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이토스 대 데모크리토스

월경이라는 경전-25-

by 간서치 N 전기수

르네상스 시기에 사람들은 헤라클레이토스를 ‘울고 있는 철학자’로, 데모크리토스를 ‘웃는 철학자’로 대비했다. 오늘날의 우리는 비극에 나오는 ‘잘못’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니체의 말을 빌어 표현한다면, 디오니소스적인 것 보다는 아폴론적인 것이 우위를 점하고, 환상적인 낙관주의, 비극적인 것의 깊은 차원을 보지 못하는 낙관주의가 우리 문화에 점점 퍼져나갔다.


시간의 화살은 자연의 모든 과정 속에 이미 구축된 듯 보이며, 질서로부터 혼돈을 향하고 있다.… 저널리스트 맥스 러너는 우리 사회가 지금 현재와 젊음과 행동을 강조함으로써 죽음과 슬픔, 그리고 자살과 죽음의 운명에 관한 감성을 잘라 내어 버린다고 말한 바 있다. 청년 문화에 듬뿍 물드는 우리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항구적인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함으로써 현재를 더 길게, 그리고 더 넓게 연장하려고 한다. 우리는 젊게 생각하고 젊게 행동하려 한다. 우리는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 노틸러스 호가 기포나 뿜어져 나오는 욕조 상품 저쿠지의 조립라인을 통해 우리 스스로의 생활 페이스를 조절하고 있으며, 우리가 만든 기계들에게 인간의 구조 가운데 물질적 ․ 실체적 요소인 우리의 신체를 위하여 기적을 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15킬로미터의 달리는 운동 같은 터무니 없는 신체적 요구로 우리 스스로를 혹사시키기도 한고, 식이요법과 운동을 통해 몸을 축 처지게 만드는 만유인력의 영향이나 부득이한 발병을 연기시킬 수 있기를 바라기도 한다. 대단한 변화의 주창자인 우리는 모두 시간을 연기시키기를 원하며 나이 먹는 것을 혐오한다. 미래에 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오로지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미래, 은퇴 이후나 아이들의 요구에 대비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앤서니 애브니, 최광열 역, 『시간의 문화사』, 북로드,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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