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유적지( Dinosaur National Monument)에서 나와 149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40번 도로에 진입했다. 이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쭈욱 가면 유타 주의 주도인 Salt Lake City가 나올 텐데.... 이름만 들어도 왠지 친근한 도시다. 일찍 돌아가신 은사님께서 오래전, 솔트 레이크 시티에 살고 계셨다. 그때 보내주셨던 사진엽서 속의 도시 풍경을 직접 보고 싶었다. 하지만 맞춰야 할 일정이 있어서 맘을 접고 남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남쪽으로 향해 가던 중, 익숙한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Bonanza'(보난자)는 1970년대 우리나라 TV에서 방영했던 인기 많던 미국 드라마 제목이다. 그 제목이 지명이었나?서부를 배경으로 홀아버지와 카우보이 삼 형제가 등장했는데, 난 막내아들 '죠'를 제일 좋아했었다. 물 때문에 이웃 농장과 싸움이 일어났던 이야기도 있었는데.... 건조기후 지역이라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었으리라. 보난자의 신나는 OST를 흥얼거리며, 한적한 도로를 한참 지나갔다.
서부로 들어서면서 도로공사 중인 곳을 여러 번 만났다. 한국에 비해 느리게 차량을 소통시켜서 아주 답답했었다. 편도 1차선 도로의 차선 하나를 막고 공사하면서, 양방향 차들을 모두 정지 상태로 기다리게 했다. 그러다가 인도하는 차가 오면 그때까지 기다리던 한쪽 차량들이 쫄쫄 따라간다. 그다음 반대 방향의 차들도 인도 차가 도착하면 따라가는 시스템이다. 지나다니는 차량도 몇 대 안되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오래전 바다였던 이곳은 지각변동으로 솟아오른 콜로라도 고원의 일부이다. 그 위를 한참 달리다 보니 드디어 캐년 랜드(Canyonlands National Park)가 나타났다. 놀랍고 신비스러웠다. 이런 지형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게 믿어지질 않았다. 다양하고 섬세하게 조각된바위들로 가득한, 자연이 만든 광대한 조각 전시장이다. 풍화, 침식작용으로 이런 지형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 독특하고 웅장한 장면은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더운 여름, 건조지역을 여행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곳에서 생전 처음 보는 독특한 경관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기분을 들뜨게 한다. 캐년 랜드 입구에서 남쪽으로 가다 보면 아치스 국립공원(Arches National Park) 입구가 나온다. 이곳엔 갖가지 독특한 지형들과 300여 개의 아치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유타주의 상징인 델리키트 아치(Delicate Arch)이다.
이곳의 지질은 모래가 바닷속에서 퇴적된 강도가 약한 사암이다. 그래서 아치 위에 올라가는 행동은 금지된다. 우리는 공원 내 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대표적인 포인트를 둘러보았다. 지나가면서 만난 기암괴석의 반질반질한 벽면엔 언제 그려진지 모를 그림의 흔적이 보였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벽화인 것 같다. 그럼 오래전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건데.... 이 척박한 땅에서 뭘 먹고 살았을까? 아마 이 사람들의 생업은 사냥이었겠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흔적은 지명으로 곳곳에 남아있다. 미시시피(큰 강), 아칸소(하류에 사는 사람들), 알래스카(섬이 아닌 땅), 애리조나(작은 호수), 위스콘신(강이 모이는 곳) 등등.... 내가 살던 워싱턴 D.C. 부근에서도 원주민 언어로 된 강 이름, 지명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동부에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은 이런 흔적만 남기고, 백인에 의해 척박한 서부로 쫓겨나 현재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산다고 한다.
우리 차만 달리는 느낌으로 191번 도로를 따라 남쪽을 향해 가다가 유타주 남쪽 작은 도시의 비지터 센터에 들어갔다. 아들이 주한 미군으로 군산에 근무했었다는 직원분이 아주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친근한 할머니 같은 이 분의 추천으로 에어비앤비 숙소에 들어갔다. 1층엔 깔끔한 식당과 거실, 2층 침실은 카우보이 소품을 이용해 서부 스타일로 꾸민 방이어서 아이들이 아주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집주인이 차려준 팬케익과 과일 등을 든든하게 먹고 애리조나 주 그랜드 캐년을 향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