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칠이 안 되는 인생

이관순의 손편지[47]

by 이관순

남성이 여성보다 과포장 되었다고 합니다. 여성 염색체 ‘XX’보다 남성 염색체 ‘XY'가 상대적으로

불완전한 결합구조를 지닌다는 이유에서지요. 수컷 태아가 암컷 태아보다 약하고, 여아보다 남아의 정신장애 비율이 높고, 남성 평균수명이 여자보다 짧은 것도 이에 연유한다고 합니다.


이제 여필종부는 사전에나 남은 말이라고 해요. 지금은 남필종부(男必從夫) 시대입니다. 또박또박 따지고 다가앉는 여자 앞에서 남자는 비로소 논리적으로도 밀리고, 말주변도 딸린다는 걸 알아챕니다. 예전엔 남자라는 권위 하나만으로도 통했는데, 그마저 무장 해제되고 나니, 따따부따 몇 마디하다 안 되겠다는 상황 판단 때문인지 입을 다뭅니다. 여자에 비해 눈치도 없고, 시각, 청각 다 둔하고, 피부도 두꺼우니 감각마저 떨어집니다. 웃어도 피식 웃고, 말수도 짧아지고, 통화도 1분이 넘는 경우가 없습니다.


여자는 말이 터졌다하면 30분도 기본입니다. 집집마다 저녁걷이를 끝낸 딸이 엄마에게 전화하는 밤은 시간이 제삿날입니다. 모녀가 깔깔대며 주고받는 시간을 보면 남자의 둔한 머리로는 잘 이해가 안 됩니다. 궁금해서 통화를 끝낸 아내에게 “무슨 얘기야?” “으응, 별 거 없어.” 어쩌면 금방 딴 사람이 돼 대답 한 번 쿨 합니다.


반면에 여자들은 얘기할 때도 서로 만져가며 웃고 떠들어야 해요. 가까운 사이는 더 들레지요. 다분히 오감이 오가는 감각적 소통법입니다. 찜질방에 세 여자가 앉아서 대화하는 모습을 보세요. 한 여자 는 자식 자랑, 또 한 여잔 시동생 바람피운 얘기, 남은 한 여자는 아파트 값 떨어져 속상한 얘기를 털어 놓습니다.


화제는 제각각인데, 대화는 끈임 없이 이어지고 모두가 자기도취형입니다. 한 쪽은 속상한 얘기를 하는데 자식 자랑하던 여자는 핸드폰 들여다보며 웃고 있습니다. 그래도 자기 할 말은 따박따박 다 챙겨서 해요. '그래서?' ' 어쨌어?' 뭐야! 합동으로 깔깔깔....



곳곳에서 여자가 득세하는 세상입니다. 학교든 사회든 시험 봤다 하면 1등은 다 여자가 꿰차잖아요. 뚝심이 중요했던 제조업시대가 가고, 섬세하고 감성적인 두뇌가 중시되는 4차 산업시대엔 구조적으로 여자가 앞설 수밖에요. 바야흐로 남자가 여자에게 순종함이 미덕인 시대가 온 겁니다.

그래도 조선시대처럼 평균수명이 50세 아래일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남자가 기가 살았을 때 다 죽고마니까요. 문제는 지금. 100세 시대가 공공연해지면서입니다. 남자가 직장에서 나오면 60세 전후인데, 이때부터 기는 빠져나가고 밀려다닐 생각을 하면 100세 시대가 축복만은 아닌 듯합니다.


청계산 아래 음식점에 하산한 장년 팀이 둘러앉았군요. 건강 이야기를 하던 분이 “친구야, 오랄 때 잘 나와. 앞으로 40년 살아야 해. 운동밖에 없어.” 그러면서 자신의 팔뚝 근육을 자랑합니다. 다른 친구가 거듭니다. “건강하자. 요양원에 가지 말고!!” “암, 건강해야지. 자 듭세.” 함께 잔을 부딪치고 9988을 외칩니다.

저녁시간, 아파트 놀이터는 아이들로 시끄럽습니다. 따라온 엄마들도 삼삼오오 모여 말판을 키우는걸 보면, 애어른이 합세해 5일장이라도 연 듯합니다.

“그 집 할아버진 몸에 좋다는 건 다 드신다며?” “좀 유별나시지. 운동도 시간 반 꼬박하셔.” “우짜신다냐? 장수무대 나오시겄다!” 뭐야!? 까르르 자르르 한바탕 웃음소리가 회오리칩니다.

강의 차 전주행 열차를 탔다가 오래전 대학에서 정년퇴임하셨다는 분 옆에 앉았습니다. 연배가 나보다 지긋해 보입니다. 그 분은 내 물음에 너무도 진지하게 답하십니다. “난 어리석은 사람이오. 죽는 걸 빤히 알고도 영원히 사는 것처럼 일했어요. 이제는 내 언행 하나하나가 유언처럼 돼버렸어요. 인생은 붓글씨처럼 개칠도 안 되잖아요. 그래서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하루하루 전념해 살려고 합니다.”


그날 밤 상경열차에서 낮에 만난 그 분의 말을 떠올립니다. “우리가 죽는 존재임을 알면 그 앞에선 명예, 권력, 재물이 다 휴지조각인 것을. 그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다가 가슴으로 내려오기까지 꼬박 70년이 걸렸어요. 어둠 속에서는 빛을 모르오. 어둠에 묻힌 빛을 찾을 때 비로소 생명의 숭고함을 깨닫게 되더라.”는 말.

그러면서 내게 자문합니다. 어둠을 알고 있는가? 오늘을 마지막 날 처럼 전념하고 사는가? 인생을 개칠하고 있지는 않은가?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letter

keyword
작가의 이전글너 청산은 살아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