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으로 태어나 오르가슴은 경험해봐야 하지 않겠나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지 말고

by 간서치 N 전기수

https://youtu.be/_GdcoD0 L8 GU

오르가슴을 경험해보지 않은 여성에게 오르가슴을 설명하는 걸 하나의 속담으로 표현 가능하다.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다

네이버 지식 백과는 오르가슴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오르가슴.png

오르가슴은 인간의 직립보행과 같다. 당신은 걸을 때 다리는 어느 정도만 들어 올려서 몇십 센티미터 앞에 내딛고, 팔은 어느 각도로 얼마큼만 흔들어야지. 이런 식으로 동작 하나하나마다 생각하진 않을 거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동작이 로봇에게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보스턴 다이내믹스나 테슬라 로봇 기술이 뛰어난 거다.


나는 영상을 보고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병이란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여성들이 오르가슴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아내가 친구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면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하나는 그게 뭐냐는 식의 반응이고, 또 하나는 어떻게 그걸 매번 경험하냐는 반응이다. 아, 여기서 오해 없기 바란다. 내가 대단한 게 아니라 아내가 좀 특별하다. 아내는 못 느끼는 게 아니라 빨리 끝나는 게 싫어 참는다고 한다. 그만큼 예민하다.


또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산부인과 전문의도 오르가슴을 묻는 환자에게 위의 설명대로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르가슴을 모르는 여성에게 오르가슴을 설명하는 건 산부인과 의사에게도 장인에게 코끼리를 설명해 주는 것만큼 어렵나 보다. 그러니 경험해 보시면 아실 거에요라고 말한다고 한다. 나는 대신에 학창 시절에 교과서에 실렸던 남명 조식 선생의 시조 한 편으로 그 느낌을 설명할까 한다.


두류산 양단수를 내 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겻세라.
아희야 무릉이 어듸오 나난 옌가 하노라


내가 보기에 남명 조식 선생은 조선 시대의 데스몬드 모리스였다.


두류산 양단수는 지명이기도 하지만, 여자의 두 다리를 의미한다. 양갈래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는 삼각주가 형성된다. 역삼각형 모양의 삼각주를 그리스 알파벳 델타로 표현한다. 기호학적으로 델타는 여성의 음부를 상징한다. 성경에 야곱 일가가 이집트에서 머문 고센 땅이 델타 지역이었다.


또 문학에서는 여성의 음부 (색깔)를 복숭아 꽃에 비유하곤 하였다. 출산하지 않은 여성의 음부 색깔은 복숭아 빛이 난다. 그러다 출산을 하면 호르몬에 의해 색깔이 짙어진다.


그리고 산 그림자를 뜻하는 산영은 남근을 말한다. 뫼 산자를 생각해 보라. 가운데 뾰족이 솟은 선과 양쪽의 짧은 선은 무엇을 연상시키는가.


무릉은 무릉도원을 말하고, 도교 용어다. 여자의 음부를 과거 서양에서는 델타에 비유했다면, 도덕경에서 노자는 여자의 음부를 현빈지문이라 했다. 그리스 신화로 표현하면 여성의 음부 델타는 풍요의 신 데메테르다.


따라서, 남명 조식 선생은 남녀 간의 운우지정을 점잖게 도교의 무릉도원에 비유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황진이라면 충분히 이런 시조를 지을 법한데, 그녀가 이런 시조를 남기지 않은 건 그녀도 오르가슴을 경험해보지 못해서였을까.


여기서 잠깐 설명하면, 서양 문화는 소피스트들로부터 시작하였다. 그들은 직설적으로 가르쳐야 제자들이 모이고 그들에게 돈을 받았다. 반면에 동양 문화는 벼슬아치들이 발전시켰다. 그들이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비난을 받고 벼슬을 뺏기거나 삼족이 생명을 잃는다. 그래서 그들의 표현은 은유적이었다.


자, 이제는 전문가가 설명한 장황한 설명에서 오르가슴의 핵심을 짚어보자. 오르가슴은 불수의적 생리 반응, 쉽게 말해 자궁의 수축과 이완이다. 그것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빠른 수축과 이완. 이게 가능한 이유는 자궁 덕분이다.


자궁은 주먹 크기 정도이고 세 겹의 근육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근육과 다르게 자궁은 위(Stomach)같이 무늬가 없다. 우리는 이걸 민무늬근이라고 부른다. 다른 말로 불수의근이라고도 한다. 무늬가 없다, 불수의근이라는 건 무얼 말할까. 자궁이나 위는 당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자궁이 무늬가 있는 수의근이었다면 여성은 자연분만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산모는 그 엄청난 산통을 겪으며 자신의 의지로 자궁을 수축시켜야 태아가 나온다. 가능하겠는가.


오르가슴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남성과 성관계를 하는데, 여성의 자궁이 불수의근이 아니라 수의근이었으면 어쨌을까 상상해 보자. 아마 이랬을 것이다.


지금은 진입기니 천천히~~~~~~이제 생성기 여기서는~~~~~~아 이제 도달기니 오르가슴을~~~~~~.

이런 식으로 의식을 갖고 관계를 한다면, 결코 오르가슴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여성을 보는 파트너는 섀도 복싱을 하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가. 자궁은 수의근이 아니라 불수의근이다.


자, 이제 정리해 보자. 오르가슴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자궁의 빠른 수축과 이완이다." 그게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자궁 스스로가 아주 빠르게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자궁만 수축이완하는 게 아니라 자궁을 둘러싼 것들이 수축과 이완을 한다고 한다.


임신과 출산을 마친 여성이 비정상적 출혈로 산부인과를 내원한다면 십중팔구는 자궁적출을 권할지도 모른다. 자궁을 떼어내면 덩그러니 난소와 질만 남는다. 자궁을 잃은 난소는 조만간 그 기능을 잃을 것이요. 자궁경부와 맞닿았던 부분은 봉해질 것이다. 이후의 성관계가 즐겁지 않은 이유다. 의사는 환자의 문제를 해결해 줬다는 보람을 느낄지 몰라도, 환자는 전혀 다른 문제를 떠안는다.


여성들이여, 그대들이 자궁의 존재를 느끼는 때가 생리 기간인 단 일주일뿐이라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생리통이 심한 여성은 자신의 자궁을 들어내고 싶은 충동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점을 알았으면 한다. 여러분은 그 두 배 이상 자궁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그것도 고통스럽지 않고 아주 즐겁게 말이다. 그 방법은 바로 오르가슴.


자궁은 월경과 출산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의 기쁨을 위해서도 존재한다. 자궁은 당신에게 오르가슴을 안겨줄 준비가 돼있다. 오르가슴을 경험해본 여성이라면 아무리 생리통 때문에 힘들더라도 자궁을 들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내는 자궁에 매리나인가 하는 장치를 넣었다.


산통을 견딘 산모가 출산의 환희를 느끼듯, 섹스의 스트레스를 이긴 이긴 여성은 오르가슴을 경험한다. 섹스는 살과 살이 맞닿는 과정이다. 여기에 스트레스라는 엔트로피가 쌓인다. 오르가슴은 섹스에서 쌓인 엔트로피를 일시에 날려버리는 효과가 있다. 일종의 배설 효과, 즉 또 하나의 카타르시스다. 다르게 표현하면, 오르가슴 없는 성관계는 스트레스만 남기고 떠나는 것이다. 그러니 섹스가 무료해진다.


문제는 직면해야 풀 수 있다. 시작은 오르가슴을 느끼는 못하는 게 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불감증은 여성만의 문제와 책임이 아니다. 모든 관계의 문제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책임이 아니라 쌍방의 책임이다. 불감증은 자신의 몸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여성과 그 여성의 몸을 알지 못하는 남성이 만들어낸 변증법적 결과이기도 하다. 자신의 몸을 알지 못하니 어디를 어떻게 해주면 좋은지 모르는 여성의 책임이 좀 더 있다 하겠다.


영상에서 전문의는 불감증 치료 방법으로 자위를 권한다. 베티 도슨은 <네 방에 아마존을 키워라>에서 자위를 권한다. 자위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여성이라면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동양에서 공부는 머리로만 하는 걸 말하지 않는다. 몸으로 하는 공부도 공부다. 그런 면에서 섹스도 공부다. 자신의 몸을 알아가는 공부고, 상대방의 몸을 알아가는 공부다. 인간은 몸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정의가 있다. 영과 혼이 있다. 몸은 인간의 전인격을 담는 그릇이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그의 서신서에서 여성을 연약한 그릇이라고 표현했다. 그런 여성과 지성을 갖고 동거하라고 했다.


우선 여성 스스로 변해야 한다. 바꿀 수 있는 것부터 먼저 바꾸자. 그러니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 첫 단계가 자위다. 자위를 통해 자신이 그동안 입고 있던 구속복을 벗어던지는 것이다.


생리학 용어에 역치라는 말이 있다. 영상에서 전문의도 언급했듯, 중년 이후의 섹스는 무료해질 수 있다. 외도를 그 회피 수단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평생 동안 한 명의 파트너와 섹스를 해야 한다는 건 굴레이고 멍에일까. 그건 마치 시지프의 신화와 같은 것일까.


도올 김용옥 교수는 [태권도 철학과 구성 원리]에서 제약에서 다양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태권도 경기에는 제약이 따른다. 차서는 안 되는 곳이 있다. 유도나, 검도도 마찬가지다. 허용되는 부위만 공격해야 한다. 그런데 그 제약에서 다양한 변용이 나온다고 도올 교수님은 말한다.


여기서 잠깐 우리 부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우리는 새로운 걸 시도하지 않고 항상 같은 과정을 밟는다. 놀라운 점은 나의 타율은 3할을 넘어 7할 정도는 한다. 다시 말하지만 아내 덕분이다. 아내가 민감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은퇴 전까지 처자식 먹여 살린다고 아내를 챙기지 않은 채 바쁘게 살던 가장이 퇴직 후 아내를 돌보겠다고 살갑게 대한다면 거부감 느끼지 않겠는가. 오르가슴도 마찬가지다. 영상에서 전문의가 말하듯이, 과정이 있어야 하고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면, 지금부터 배려하고 찾아가 보자.


여기서 짚고 나가야 할 게 있다. 모든 성관계의 목표가 오르가슴이서는 안 된다. 섹스는 서로를 알아가고 경험하는 게 우선이지 오르가슴은 부가적인 효과일 뿐이다. 다만, 그게 성생활을 시작해서 아직까지 그걸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경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야기한다.


모든 성관계의 수단이 삽입일 필요도 없고, 그 목적이 오르가슴이 아니다. 애정 깊은 포옹이나 애무로도 오르가슴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성생활이라는 표현은 참 유익하고 아름다운 표현이다. 섹스도 삶이고 생활이라는 의미다. 부부의 침실이 거실과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평소에 대화도 없고 터치도 없는데, 침대에서 오르가슴을 느끼겠는가.


영상에서 산부인과 전문의가 말했듯이, 연령에 따라 남녀의 성관계는 변한다. 특히 월경이 끝난 여성은 질 건조증을 겪는다. 이 경우는 충분한 애무와 수용성 윤활제가 필요하다. 어느 영상인지는 찾지 못했는데, 유튜버 연애 고수 TV 님의 영상에서 들은 이야기다.


어느 중년 여성이 이혼을 했는지, 사별을 했는지, 꽤 긴 세월 외롭게 지냈었다고 한다. 그녀가 어떤 남자를 만났다. 그녀는 그와 사랑에 빠졌다. 둘은 침대에서 깊은 사랑을 나눴고, 여성은 평생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절정을 느꼈고 침대가 젖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시몬느 드 보봐르는 말했다. 만들어지는 것은 과정이라 이처럼 중년 이후에도 여성은 만들어진다. 아직 젊다면 지금부터 복리의 효과를 누려보자. 중요한 건 열린 마음이다.


지금까지 오르가슴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르가슴을 이야기하면, 책 한 권은 나온다. 다행인 건 이 책에 내게 있다. 그런데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읽어보고 또 한 번 글로 남기겠다. 이 글이 유익했다면 구독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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