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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pr 21. 2020

그저 그런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2002년 1월 5일은 저의 첫 책이 출간된 날입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이름이 적힌 책 하나를 출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당시 20대였던 제가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출판사에 기획안을 제출하고 서점에서 제 이름이 걸린 책을 볼 수 있게 되기까지 정확히 6개월이 걸렸습니다. 초짜 치고는 굉장한 성공이었지요.


운 좋게도 그 책은 생각보다 잘 팔렸습니다. 첫 책이 잘 팔리니 이후 쓴 글들도 제 글을 받아주는 출판사를 수월하게 찾을 수 있었고 이후 2년 만에 연달아서 3번째 책까지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 해에 제 운이 트였는지 모 주간지의 칼럼을 쓰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대학원 강의까지 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인 연습 10] 우물쭈물 말고, 지금 당장 평생의 취미를 찾고 노인이 되는 연습을 시작하자. 뭐든!!


초반의 성공에 자신만만해진 저는 당시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를 선언할 날만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노력하는 것보다 출간이 수월했고 또한 남들보다 쉽게 진행되었으니까요. 그러나 먹고사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아무리 인세가 들어온다 해도 들쑥날쑥하였고 인세가 0 인 달도 있었습니다. 특히 당시 다니고 있던 괜찮은 직장에서 매 월 25일마다 통장에 꽃아 주는 월급의 유혹을 도저히 이길 수 없었습니다.


저는 결국 현실과 타협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저는 회사를 다니면서 책을 쓰는 그저 그런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첫 시도를 한 지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고 책꽂이 한 칸은 그동안 1년에 한 권 꼴로 출간된 20권이 훌쩍 넘는 책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열심히 썼다고는 하지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책이었는지 누가 물어보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뭔가 큰 한방이 없는 그저 그런 작가였으니까요.


설상가상으로 한 권의 책을 출간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제 노동력은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고 반대로 인세는 기하급수적으로 감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월급마저 없었으면 진작에 파산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전업작가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던 그 예전의 저에게 '자네. 참 탁월한 선택이었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앞으로도 그저 그런 작가로 사는 것에 대해서 만족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저 그런 작가로 살아온 저의 말로가 드디어 보이고 있습니다.


인세가 잘 들어오고 돈이 될 만한 강의가 들어올 법한 글 위주로 수십 년 간 써 온 3류 작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습니다. 예전과 같이 어중간한 선택은 이제 불가능하겠지요.


마음이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 시작했던 브런치가  저의 그저 그랬던 지난날을 바로잡아 줄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좋아하고, 출간이 되었다 좋아하고, 인세가 들아와서 좋아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다가 아닌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치열하다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상이든,  교보문고에서 창작 소설로 상을 받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비로소 시작인 셈입니다.

 



재테크와 노후준비, 그리고 가장 중요한 [노인이 되는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제 스스로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재테크가 잘 안 되어서 수중에 돈이 없는 노부부가 되더라도, 최소한 가오가 없는 노인이 되지는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몸은 이미 노인이 되어서 주머니에 돈도 없는데, 가오까지 없으면 너무 슬프지 않겠습니까?


돈이 있으면 돈 드는 멋진 취미를, 저처럼 돈이 없으시면 돈이 안들지만 가오가 사는 취미를 찾아야 합니다.


우물쭈물 말고, 평생의 취미를 찾아서 가오 있고 멋있는 노인이 되는 연습을 시작해 봅시다. 뭐든 말입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저 그런 작가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지속적으로 발버둥을 쳐야겠지요. 의학의 발달로 인생이 길어졌으니까요.


혹시 압니까? 제가 100세를 넘어 150세를 살지도요. 으으....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혹시 20년 후, 아니 50년 후에 머리가 희끗해진 한 노인이 종로와 을지로의 구석진 싸구려 커피숍에서 낡은 노트북을 들고 무언가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신다면 그 집에서 가장 저렴한 커피 한잔 조용히 건네주세요.


그 노인이 혹시 가오 없이 넙죽 받아먹으면, 노인이 된 문학소년의 그저 그런 작가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투가 여전히 진행 중이겠거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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