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humour)

월경이라는 경전 -13-

by 간서치 N 전기수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이후의 중세 철학을 거치는 동안에도 수와 수들의 관계는 신이 만든 소우주와 대우주의 질서를 상징했다. 숫자 4는 4원소, 4방향, 4계절에서 알 수 있듯이 위엄 있는 대칭의 수이자, 신성한 숫자였다. 완벽한 수 중에서 가장 적은 숫자 4는 일찍이 인간의 내면을 설명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의 내면은 4가지 액체가 혼합된 것이며 그 합성에 따라 서로 다른 4가지 기질이 나오게 된다.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시간적으로 지속적인, 아니 무한히 존속하는 존재를 원질(原質, archē)이라고 명하면서, 만상의 아르케를 불이니, 공기니, 원자니, 또는 동질소(同質素)니, 하며 제시했다. 물리학자들의 존재론적 탐구는 경험적 개체보다는 그를 구성하는 분자, 원자, 그리고 미립자들이 좀 더 지속적인 존재임을 알려주며, 이런 특성을 근거로 이들을 경험계의 궁극적 요소로 제안했다.

자연철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두 가지 설명 방식이 있다. 기체로서의 물체를, 그것이 셋 중에 어떤 것이든, 아니면 불보다는 더 chacha하고 공기보다는 더 성긴 다른 어떤 것이든, 하나로 보는 사람들은 촘촘함(pyknotēs)과 성김(manotēs)에 따라서 [그 하나를] 여럿으로 만들어 다른 것들을 산출해 낸다.…다른 사람들은, 아낙시만드로가 말하는 것처럼, 대립자들(enantiotētes)이 하나 속에 있다가 거기서 분리되어 나온다(ekkrinesthai)고 말한다. 엠페도클레스와 아낙사고라스처럼 하나와 여럿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인데, 이들 역시 섞인 것(migma)으로부터 다른 것들을 분리해 내기 때문이다.

검색 창에서 “유머(humor<영국 humour>)"를 입력해 보자. 뭐라 나오는지. ‘익살스런 농담’이라는 말과 함께 생리학 용어로 ‘체액’을 의미한다고 나올 것이다. 옥스퍼드 영영사전에서 찾으면 3번 항목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old use) one of the four liquids that were thought in the past to be in a person's body and to influence health and character

체액설은 희랍 사상이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준 중심 사상이다. 현대의 모든 학문을 이해하려면 그리스 사상은 필수이다. 현대 의학도 예외는 아니다. W․C․K 거드리가 쓰고 박종현 교수가 번역한, 『희랍철학입문』는 그리스 철학 입문서로 뛰어난 저서이다.

최초의 철학자들 대부분 질료적 근원들이 모든 것의 유일한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실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것으로(exhou) 이뤄지며, 그것에서 최초로 생겨났다가 소멸되어 마침내 그것으로 [되돌아가는데], 그것의 상태는 변하지만 실체(ousia)는 영속하므로, 그것을 그들은 원소(stoicheion)이자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것도 생겨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다고 믿는다. 이런 본연의 것은 언제나 보존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왜냐하면 다른 모든 것이 그것에서 생겨나는 바의 그 본연의 어떤 것이, 하나든 하나 이상이든-이것으로 보존되므로-, 언제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근원의 수효와 종류에 대해서 모든 사람이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탈레스는 그런 철학의 창시자로서 [근원을] 물이라고 말하는데(그 때문에 그는 땅이 물 위에 있다는 견해를 내세웠다). 아마도 모든 것의 자양분이 축축하다는 것과, 열 자체가 물에서 생긴다는 것, 그리고 이것에 의해 [모든 것이] 생존한다는 것(모든 것이 그것에서 생겨나는 바의 그것이 모든 것의 근원이다)을 보고서 이런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뿐 아니라, 모든 씨앗은 축축한 본성을 갖는다는 이유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물은 축축한 것들에 대해서 그런 본성의 근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시사된 생각의 가닥은 물을 생명의 관념과 연결지우는 것이다. 말하자면 수분은 먹을 것과 씨의 필수적인 일부분이며, 생명의 열 즉 살아 있는 신체의 온기는 언제나 축축한 온기이다. (열과 생명의 연관성은, 명백한 경험의 사실로서, 오늘날보다 더 희랍인들에 의해서 필수적이고 인과적인 것으로 주장되었었다.)

그리스 초기 사상가들의 관심은 세계의 다양성 속의 동일한 성질을 부여하는 ‘일자(一者), ’근원‘으로 향했다. 이 ’일자‘는 다양성 안이면 어디라도 있는, 다양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규정하는 어떤 것이다. 기원전 4세기 엠페도클레스 이래로 그리스의 학문은 ’종류에 비추어서 더 쪼개질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로 ’요소(그리스어로 ‘스토이케이온<stoicheion>’, 라틴어로 ‘엘레멘툼<elementum', 독일어로 ’엘레멘트<Element>‘)'라고 불렀다. 엠페도클레스는 요소의 사상가이자 학자이며, 윤리적 ․ 종교적 경고자(警告者)다.

하늘, 땅, 바다의 세 가지 세계 영역은 각각 지배적인 요소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 천공(天空)은 태양과 다른 별에서 빛을 발하는 ‘불’로, 하늘은 ‘공기’로, 땅은 ‘흙’으로, 바다는 ‘물’로 말이다. 이 네 가지 요소 중에서 탈레스는 물을, 그의 제자인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을 전체 세계 의 요소로 보았다면, 엠페도클레스에 이르러서 이 네 가지 요소 모두를 우주의 초석으로 끌어올렸다

초기 학문에 대한 기록을 검토해 보면, 요소적인 것으로 실체화 될 수 있었던 속성들이 매우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그렇게 실체화 된 것들은 ‘차가움’과 ‘따뜻함’, ‘건조함’과 ‘축축함’이 있었다. 이런 실체화된 요소들은 계절과 날씨의 상태의 표현에서 잘 나타난다. 따라서 이 네 가지 환경의 상태를 나타내는 문장은 일상적인 삶에서 ‘세계를 포괄하는 어떤 것’을 뜻한다. 아울러 이와 함께 상태를 표현하는 이 문장들은 인간이 외부 환경 상태를 느낄 수 있는 육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말해 준다. 게다가 이런 외부 환경을 경험하는 인간의 상태가 곧 세계를 방향 짓는 기준점으로서의 성격을 갖게 한다. 그 상태 속에는 안락한 것과 안락하지 않은 상태가 불가분의 관계로써 통일체를 이룬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들은 요소적인 것들은 삶에 깃들어 있고, 삶이란 지속적으로 ‘어떠어떠한 상태에 처해 있음’을 말해 준다. 이런 의미에서 ‘상태에 처해 있음’은 한편으로는 방향 설정으로 체험한 세계 전체와 관계 맺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육체와 관계 한다. 이런 고대 그리스의 세계관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교부 히폴리투스가 이단인 영지주의자 아펠레의 주장에 반박한 글인 『철학총론;Philosophumena』과 『이단총론;Syntagma』에도 체액설이 인용된다. “그(아펠레)가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하늘들에 올라가면서 당신 육신의 속박들을 풀고 각 요소들을 본래 속했던 곳에 돌려주었는데, 더운 것은 더운 것에게, 찬 것은 찬 것에게, 습한 것은 습한 것에게, 건조한 것은 건조한 것에게 돌려주었다는 것이다.” 히폴리투스의 말인 즉, 상위 세계가 하위 세계 같이 지수화풍의 네 가지 성질로 이루어졌다는 아펠레의 주장과 그리스도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와 같은 육신을 지니고 있지 않고 대신 우주를 구성하는 네 가지 본질, 즉 냉온습건(冷溫濕乾)의 요소들에서 나온 요소들로 창조된 육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은 상위 세계가 순수한 영적 세계라고 했던 아펠레 본인의 주장과 이치에 맞지 않다는 뜻이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다. 같은 병이라도 증세는 같지 않다. 이 사람에게 약이 되지만 저 사람에게는 독이 되는 약재도 있고, 이병에는 특효가 있어도 비슷한 다른 증세에 쓰면 큰 일 나는 약재도 있다. 그러니 의원에게 중요한 일은, 어느 병에는 어떤 약방을 써야 한다는 지식이 아니라, 약재 하나하나의 성질과 효능을 익히는 것이다. 그래야만 병자의 체질이나 완급에 맞춰 강약을 조절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잘 듣는 약방은 없다. 어떤 병이든 다 통하는 처방도 없다. 같은 병에도 미묘한 저울질이 필요하다. 교주고슬(膠柱鼓瑟), 즉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기러기발을 붙여놓고 연주할 수는 없다. 이전 환자에게는 잘 통했는데, 이번 환자에게는 약효가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같은 병에도 미묘한 저울질이 필요하다. 이것을 잘하려면 해당 약초 하나하나의 성질을 잘 알아서 가감하고 참작하여 약의 성질을 조사해야 한다.

오늘날 체액설을 논한다면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체액설이 현대 의사들에게 주는 교훈은 깊다. 고대 그리스는 철학과 의학이 하나였다. 그들이 질병을 “힘”과 “체액”의 상관 관계로 설명하였다. 힘이 체액에 따라 미치는 영향이 다르기 때문에 질병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인간은 닫힌 체계가 아니다. 인간을 힘을 매개로 자연과 상호 소통하는 존재다. 인간과 자연의 자연적 소통은 힘과 힘의 소통이다. 힘과 힘의 소통을 아는 것이 훌륭한 의사의 일이요, 바로 신에 귀속될 가치가 있는 것이다.

현대 의학은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의 탕자가 되었다. 대형 병원에 의용 공학의 꽃인 최첨단 검사 기기와 실험 기기가 가득차고 병실에 환자가 가득하지만, 환자 개개인에 대한 개별적 요인들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이해와 통찰은 고대 의사들보다 부족하다. 의사 개개인의 개별적인 요인들의 이해와 이로부터 오는 전체적인 통찰은 적다. 의학이 하나의 기술일 수 있기 위해서는 인체의 생리학적 요소 외에도 인체에 영향을 끼치는 자연을 포함한 다른 인체 외적 요인들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고대 의학이 현대 의학에 비해서 뒤처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단순히 옛것이라 치부하여 외면하지만 말고 계승해야 할 것을 오늘에라도 다시 되새겨야 할 것은 변례창신(變例創新; “전례를 참고하여 새것을 만든다”는 뜻)해야 할 것이다.

질환을 촉발시킨 역사적인 계기와 우연적인 보조 요소를 알아내게 되면 그들에게 계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석적인 경험은 실제 치료 현장에서 체질적인 요소를 소홀히 다루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사실상 그것을 다룰 힘이 없습니다. 이론적으로 그것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심신의 복장성의 원인을 오직 4가지 체액에서 찾았던 당시의 사고방식을 보면 기계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말하겠지만, 체액설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건재한 믿음이다.


엠페도클레스는 물, 불, 공기, 흙 등 네 가지 요소들이 존재한다고 가르쳤다. 그들이 혼합체라고 부르는 모든 합성된 사물들은 이 근원적인 요소들은 결합으로부터 생겨난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 철학자들은 각 요소들에 상응하는 특별한 위치가 있다고 믿었다. 불과 공기는 자연히 상승하는 경향이 있고, 물과 흙은 아래로 향하는 경향을 지닌다.

그리스인들은 별자리도 체액설에 따라 구분하였는데, 양자리와 사자자리와 궁수자리는 불, 황소자리와 처녀자리와 염소자리는 땅, 쌍둥이자리와 천칭자리와 물병자리는 공기, 게자리와 전갈자리와 물고기자리는 물이다.

18세기 들어 현미경이 발명되고, 발생학과 해부학이 발전하면서 체액설은 치명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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