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음식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거기다가 부산에서 살던 젊은 날는 무척 바빴다. 그러다 보니 음식 만드는 시간이 아까웠다. 음식 재료를 준비하고 만들어서 먹고 치우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 생각했다. 하루 필요한 영양분만을 모은 알약 같은 걸 먹고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달리 먹는 것에 진심인 남편은 다양한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남편을 위해 미더덕찜, 멸치회 무침, 홍어회 무침, 어리굴젓 같은 나에겐 생소했던 음식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오십 초반에 명예퇴직을 하면서 시간이 여유로워졌다. 세탁기가 해준 빨래를 너는 시간도 아까워 발을 동동거리며 조급하게 살았었데, 새롭게 만난 여유로운 시간은 집안일을 느긋하고 편안하게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면서 의식주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 갔다. 젊은 시절, 직장생활을 할 때는 의식주 중에 '의'에 가장 신경을 썼던 것 같다. 남 앞에 서는 직업을 갖고 있었고, 또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고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퇴직 후에는 '의'보다는 '식'부분이 점점 중요해졌다.
오래전 친정 엄마 얘기가 기억난다. 중국인은 먹다가 망하고, 한국인은 입다가 망하고, 일본인은 짓다가 망한다고. 일본은 지진이 많은 나라니까 집을 짓는데 정성을 쏟는 건 당연해 보인다. 한국과 비교할 때 중국이 좀 더 실속 있어 보인다. 좋은 음식을 만들어서 먹을 때 행복하고, 몸에 들어가 건강이 잘 유지된다면 그게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점점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음식을 잘하는 푸근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냉장고를 열어서 재료를 딱 보면, 만들어질 요리가 머릿속에 멋지게 그려지는 모습을 상상해 봤지만 그게 단번에 되는 일이 아니었다.
퇴직한 지 십이 년이 되었다. 이젠 나름대로 새로운 방법으로 재료를 조합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얼마 전 설날에도 만두를 준비했었다. 쉽게 만들려고 만두피는 마트에서 샀고, 만두소는 집에서 만들었다. 만두를 좋아하고 만두를 잘 빚는 남편의 이번 만두에 대한 평가는 최고점이다. 여태 먹어본 만두 중 최고라며 이 레시피를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요즘은 익숙한 음식이라도 요리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재료와 방법을 체크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맛이 달라질 수 있다.
사용한 만두 재료는 소고기, 김치, 두부, 숙주나물, 당면, 쪽파였다. 소고기는 간 고기와 씹히는 맛을 주기 위해 불고기용을 섞어 쓴다. 고기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 불고기 양념을 해서 물기가 없도록 바싹 볶았다. 김치도 묵은지와 일반 김치를 섞어 사용했다. 잘게 썬 김치의 국물을 짠 후, 설탕과 참기름 양념으로 무쳤다. 숙주나물 데친 것과 두부도 물을 짜내고 소금으로 살짝 간을 했다. 삶아낸 당면도 물을 빼고 잘게 썬 후, 준비한 모든 재료와 함께 섞으면서 양념을 했다.
재료 준비는 이전과 비슷했다. 달라진 건 양념이었다. 이전에는 재료를 모두 합친 후 참기름만으로 양념을 했는데, 이번에는 굴소스와 쪽파를 새로 넣었다. 쪽파를 잘게 썰어서 좀 넉넉히 넣었다. 만두 양념으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굴소스도 이번 만두 맛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준비한 음식이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입맛이 없다고 하시던 연로하신 시어머니도 만두를 맛있게 드시니.. 그것도 좋다. 사람 사는 게 뭐 별거 있나. 좋은 게 좋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