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민철의 병실
목에는 깁스, 머리, 왼쪽 팔과 오른 다리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는 민철.
문이 열리고 조심스럽게 인아가 들어온다.
민철의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다른 곳을 보고 들어오는 인아.
문소리에 고개를 돌려 인아를 쳐다보는 민철.
민철 왔어요?
인아 (기어가는 소리) 네.
민철 어제는 잘 들어갔어요?
인아 네.
민철 몸은 좀 어때요? 다친 데는 없어요?
인아 네.
바닥만 보고 대답하는 인아.
그런 인아를 빤히 쳐다보는 민철.
민철 내, 뭐 좀 하나 물어봅시다.
인아 (그제야 고개를 들어 민철을 본다)
민철 어제는 왜 그렇게 저를 보고 도망간 거요?
인아 아니, 그게. 무서워서.
민철 무서워요? 제가요?
인아 어제는 경황이 없었어요. 그냥 낯선 괴한이 쫓아오는 줄 알았어요. 그쪽인 걸 알았으면 그렇게 도망가지는 않았겠죠. 하지만 밤이었고.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어서. 그냥 무서운 마음에 달아났던 거죠. 차라리 이름을 부르지 그러셨어요. 그랬음 돌아봤을 텐데.
민철 그때 인사할 때 한 번 들었던 이름이 생각나야지 말이죠. 편의점에서 보고 따라갔을 때야 생각납디다. 내가 크게 이름을 불렀는데 안 들립디까?
인아 네, 정신이 없어서~~~~~~그런데 어제는 왜 그렇게 절 쫓아오신 거예요?
민철 아니, 남자가 여자 쫓아가는 건 뻔한 거 아닙니까?
인아 (조금 놀라 민철을 본다) 네?
민철 아니, 솔직히 그날 그쪽을 처음 보고 맘에 들었어요. 그래서 식사 자리에서 석호를 따로 불러 물어봤죠. 인아 씨 만나는 사람 있냐고.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잘 됐다 싶어 석호한테 얘기했죠. 제가 인 아씨 집까지 모셔다 드리겠다고. 가는 동안 뭐, 한 번 사귀어 보자고 말이나 해봐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끝나고 그냥 갔잖아요. 그래서 생각했죠. 내가 별론가. 아니면 두 사람은 모르는 누군가 만나고 있나. 제 눈으로 한 번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에 그날 저녁 직장에서부터 집까지 쫓아간 거죠. 솔직히 미행한 건 잘못했습니다. 그래도 그 덕분에 내가 그쪽을 두 번이나 구해준 거 알아요? 한 번은 전철 안 치한에게서, 또 한 번은 차에 치일 뻔한 위기로부터.
인아 어? (지하철 일 연상), 아~~~~~ 전철 일이나 그 일에 대해서는 무척 감사해요.
둘 사이에 잠시 흐르는 적막.
민철 그래서 내가 그쪽, 아니 인아 씨에게 제의를 하나 하려고요.
인아 네? 제의요? 어떤?
민철 의사 말이 한 달 정도 입원 치료해야 한대요. 그래서 그쪽, 아니, 인아 씨에게 부탁이 있는데.
인아 네.
민철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일주일에 두 번. 맘 같아서는 매일 와줬으면 좋겠는데, 뭐 우리가 사귀는 사이도 아니니 그건 과한 부탁인 것 같고. 또 한 주에 한 번은 너무 정 없는 것 같으니까. 일주일에 딱 두 번. 뭐 세 번이면 더 좋고. 저녁에 와서 제 말동무 좀 해달라고요.
인아 말동무요?
민철 네, 말동무요. 그러니까 그냥 저녁마다 병실에 와서 저랑 대화하면서 한 번 저라는 놈을 보고 판단해 딜라는 거죠. 만나도 될 그런 사람인지 아닌지. 그렇게 한 달 딱 열 번만 저를 겪어보는 거죠. (혼잣 말로) 에이 씨,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석호가 책 좀 읽으라 할 때 읽어 둘 걸. 말이 딸리네.
인아 (웃음을 참는다)
민철 그렇게 해서 제가 퇴원하는 날 쇼부. 아니 결판, 아니 결정을 보는 거죠. 인아 씨가 저를 계속 만날지 말지를. 내, 남자로서 만일 그렇게 저를 경험, 아니 저랑 열 번 얘기해 봤는데도 별로라면 내 깨끗이 물러나리다. 내 구차하게 한 번 더 만나자고 매달리거나 애원하고 깨끗이 물러날게요. 그러니 제가 입원해 있는 한 달 동안 딱 열흘만 제 말동무가 되어 달라고요. 네?
인아 (무표정으로 민철의 말을 듣던 인아의 입가에 조금씩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다)
#31 택시 안/석호 차 안(회상)
민아 그러니까, 인아야. 민철이 오빠 맘에 드냐고?
인아 아까 봤던 그분이요?
민아 그래, 그 키 크고 잘 생긴 오빠.
인아 ~~~~~네.
민아 네? 너 지금 네라고 한 거니?
인아 네, 언니.
민아 오빠가 맘에 든다고?
인아 네.
민아 그래? 그래, 알았어. 잘 생각했어. 그럼 내가 자리 한 번 마련할게.
인아 네, 언니.
석호 (큰 소리로) 잘 생각했어. 인아야. 후회 없을 거야. 정말 잘 한 선택인 것만 알아둬.
인아 (웃으며) 네 형부.
#32 석호 차 안
민아 에이, 계집애. 얘도 은근 여우라니까.
석호 그래?
민아 그렇죠. 인아도 맘에 들면서도 오빠 차 안 타고 혼자 택시 타고 가는 거 봐. 자기 뭐 그렇게 호락호락한 여자 아니다 뭐 그런 의미인 거지. 아까 민철 오빠 보니 인아 맘에 들어하던 눈치던데, 혼자 가서 몸 좀 달았겠다.
석호 그렇지 않아도, 아까 민철이 잠시 날 밖으로 불러내서 물어보더라고.
민아 뭐라고요?
석호 인아 만나는 사람 있냐고? 없다고 하니까 좋아하던 눈치던데.
민아 것 봐요. 뭐 아무튼 잘 됐어요. 선남선녀가 만난 셈이니까. 이제 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