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 숙소
민철과 인아가 소파에 샤워 가운을 입고 나란히 앉아 있다.
민철의 오른쪽 팔이 인아의 어깨를 감쌌고 인아는 민철에게 기대어 있다.
인아 (피식 웃는다)
민철 웃었어? 왜 웃었는데?
인아 아니, 그냥 신기해서요.
민철 신기해? 뭐가 신기한데?
인아 이혼하고 이렇게 일찍 (여리게) 재혼할지 몰랐는데. 한 서른 넘으면 할 수 있을까 했었는데.
민철 음~~~ 그러면 내가 마흔, 불혹이겠네.
인아 (고개를 돌려 민철을 본다) 칫! 그때는 제가 누구를 만났을지 모르죠. 오빠를 만났을지, 아님 다른 남자를 만났을지.
민철 그런가? 그럼 내가 운이 좋은 거네. 그전에 만나 가로챘으니.
인아 칫!~~~~~~~~~~ 아! 오빠랑 할 거 생각났어요.
민철 나랑 할 거? 그게 뭔데?
인아 (민철의 오른손을 잡아 가슴에 댄다) 오른손은 왼쪽 가슴에 대고 (민철의 왼팔을 직각을 만든다) 왼손은 이렇게. 됐어요.
민철 (그 자세에서) 이게 뭔데? 이건 선서할 때 자세인데.
인아 맞아요. 지금부터 오빠는 제가 하는 말을 따라 하면 돼요. 알아죠?
민철 어, 뭔지 모르겠지만, 알았어.
인아 자, 그럼 제 말을 따라 하는 거예요.
민철 어.
인아 서인아의 예비 신랑 나 한민철은
민철 서인아의 예비 신랑 나 한민철은
인아 지금부터 예비 신부 서인아가 묻는 질문에
민철 지금부터 예비 신부 서인아가 묻는 질문에
인아 일점일획의 거짓 없이
민철 일점일획의 거짓 없이
인아 진실만을 말할 것을 엄숙히 서약합니다.
민철 진실만을 말한 것을 엄숙히 서약합니다.
인아 됐어요. 그럼 제가 지금부터 오빠한테 몇 가지 질문을 할 거예요. 오빠는 제가 묻는 질문에 진실만을 말하면 돼요.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 오빠가 말한 진실에 대해서는 제가 끝까지 안고 갈 거니까. 사실만을 말하면 돼요. 알았죠?
민철 (웃으며) 어 알았어.
인아 그럼 시작해요.
민철 어, 시작해.
인아 음~~~ 서인아의 예비 신랑 한민철 씨는 동거나 사실혼 관계를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민철 오~~~ 처음부터 질문이 센데.
인아 아니, 부담 갖지 말고요. 지금 이 시간에 말하는 그 어떤 진실은 제가 평생 묻고 간다니까요.
민철 아니 없습니다.
인아 그럼 다음 질문. 예비 신랑 한민철 씨는 혹시 혼외 자식이 있습니까?
민철 이건 더 센데?
인아 오빠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요, 제 솔직한 심정은, 오빠가 저처럼 한 번 다녀온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아님 애가 있어도 상관없고요. 오빠가 일찍 결혼했음 자녀가 중학생이고, 조금 늦게 갔어도 초등학교는 다닐 테니까.
민철 말은 고마운데, 없습니다.
인아 예비 신랑 한민철 씨는 그렇고 그런데를 가본 적이 있습니까?
민철 그렇고 그런데? 어디?
인아 아니, 왜 있잖아요. 분홍색 조명.
민철 분홍색 조명 (한참을 생각하다) 아! 홍등가?
인아 (고개를 끄덕인다)
민철 별 걸 다 물어본다. 아니 없습니다.
인아 아니, 왜 아빠나 군의관이었던 석호 오빠 얘기 들어보니까, 군인들 휴가나 외박 때 간다던데. 괜찮아요. 오래전 일이니까.
민철 아니, 그게 나 군에 있을 때가 다희~~~
인아 아, 아~~~~~~ (시큰둥한 표정) 참나.
민철 인아야, 왜?
인아 아니, 이런 일로 오빠의 첫사랑 다희 언니에게 감사할 줄이야.
민철 아~
인아 그럼, 언니랑 헤어진 뒤에는 한 번도 가 본 적 없어요?
민철 어!
인아 그럼 그걸 느낄 때는 어떻게 풀었어요?
민철 어, 그게~~~(난처한 표정)
인아 그럼 혹시 언니 말고 다른 여자?
민철 (시선을 피하며 난처해한다) 어? 어!
인아 (노려보며 끄덕인다) 아~~~ 그렇구나.
민철 인아야, 괜찮아? 언짢은 건 아니지?
인아 네, 괜찮아요. 제가 말했잖아요. 지금 말하는 건 끝까지 묻고 간다고.
민철 어, 그래.
인아 그럼 다음 질문. 예비 신랑 한민철 씨는 혹시 제1금융권이나 제2금융권, 아니면 대부업체에 과도한 부채가 있습니까? 부채가 있다면 BIS 기준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민철 부채? BIS 기준? 어렵다.
인아 혹시 부채가 있으면 함께 갚아나가자는 의미에서 묻는 거죠.
민철 다행히 나한테 사업을 가르쳐준 분이 무차입 경영 주의자셨어. 덕분에 부채는 많지 않아. 회사는 7 정도?
인아 양호하네요. 오빠 개인적인 부채는요?
민철 아파트 담보 대출. 원리금이 한 달에 보통 신입 사원 월급 정도 나가지.
인아 아!
민철 왜, 빚 많을까 봐 걱정했어?
인아 아뇨, 제가 말했잖아요. 빚이 있어도 같이 갚아나가면 된다 생각했다고.
민철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휴, 그러셨어요? 기특하네!
인아 생각했던 거보다 청문회 결과가 좋네요.
민철 그래? 다행인데.
인아 네, 오빠 나이가 있어 이 정도는 있을 수 있겠다 생각한 걸 물어본 건데.
민철 나름 깨끗하게 살았지?
인아 네. 정말로.
민철 (가슴을 주먹으로 팡팡 친다)
인아 거짓말 아니죠? 이후에 들통나면 가만 안 둘 거니까 미리 이실직고하라는 의미에서 마련한 거라고요.
민철 하늘에 맴 세코.
인아 (다시 어깨에 기댔다가 다시 몸을 일으킨다) 아, 오빠도 제게 궁금한 거 있잖아요. 그전에 제가 물어본 거부터 답해 줄게요. 이혼 외에는 동거나 사실혼은 없고, (작게 말하며 고개를 숙인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남자 경험. (다시 고개를 들어) 남성 접대부가 있는 술집에 가본 적 없고, 대출, 마이너스 통장, 카드론도 없고.
민철 다른 건 됐고, 내가 결혼하면 이건만은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거 있어?
인아 네!
민철 뭔데?
인아 아내한테 남편으로써의 역할에 충실하기. 다른 여자에게 몸과 마음 주지 않기. 폭력적인 언사 하지 않기. 이 세 가지.
민철 아내한테 남편의 역할에 충실한 거라면?
인아 아내의 물질적, 정서적, 사회적, (작은 소리) 육체적 필요에 충실한 거.
민철 물질적이면 경제적인 거?
인아 경제적이라고 해서 오빠 보고 돈 많이 벌어오라는 거 아니고, 그냥 남편으로써 책임을 다하는 걸 말하는 거죠.
민철 정서적인 거는 대화?
인아 그렇죠, 정서적 공감 같은 거.
민철 사회적인 거면
인아 저의 가족, 친구, 친척분들과의 관계
민철 육체적인 거면? (음흉한 눈빛)
인아 왜 그렇게 보는 건데요? 저만 좋자고 그러는 거예요? 오빠는 별로인가 보죠? 그럼 뭐 됐어요. 저! 각방 이후 오빠 만나기 전까지는 몇 년 간 무성욕자로 지냈거든요! 오빠 만나서 사랑하고 오빠가 자극 주니까 바뀐 거지, 그전까지는 무성욕자로 살았다고요. 그러니 그때로 다시 돌아가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 그 시간이 더 길었으니까. 오빠가 싫다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지요. 뭐
민철 아니, 누가 싫데? 누가 그때로 돌아가래? 나도 좋아! 다만 문제없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그랬지.
인아 문제가 아주 없진 않을 것 같은데? 앞으로 십 년은 가능할까요?
민철 십 년? 뭐래? 삼사십 년은 문제없다!
인아 (입을 가리고 크게 웃는다) 하하하, 아, 웃겨! 하여간 남자들이란!
민철 나머지 두 개도 문제없어. 딴 여자에게 몸과 마음 주지 않기. 폭력적인 언사.
인아 저 말고 딴 여자에게 몸과 마음 주는 건 나쁜 건데, 오빠 그거 알아요?
민철 뭐?
인아 여자는 자기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몸 주는 거보다 마음 주는 걸 더 싫어해요.
민철 아, 아! 그렇구나.
인아 네! 물론 몸도 주면 안 되죠.
민철 당연하지! 폭력도 당연한 거고.
인아 그럼 됐어요.
민철 됐어?
인아 네.
민철 그럼 합격? 통과?
인아 (웃으며) 네, 합격!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