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이라는 경전-27-
(전략) 여러분이 의사라면 환자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환자의 내력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환자에게 어디가 아프냐고 묻습니다. 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이야기하고, 여러분은 이것저것 물으면서 상세한 상황을 파악합니다. 그리고 나서 여러분은 “유전 때문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환자의 가족 내력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자세하게 살피지 않고는 확실한 진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부모님이 아직 살아계시느냐, 아니면 어떻게 돌아가셨느냐 등 여러분은 환자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묻습니다. 때로는 환자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는 생각해 봅니다. ‘혹시 과로해서 그런 거 아닌가? 현대 생활의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이 아닌가? 직업병은 아닌가?’ 여러분은 이 모든 것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들을 알지 못하고는 정확히 진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과학은 자연의 궁극적 신비를 결코 풀지 못할 것이다. 자연을 탐구하다보면 자연의 일부인 자기 자신을 탐구해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오기 때문이다.” -막스 플랑크-
“모든 위대한 기술들은 자연에 관한 예리한 성찰과 고차원적 탐구를 필요로 한다네.”-플라톤-
다른 모든 분야의 고급 교육에서는 학생들에게 가능하면 많은 정보와 사상을 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원인을 규명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창조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배양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학생과 교수의 논쟁은 장려되고, 박사 학위 논문을 쓴때는 자신의 이론은 주장하고 옹오한다.
그러나 의대만은 그렇지 않다. 의대에서는 학생들이 어떠한 논쟁이나 질문도 제기하지 않고 이론을 흡수하기만 해야 한다. 학생들은 반사적으로 교수에게 대답하도록 배운다. 의대에서는 학생들에게 독단적인 요소로 가득한 내용을 가르치고, 판단을 내릴 권한은 거의 주지 않는다.
2008년 6월 18일 서울 금호 아시아나 빌딩 문호 아트홀에서 ‘과학 문화 융합 포럼’이 열렸다. 정보 기술과 생명 공학 기술을 넘어 과학과 인문학, 그리고 문화와 예술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관계의 기술(Relations Technology)시대로’가 이 포럼이 지향하는 목표다.
소크라테스: 그러니 신체에 속하는 것들 중에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은 자신에 속하는 것들을 아는 사람이지. 자신을 아는 사람은 아닐세.
알키비아데스: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니 어떤 의사도, 의사인 한에서는, 자신을 알제 못하고, 어떤 체육교사도, 체육교사인 한에서는, 자신을 알지 못하네.
알키비아데스: 그런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리고 자네는 전체의 본성 없이 영혼의 본성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파이드로스: 만약 아스클레피오스의 후예인 히포크라테스를 믿어야 한다면, 이러한 방법 없이는 육체의 본성에 관하여 올바르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파이드로스가 말하는 대목이 베일에 가려진 히포크라테스의 사상이 지닌 본질적 특징을 비교적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는 구절이다. 그리고 동시에 고전학자들 사이에서 히포크라테스의 의학과 관련해 가장 많은 논쟁거리를 제공한 구절이기도 하다. 논쟁의 중심에는 “전체”라는 개념이 있고, 해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한편에서는 전체를 “고찰되는 대상 전체”라고 본다. 이런 방향에서 보면, 합리적인 의학의 방법은 육체의 특정 부분에서 나타나는 증상이나 질병을 육체 전체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이고, 수사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한 “전체”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고차원적 탐구”를 천체의 운행에 관한 자연철학적 성찰이 아니라 “철저한 일반적 탐구”로 보게 한다. 이것은 가능한 해석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일관성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설득력도 갖추고 있다. 반면 다른 해석은 전체를 “세계 전체”로 본다. 이 해석에 따르면 육체나 영혼은 스스로 영향을 주면서 또 받기도 하는 하나의 거대한 자연 체계의 일부이다. 따라서 영혼을 알기 위해서는 영혼의 소우적 구조에 반영된 대우주적 구조를 고려해야 하듯이, 육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육체의 활동을 규정하는 총체적 자연 세계를 고찰해야 한다. 그렇다면 고차원적 탐구는 글자 그대로 땅 위의 것들, 즉 인간 삶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고차적 원리들에 관한 철학적 탐구이다. 결국 의학은 육체와 자연의 본성과 능력의 교환에 관한 과학적 기술이고, 수사학은 영혼과 자연의 영향 관계에 관한 기술이다. 이것이 역시 일관적인 해석이다.
이런 원리에 비추어 볼 때, 전해지는 히포크라테스의 저작들 가운데 진위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그의 의학의 본질은 인간의 건강과 질병을 주변 환경의 관점에서 방법적으로 조망하는 환경의학의 자연철학적 배경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환경의학의 합리주의적 방법이 히포크라테스의 저작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를 포함한 고대 그리스의 의사들은 “자연철학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궁극적인 목표는 질병과 건강의 제1원리에 관한 자연철학적 탐구를 전제하고 보편적 원리들을 개별 경우에 적용하는 데서 성립한다는 것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피타고라스는 철학자이자 수학자였고 동시에 의사이기도 했다. 그는 철학과 수학에 안주하지 않고 그 이론적 성과를 인체와 같은 개별적인 경우에 적용하고자 했다. 인체 역시 세계의 일부라면, 인체에서 발생하는 건강과 질병도 한정과 무한정에 기초한 대립 요소들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세계를 가령 빛과 어둠, 온과 냉, 건과 습이 고루 분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고, 춘하추동이라는 사계절 역시 건온습냉의 요소에 대응시켰으며, 건강과 질병을 궁극적으로 인체를 구성하는 이러한 대립 요소들의 조화와 부조화로서 설명하였다. 이러한 연역적 접근은 피타고라스의 제자인 크로톤의 알크마이온에서도 발견된다. 알크마이온은 자연철학적 탐구보다는 주로 의학적 탐구에 몰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스승과 마찬가지로 건강과 질병을 습과 건, 냉과 온, 씀과 달콤함이라는 대립적 성질들의 조화로운 혼합과 부조화의 결과로서 설명한다. 피타고라스나 알크마이온에게 철학적 탐구의 최종기착지는 이처럼 의학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자명하다. 의학의 정확성은 의학이 전제하는 자연철학적 원리들의 엄밀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의학의 엄밀성은 결코 자체적으로 확보될 수 없고, 인체의 개별적 현상들이 인체를 포함해 자연 전체에 관한 철학적 해명에 부합하고, 또 그로부터 해명될 수 있을 때만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고대 (자연)철학자들이 보여주는 혜안에는 현대 과학의 수준에서도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시사점이 있다. 전체의 포괄적 연관에서 기원한 개별 현상들을 연구하는 것은, 개별자들을 함축적으로 포함하고 또 개별자들이 기원한 보편적 전체에 관한 방법적 고려 없이는, 결코 과학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의학은 경험과 관찰에 직접적으로 의존하는, 가장 불확실한 최후의 학문에 속한다. 이런 의미에서 독립 과학을 자처했던 근대 의학은 자신의 권위를 편견 없는 관찰과 실험에서 찾았지만, 고대 의학은 이러한 근대의 한계를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았다. 자연 철학이나 천문학의 지식 없이는 “의학이 불완전하고 무능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 역시 초기 자연철학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서 최후의 과학으로서 의학을 최초의 과학들과의 연관 속에서 정초하고자 했다. 히포크라테스의 환경 의학은 바로 이러한 노력의 결정체였다. 히포크라테스는 실험과 관찰의 방법을 등한시하지는 않았지만, 경험을 합리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는 방법과 이론 속에서 단순한 사실적 경험을 과학적 경험으로 고양시키고자 한 합리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의술을 오늘날과 달리 전문 직종이 아니었다. 의사들은 치료를 위해 법적으로 공인된 자격증을 가질 필요가 없었고, 누구나 환자를 치료할 수 있었다. 산파, 주술사, 돌팔이 의사들이 공개적으로 환자의 치료를 담당했고, 그런 의미에서는 그는 당시의 의사들과 일종의 경쟁 관계 속에 있었다. 전문 의사의 위상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의사들은 “의학과 같은 것이 잇고, 또 그것이 진정한 기술과 기능과 과학을 함축하는 테크네라는 것을 부각시킴으로써 자신을 비전문적, 비과학적 의사들과 차별화해야 할 필요성에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되었다. 히포크라테스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히포크라테스의 합리주의가 지닌 첫째 요소는 미신과 주술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신적인 것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사이비 의사들의 신에 대한 불경을 비판했고, 그들의 불순한 의도를 배척했다. 그는 신적인 것에 대한 당시의 종교적 정서를 해치지 않고, 신적인 것에 대한 무지를 앎으로 가장하여 질병을 이해하려는 모든 주술적 시도를 배척함으로써 의학의 자연주의적 기초를 확고히 수립할 수 있었다.
둘째 요소는 방법적 엄밀성의 증대에 관한 원칙이다. 그는 인체와 자연에 관한 이론적 지식을 질병으로 설명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환자를 대할 때 사람과 관련된 지질학, 풍속학, 기후학, 천문학과 같은 학문들을 미리 학습하라고 요청했고, 그 자신도 이런 학문들의 성과를 임상 치료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히포크라테스는 이와 같은 상위 과학을 의학의 엄밀성의 토대와 근거로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다. 그는 인체는 방법적 준거를 확보하고 이로부터 의학적 설명과 관찰의 엄밀성을 증대시킴으로써, 의학의 과학성을 확립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약은 좋은 비유를 제공한다. 황제(黃帝)의 『소문(素問)』은 『금궤(金匱)』나 『옥함(玉函)』과 함께 모두 의약의 이치를 분명하게 해주는 책이다. 그러나 만약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세상을 구원하려고 하면, 우리는 먼저 맥을 짚을 줄 알고, 약을 지을 수 있고, 침을 놓고, 뜸을 뜨고, 가볍게 주무르고, 세게 누르는 안마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단단히 착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이는 단지 숱한 의학 서적에서 수많은 처방(지시)만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그러한 저작의 구석구석가지 전통한 다음에라야, 자신들이 스스로 의약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가진 것으로 여긴다. 그들은 맥을 짚고, 약을 짓고, 침을 놓고, 뜸을 뜨고, 가볍게 주무르고, 세게 누르는 안마를 하찮은 ‘기술(쟁이)’로 간주하고서 연구할 가치가 없다고 본다. 그들이 모든 책은 나날이 여러 분야로 넓어지고 그것에 관한 이해도 훨씬 깊어진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을 칭찬하고 온 세상이 전부 그들을 모방하려고 한다. 기백과 황제 같은 이가 이 세상에 가득 차 있지만, 아픈 사람들은 베개를 맞댈 정도로 많고 죽어가는 이는 줄을 잇고 있지 않은가! 『안원집』, 『존학편』권1
의사가 검사에 의존하는 정도와 임상적인 기술은 대부분 반비례한다. 오늘날 수많은 의사들이 환자에게 피상적인 이야기만 듣고, 더욱더 피상적인 신체검사만 시행한다. 그러고는 일련의 검사를 지시한다. 그러나 75%의 환자들은 과거의 병력만 가지고 진단이 가능하다. 15%는 신체검사를 통해, 그리고 5%는 실험실 검사를 통해 진단할 수 있다. 나머지 5%가량의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질병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는 진단할 수 없다. 의사들은 전통적인 진단 수단에 가장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현대의학의 사제들에게 완벽한 병력을 작성하고 철저한 신체검사를 하는데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암을 포함한 질병에 대한 연구는 최근 들어 비약적 발전을 하였다. 그러나 어떤 첨단 기술도 사형 선고를 받은 암 환자의 두려움을 이해하거나 마음을 치유하긴 힘들다. 이런 이유로 암 환자들은 최상의 보살핌뿐만이 아니라 인정 넘치는 전문가도 필요하다. 이제 더 이상 세계적 수준의 의학과 인도주의적 치료는 상호배타적이 아니라고 말한다.
환자들이 의사에게 바라는 것은 희망, 신뢰, 존경, 온정, 이해, 공감 등이다. 이제 의사는 CT나 MRI 영상과 소통함과 아울러 어떻게 투병 생활을 하는지에 관한 환자와의 소통을 이야기 해야 한다. 미국립과학원 산하 의학연구소(IOM)가 2007년 말 발간한 ‘전인적인 암 치료’에서 연구자들은 의료 제공자들이 종종 환자들이 직면하는 정서적, 사회적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환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치료 효과를 떨어뜨리는 우울증과 정확한 정보 부족을 말한다.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샤피라는 2007년 발표된 조사 결과에서 종양학자 전체의 3분의 1이 환자의 심리사회적 스트레스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기서 말하는 심리사회적 스트레스란 정서적, 사회적 어려움과 정신적 장애도 포함한 용어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의사는 “암입니다”라고 판정하는 순간부터 환자와의 소통이 시작되어 함을 보여준다.
마틴 로이드 존스, 전의우 역, 『진정한 기독교』, 2008
이상인, 『플라톤과 유럽의 전통』, 이제이북스, 2006
로버트 S 멘델존, 『여자들이 의사의 부당 의료에 속고 있다, Male practice : How doctor manipulate women』문예출판사, 2003
플라톤, 김주일 ․ 정준영 역, 『알키비아데스ǀ․ǁ』, 이제이북스, 2007
필립 아이반호, 신정근 역, 『유학, 우리 삶의 철학』, 도서출판 동아시아, 2008
2008년 7월 2일 한국판 뉴스위크, p4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