문틈으로 방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가 새끼를 꼬고 있는데 옆에서 손자들이 짚을 골라 할아버지를 돕고 있었다.
한쪽에선 할머니가 빨래를 밟고 있고 며느리는 옷을 깁는 등, 한눈에 보아도 정겨운 모습이었다. 물그릇을 비운 뒤 노인에게 물었다. “살림도 어려워 보이는데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보오. 웃음이 그치질 않는 이유라도 있소?” 물음에 주인이 겸손하게 말했다. “어렵게 살긴 해도 조금씩 빚도 갚아가고 저축도 할 수 있으니 마음이 편해서 절로 웃음이 나온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궐로 돌아온 임금은 좀처럼 그 말이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었다.
며칠 뒤 숙종은 다시 그 집을 찾아갔다. “빚은 어떤 수단으로 갚고 저축은 어떻게 한단 말이오?” 그러자 주인이 웃음 띤 얼굴로 말해주었다. “부모님을 공양하는 일이 빚을 갚은 것이고, 제가 늙어 의지할 아이들을 키우고 있으니 이게 저축이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임금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뜬구름 같은 부귀영화가 행복이 아님을 생각한 것이다. 천국 같은 곳에서 지옥같이 사는 사람이 있고, 여건은 지옥 같아도 천국처럼 살 수 있다는 것을.
삶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래서 이러한 말과 글들이 나오나 보다. 웃음소리가 나는 집엔 행복이 와서 들여다보고, 고함소리가 나는 집엔 불행이 와서 들여다본다고…. 받는 기쁨은 짧아도 주는 기쁨은 긴 여운을 남긴다. 항상 기쁘게 사는 사람은 주는 기쁨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어떤 이는 가난과 싸우고 어떤 이는 재물과 싸운다고 하지만, 가난과 싸워 이긴 사람은 들어봤어도 재물과 싸워 이겼다는 소리는 들어본 지 오래되었다. 사람들은 달리는 사람에겐 박수를 치지 않다가도, 넘어졌다 일어나 다시 달리는 사람에겐 박수를 보낸다. 이것이 인생이다.
느낌 없는 책은 읽으나 마나 하고, 깨달음이 없는 종교는 믿으나 마나 하다. 누구나 성인군자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성인군자에 이르지 못하는 건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심 없는 사람과는 깊은 사귐을 기대하지 말자. 내 희생이 없는 사랑은 마른땅의 풀처럼 허허롭다. 비뚤어진 마음을 바로 잡는 이는 똑똑할지라도, 비뚤어진 마음을 버리지 못하면 두고두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먹이가 있는 곳에는 빠짐없이 적이 도사리고 있다. 영광을 찾는 곳에는 반드시 상처가 나는 법이다. 남편이 사랑이 크면 아내의 소망은 안으로 커지게 마련이고, 아내의 사랑이 클수록 남편의 번뇌는 줄어듦이 인생사의 이치이다. 누가 말하길 부부는 두 발을 같이 묶고 달리는 ‘삼각 경주자’라고 비유했다. 그러므로 발을 잘 맞추지 못하면 도중에 넘어지거나 사고가 날 수밖에….
그래서 삼 주를 관찰하고, 세 달을 사랑하고, 삼 년을 싸운 다음, 30년을 서로 참고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사의 또 다른 이치이다. 그런즉 미인은 눈을 즐겁게 해도 아내는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고,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지켜주는 사람이다. 이 모든 게 살면서 배우는 공부가 아닐까.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