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민철 병실
인아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민철이 왠 젊고 예쁜 여자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자 한 손에는 파일이 들려 있다.
이따금 여자가 민철의 말에 까르르 웃는다.
그 모습이 내심 불편한 인아.
다가가진 못하고 입구에 서 있다.
뒤늦게 인아를 본 민철.
민철 어, 인아씨.
여자가 인아를 쳐다본다.
그제야 민철에게 걸어가는 인아.
새침하게 다가가 침대 옆 탁자 위에 가져온 짐을 내려놓는다.
민철 (비서를 가리키며) 아, 여기는 제 비서인 한미영 씨. (인아를 가리키며) 이쪽은 서인아 씨.
비서 (인사하며)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인아 (새침하게) 네, 만나서 반가워요. 서인아예요.
비서 대표님,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두 분이 대화 나누세요.
여자가 파일을 가방에 넣어 나간다.
비서가 나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는 민철.
그를 보는 인아의 표정이 좋지 않다.
민철 아이고 이런, 제가 부탁한 거 사 가지고 오셨네요. 고마워요. 들고 오는데 무겁지 않았어요?
인아 (민철은 보지 않은 채 가져온 짐을 정리하며, 차가운 말투) 아뇨. 전혀요.
민철 저녁은 했었요?
인아 아니요.
민철 뭐 드실래요?
인아 아뇨, 괜찮아요. 생각이 없어서.
민철 (인아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짐 정리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민철과 눈이 마주친다.
인아 왜 그렇게 보세요.
민철 인아 씨 화난 거 같아서요.
인아 화난 거 없는데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민철 갑자가 주변 공기가 차가워져서.
인아 화난 거 없어요. 속이 안 좋아서 그래요.
민철 아, 네. 그러면 다행이고. 약 드릴까요? 약 있는데.
인아 아뇨, 괜찮아요. 그 정돈 아니니까. (열려 있는 창문으로 다가간다) 창문이 열려 있으니까 차갑죠. (창문을 닫는다)
민철 그런가요?
인아 그렇죠. 창문을 열어놓고 춥다고 하면 말이 안 되죠.
민철 아, 그렇네요.
인아는 냉장고에서 사과와 과도를 꺼내어 의자에 앉는다.
사과를 깎기 시작하는데 여전히 민철과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이를 보는 민철은 불안한데.
인아 (사과를 깎으며 민철은 쳐다보지 않고) 그런데 이 시간에 비서 분이 왜 오신 거죠?
민철 제가 병원에 있는 동안 회사 일을 볼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한 주에 한 번 와 달라고 했죠.
인아 (사무적인 말투로) 아, 네.
말없이 접시에 사과를 진열하는 인아.
민철이 포크를 하나를 찍어 건네주려는데, 인아는 자기 포크로 사과를 집어 먹기 시작한다.
인아 그런데.
민철 (고개 숙인 채 먹고 있다가 인아 말에 쳐다본다)
인아 그 회사는 여직원을 인물 보고 뽑나 보죠?
민철 컥, 넷?
인아 (접시를 치우며, 역시 민철은 보지도 않고) 아니, 비서 분이 미인 시기길래.
민철 (인아의 의중을 알았는지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아, 네. 뭐. 그것도 대표의 권한이라 할 수 있겠죠.
인아 (뒤돌아 쓰레기통에 과일 껍질을 버리는 인아의 얼굴에 노기가 떴다가 사라진다) 아, 네. 대표의 권한이요?
민철 네. 대표의 권한. 제가 대표인데, 그럴 수도 있는 거죠.
인아가 접시를 탁자에 내려놓는데, '탕' 하는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민철의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는다. 그러나 내색하진 않는다.
인아 (조소 띤 얼굴로 민철을 쳐다보며) 좋으시겠어요. 대표라서 그런 권한도 있으시고.
민철 (불안하지만 애써 참으며) 네, 뭐. 힘들게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보상 아니면 보상이랄까?
인아 (입술을 깨물고 머리를 쓸어 넘긴다) 아, 네. 그러세요?
민철 (곁눈질로 보며) 네.
인아 실망이네요.
민철 네?
인아 네. 민철 씨한테 실망했다고요.
민철 왜요?
인아 그걸 몰라서 물어요? 민철 씨 참 속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민철 속물이요?
인아 네. 속물이요.
민철 (엷게 미소 지으며) 인아 씨.
인아 왜요?
민철 인아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
인아 질투요? 제가 왜요?
민철 아니, 질투하는 거 같아서요.
인아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서 웃으면서 그런 말이 나와요? 됐어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인아가 짐을 챙겨 문 쪽으로 걸어간다.
민철 (큰 소리로) 방금 전 그 비서 저랑 닮았다는 생각 안 들었어요?
인아가 가다가 멈춰 선다.
인아 (천천히 돌아선다) 그게 무슨?
민철 방금 전 있다 간 그 비서 여직원, 저랑 닮았다는 생각 안 들었냐고요.
인아 그게 무슨 말~~~~~~
민철 성도 같잖아요. 한민철, 한미영. 모르시겠어요?
인아 그럼 동생분?
민철 뭐 동생은 맞네요. 이복동생도 동생은 동생이니까.
인아 (놀라 입을 틀어막는다) 미안해요.
민철 괜찮아요. 뭐 그럴 수도 있죠 뭐.
인아 (어쩔 줄 몰라하며 민철에게 다가가며) 기분 나쁘셨어요?
민철 아뇨 나쁘긴요. 전혀요. 저는 아주 좋기만 한데요.
인아 네? 왜요?
민철 왜긴 왜겠어요. 인아 씨가 질투한 거 같아서 그렇죠.
인아 그건 질투가 아니라~~~~~~
민철 됐어요. 질투는 아닐지라도 그건 하나 확실하면 됐죠?
인아 뭘?
민철 제가 속물은 아닌 거 맞죠?
인아 아, 네. 그럼요. 많이 기분 나쁘셨어요?
민철 아뇨, 화 나신 거 같아 무서워서 기분 나쁘다는 생각도 안 들었어요.
인아 죄송해요.
민철 죄송할 것까지야. 뭐 그럴 수도 있죠.
인아 그런데 이복동생인데 어떻게~~~~~~
민철 뭐 그렇게 됐네요. 미영이도 아버지 핏줄이긴 핏줄이니까~~~~~~그건 그렇고, 배 고프지 않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