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쿨파-행복한 과오

월경이라는 경전 -26-

by 간서치 N 전기수

“그렇다면 실상은 이러하네, 친애하는 뤼시스, 우리가 어떤 일들에 대해 분별 있는 자가 될 때, 그런 일들은 모든 사람들이(그리스인이든, 이방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간에) 우리에게 맡길 것이고, 그 일들에 있어서 우리는 (하기를)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할 것이며, 아무도 일부러 우리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네. 오히려 우리는 그 일들에 있어 우리 자신이 자유로운 자이면서 또한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는 자가 될 것이고, 또 그 일들을 우리 것이 될 것이네. 그 일들로부터 우리가 득을 볼테니까 말일세. 반면에 우리가 분별력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그 일들에 관해서 우리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도록 맡기기는커녕 모든 사람들이, 그러니까 남들만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이들보다 우리에게 더 가까운 어떤 자가 있다면 그도, 할 수 있는 한 방해할 것이네. 그래서 우리들 자신은 그 일들에 있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따르는 자가 될 것이고, 또 우리에게 그 일들은 남의 것이 될 것이네. 그 일들로부터 우리가 아무런 득도 보지 못 할 테니까 말일세. 그렇다는 데 동의하나?” 내가(소크라테스) 말했네.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들에 대해 우리가 쓸모없을 때, 그런 일들에 있어서 우리가 누군가에게 친구가 되고 일들에 있어서 우리를 사랑하게 될 것인가?”

“물론 아닙니다.” 그가(뤼시스) 말했네.


처음에 의학은 철학의 일부로 여겨졌다. 그래서 질병의 치료와 만물의 본질에 관한 성찰이 동일한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때문에 많은 철학자들이 의사들이었고, 그중에서도 피타고라스와 엠페도클레스와 데모크리토스가 가장 유명했다.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그들의 제자가 키오스 출신의 히포크라테스였고, 그가 의학을 철학적 탐구와 분리시켰다.


Felix Culpa


2006년 2월자 『엠디 저널(Medical Doctor Journal)』에 「의사의 오진으로 바뀐 삶」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그 글을 쓴 사람이 필리핀 보라카이에 선배들과 놀러 갔다가 그곳에서 스쿠버 다이빙 상점을 경영하는 사장의 사연을 듣게 되었다. 한 때 대기업 과장으로 일하던 중에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에 진찰하러 갔더니 백혈병이라는 통보를 받고 어차피 죽을 인생, 하고 싶은 스킨 스쿠버나 실컷 하다 죽자는 마음을 먹고 그 동안 힘들게 모아왔던 돈을 탈탈 털어 그 곳에 상점을 낸 것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오진(誤診)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어차피 이렇게 된 일 다시 살아난 셈치고 그곳에서 정착하게 되었단 것이다.


모든 의사의 오진이 이렇게 ‘행복한 과오’를 낳으면 얼마나 좋겠냐만,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2005년 12월 29일 대전시 건양대병원에서 갑상선이 아픈 환자는 위를 잘라내고, 위암 환자는 갑상선을 제거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수술을 마친 뒤 의료진은 이 사실을 알았고, 이미 멀쩡한 갑상선의 절반과 위장의 3분의 1 정도가 절제된 상태였다. 문제는 수술실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차트가 바뀐 것이었다. 그 날 오후에 그 두 환자는 다시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


플라톤, 강철웅 옮김, 『뤼시스; Lysis』, 이제이북스, 2007,

이상인, 『플라톤과 유럽의 전통』, 이제이북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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