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 같은 장소
민철과 인아는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다.
인아는 민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민철 지금 무슨 생각해?
인아 지금요?
민철 응.
인아 다행이다. 감사하다. 그런데 미안하다.
민철 다행인 건 뭔데?
인아 음~~~ 이혼의 상처 이후에 용기 내서 시작한 사랑인데, 상처받지 않고 결실을 맺게 해 줘서 나한테는 다행이고 오빠에게 고맙다. 안 그랬음 한 동안 다시 사랑하기 힘들었을 텐데.
민철 그럼 미안한 건?
인아 (민철을 살피다가) 음~~~~~~ 오빠가 저의 첫 남편이 아닌 거. (고개를 숙인다)
민철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석호를 데려다 족 칠까? 인아를 왜 빨리 소개해주지 않았냐고?
인아 (입을 가리고 웃는다) 푸흡! 저는 그래도 석호 오빠와 민아 언니한테 고마운데.
민철 왜 고마운데?
인아 두 사람 덕분에 오빠 만났으니까요?
민철 그렇게 생각해?
인아 네! 한 동안 누굴 만날 생각을 않았는데, 민아 언니 제안에 나간 거죠.
민철 민아가 뭐라고 했는데?
인아 음~~~ 석호 오빠 고향 친구 중에 괜찮은 사람 있는데 만나볼 생각 없냐고. 단둘이 만나는 게 부담되면 가족 행사에 초대할 테니 보고 맘에 들면 얘기하라고. 자리를 따로 마련해 주겠다고.
민철 그래서 나왔다고? 그냥 석호 친구라는 말만 듣고 나온 거라고?
인아 아니, 그건 아니고. 언니가 오빠 사진을 보여줬어요.
민철 사진? 어떤 사진인데?
인아 석호 오빠랑 둘이서 해변에서 찍은 사진. 오빠는 상의를 벗고 있는 사진.
민철 그래? 그럼 인아 눈에 내 외모가 나쁘진 않았던 거네?
인아 (상기되는 볼) 네.~~~~~~그럼 오빠는요? 오빠는 제가 별로였어요?
민철 아니지. 다만 난 그 자리에 인아가 나온다는 사실을 모르고 간 거였어. 내가 인아를 처음 본 건 호텔 엘리베이터였잖아. 그때 보고 생각했지. 와, 이 여자 예쁘다. 말을 한 번 걸어볼까? 연락처를 물어볼까? 그런데 맞선 보러 온 거면 어떡하지? 근데 놀랍게도 나와 동선이 겹치는 거야. 가는 내내 생각했지. '어? 이거 뭐지?' 그런데 같이 식사를 했잖아. 속으로 얼마나 쾌재를 불렀다고. 신이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아 그런 여자가 오빠 품 안에 있으니까 좋죠? (민철을 잠시 봤다가 고개를 돌린다) 미안해요.
민철 아냐, 영광이지. 세상을 가진 기분이랄까.
인아 (좋으먄서) 칫, 거짓말.
민철 아냐, 진짜야. 다만 식사 끝나고 집에 바래다주면서 만나보자고 얘기하려고 했는데, 그냥 가서 얼마나 서운했다고.
인아 (민철을 보고) 그것 때문에 후회 많이 했어요. 오빠한테도 많이 미안했고, 그때 제가 오빠 제의를 받아들였으면 사고는 나지 않았을 텐데. 그랬음 오빠도 다치지 않았고.(눈물을 흘린다)
민철 뭐야. 우는 거야? 그때 생각에 우는 거야? 괜찮아. (등을 감싸준다) 미안해할 거 없어. 난 무사하니까.
인아 그 순간만큼은 얼마나 놀랐는데요. 오빠 죽은 줄만 알고. 아마 그랬음 평생 죄책감에 살았을 거예요.
민철 그럴까 봐 내가 죽지 않고 무사히 곁에 있잖아. 얼마나 다행이야.
인아 (눈물을 닦으며 피식 웃는다)
민철 그건 그렇고 프러포즈는 어땠어?
인아 솔직히 말해도 돼요?
민철 응, 솔직히 말해 봐.
인아 실은 프러포즈 기대 안 했어요?
민철 뭐야, 그럼 인아는 나랑 결혼 생각이 없었던 거야?
인아 아니, 결혼이 왜 그렇게 나요? 제 말은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오빠가 밥 먹다가 아니면 커피 마시다가 (민철 흉내) 인아야, 오빠랑 결혼하자 했어도 저는 좋아요. 했을 거라고요.
민철 뭐야, 난 준비하면서 혹시라도 인아가 거절하면 어쩌지 은근히 걱정했는데.
인아 제가요? 오빠를요?
민철 엉!
인아 말도 안 돼. 말했잖아요. 이렇게 만나기만 하다 끝나 버리면 어떡하지? 걱정했었다고.
민철 아, 이거 구상하고 준비하느라 애 좀 썼는데, 그런 말 들으니까 조금 허무하다.
인아 그렇진 않죠. 말 한마디 만으로도 좋을 텐데, 이렇게 정성스럽게 준비해서 프러포즈해주니까 감사고, 감격이고, 감동이죠.
민철 그런가?
인아 그럼요. 당연하죠.
#274 산책로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민철 생각해 둔 결혼식은 있어?
인아 이 말하면 오빠가 기분 나빠할 수 있을 텐데, 솔직히 말하면, 저는 결혼식이나 신혼여행에 대한 로망 같은 건 사라졌어요. 하지만 오빠를 생각해서 해야 한다고는 생각해요.
민철 뭐야. 그럼 조촐하게 하자고. 가족 친지만 모셔서.
인아 네. 그렇게 해요. 신혼여행도 꼭 해외가 아니어도 상관없고, 비행기 안 타도 돼요.
민철 그 두 가지는 나중에 생각하고. 집은 내가 지금 사는 데 살면 되나?
인아 그러면 되죠. 그런데, 그럼 제가 별로 할 게 없네요. 집 안에 필요한 게 다 있으니까.
민철 그러게. 인아 몸만 들어오면 되네.
인아 그럴 순 없죠. 그래도 제가 뭐라도 해야죠. 뭐가 좋을까. 음~~~~~~ 오빠 차를 바꿔줄까요?
민철 무슨 차를 바꿔? 아직 잘 나가는 차를.
인아 그럼 가구와 가전제품을 바꿀까요? 결혼식 비용도 제가 부담하고?
민철 멀쩡한 가구와 가전제품을 왜 바꿔! 결혼식 비용을 왜 인아 혼자 부담해. 같이 내야지.
인아 안 그러면 제가 할 게 없으니까.
민철 그냥 몸만 와도 된다니까 그러네.
인아 아니에요. 뭐가 좋을지 제가 좀 더 생각해 볼게요.
민철 그래 그럼. ~~~~~~ 참, 직장은 계속 다닐 건가? 난 상관없어. 일하고 싶으면 하고, 쉬고 싶으면 쉬고. 쉬다가 다시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하고. 뭐가 좋겠어.
인아 환경이 허락하는 데까지는 다닐 생각이에요. 워낙 어렵게 들어간 데라서.
민철 그럼 그렇게 해. 음~~~ 그리고 나는 자녀가 많으면 좋거든. 나 혼자 외롭게 커서. 그런데 남자는 씨만 뿌리지 열 달을 품고 있다가 힘들 게 낳는 건 여자잖아. 그건 인아 뜻대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인아 (가다가 멈춰 서서 민철을 본다)
민철 왜 ㅡ그렇게 보는데?
인아 (엉덩이 팡팡) 말하는 게 기특해서요.
민철 (웃는다)
인아 (웃다가 진지한 표정) 그런데 오빠.
민철 어, 인아야 왜?
인아 만에 하나 애가 생기지 않으면 어떡해요?
민철 애가 안 생기면? 글세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아직은 왕성한 것 같아서 크게 걱정한 적 없거든. 인아도 잘 알 거 아니야.
인아 (상기된 얼굴) 꼭 그런 말로 사람 난처하게 할 거예요? (민철을 꼬집는다)
민철 (아파한다) 아얏, 아얏, 미안. 미안. 농담이야 농담.
인아 (민철을 얄밉게 바라보며 꼬집은 데를 어루만진다)
민철 아기가 안 생기면 불임 치료를 받아야겠지. 그래도 애가 생기지 않으면 입양을 할까? 인아는 어때?
인아 그때 가서 생각해볼 일이지만,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민철 그전에 민아한테 가서 검사 한 번 받아봐야겠다.
인아 (화들짝 놀라며) 그건 안 돼요.
민철 왜 안 되는데?
인아 어떻게 그래요? 오빠도 생각해 봐요. 오빤 제가 석호 오빠한테 가서 산전 검사받아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민철 그런가?
인아 당연하죠!
민철 그래도 남자는 여자랑 다르지 민아 앞에서 바지 내릴 일은 없을 테니까.
인아 어떤 검사를 받을지 모르는 거잖아요.
민철 생각해보니까 그렇네. 그럼 그건 인아랑 다른 데 가서 할 게.
인아 그럼 오빠도 저와 산부인과 가는 거예요?
민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데, 인아 덕분에 가게 생겼네!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인아에게 다가간다) 그럼 같이 병원 가기 전에 몸소 확인해볼까?
인아 (질색을 하며 달아나는 인아) 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