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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Sep 19. 2024

극락에서 쫒겨난 천왕정화 선녀님

[소설] 독광정육 콜렉션팀 (외전)

본 화는 교보문고 주최 공모전에서 수상한 [소설] '독광정육 콜렉션팀' (외전) 입니다. [독광정육 콜렉션팀]은 2025년 1월에 교보문고 웹사이트(www.kyobobook.co.kr) 내 새로운 공간에서 인사 드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문학소년 드림)




카톡!!!


잠을 자려고 이불을 펴고 준비하는데 영천이 카톡을 보냈다. 나는 그녀가 보낸 카톡에 답변했다.     


[영천] 련은씨, 지금 뭐 하세요?

[련은] 이제 막 씻고 잘 준비하려 하고 있어요. 영천 씨는요?

[영천] 저도 자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내일 주말인데 우리 영화 한 편 볼까요?

[련은] 영화요? 좋아요, 그러면 내일 어디서 볼까요?

[영천] 제가 집으로 갈게요.

[련은] 네. 그러면 내일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


다음날, 한참 정신없이 자고 있는데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지?’    


가까스로 눈을 떠서 부엌에 나가보니 영천이 부엌에 있는 작은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꺼내 상을 차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아직 2시간 이상 남아있었다.     


“영천씨? 저 깨우지 않고요? 맛있는 거 사주려고 했는데.”    


“아니에요. 여기 냉장고에 먹을 거 많은데요 뭐. 제가 된장찌개 끓이고 있어요. 세수하고 와요. 밥 먹어요.”    


세수를 하고 나오니 영천은 이미 방에 상을 펴 놓고 전기밥통의 밥을 퍼서 담고 있었다. 마치 이 집의 안주인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그녀를 보고 놀랐지만 나는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제가 도와드리려 했는데 벌써 다 상을 차리셨네요?”


“냉장고에 있는 반찬에 된장찌개 하나만 더 끓인 건데요 뭐, 빨리 와요 저도 배 고파요.”


“네, 잘 먹겠습니다.”    


영천이 만든 된장찌개를 수저로 푸니 큼지막한 우렁살과 두부가 보였다.    


“와, 저 우렁 된장찌개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그러고 보니 영천 씨가 꼭 우리나라 전래동화에 나오는 우렁각시 같아요.”    


“그래요? 저도 우렁 된장찌개 좋아하거든요.”    


우렁 된장찌개 한 입을 먹은 나는, 그 맛에 놀라서 영천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한 수저를 더 퍼서 입으로 넣으면서 말했다.    


“진짜 맛있어요.”    


***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끝내고 뒤를 돌아보니 영천은 방에 쭈그리고 앉아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어찌나 열심히 방바닥을 닦는지, 바닥이 반짝반짝 윤이 나고 있었다. 나는 영천을 보면서 말했다.    


“영천 씨. 그냥 두고 쉬세요.”


“심심해서 그냥 하는 거예요. 설거지 다 하셨으면 우리 영화 보러 가요.”    


잠시 후, 우리는 멀티플렉스로 향했다. 영화는 그리스신들과 이집트신들이 싸우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였는데, 영천은 피곤했는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잠이 들었다. 나는 그녀가 깨지 않게 조심조심 콜라와 팝콘을 먹으면서 영화를 봤다. 어느덧 영화가 끝나서 영화관의 불이 환하게 켜지자 영천이 화들짝 놀라면서 깼다.    

“죄송해요. 잠깐 눈 감는다는 게 잠이 들었네요.”


“괜찮아요. 영화 내용이 그냥 그랬거든요, 어제 일 많으셨나 보다.”


“그래요? 표지는 재미있어 보이던데, 무슨 내용이었는데요?”


“그냥 고대 그리스 신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액션 영화였어요. 제우스랑 포세이돈이 싸우는 거였던가. 암튼, 우리 맛있는 커피 마셔요. 멀티플렉스 옆에 조그만 점방 커피숍이 있는데 진짜 맛있어요. 테이크아웃 전용이라서 자리가 없는 게 흠이지만.”    


우리는 영화관을 나가서 멀티플렉스 뒤에 있는 작은 건물 1층 구석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했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 앞에 작은 깃발이 휘날리는 게 보였다. 하얀색 아래, 붉은색의 깃발에는 ‘천왕정화선녀님’라는 궁서체의 글씨와 그 옆으로 노랗고 빨간 형형색색의 깃발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 있는데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영천이 팔꿈치로 나를 툭 치면서 말했다.    


“우리 저기 천왕정화 선녀한테 궁합 한번 봐볼까요? 재미로요.”    


"궁합이요?"


나는 놀란 눈으로 영천을 바라봤다. 짧은 단발머리를 한 영천은 한없이 맑은 눈으로 웃은 뒤 내 팔짱을 끼고 천천히 점집을 향해 걸어갔다.     


***     


우리가 들어간 ‘천왕정화선녀’ 점집은 약 다섯 평 정도의 작은 방이었다. 정면에는 낡은 초상화들이 보였고 낡고 긴 나무 탁자가 놓여 있었다.  탁자 위에는 금빛 방울과 붉은 붓과 같은 일반적인 무당이나 점집에서 볼 수 있는 각종 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초상화를 보니 진짜 손으로 그린 그림은 아니었고 프린트로 출력을 한 조잡한 사진이었다. 양쪽으로는 작은 금빛 부처님상을 포함한 알 수 없는 수많은 조각상들이 있었다.     


초상화 아래에는 ‘옥황상제도’, ‘염라도’, ‘용왕도’라는 글씨가 그림의 출처와 함께 적혀 있었다. 나는 그림을 자세히 보면서 영천에게 말했다.     



“저희 아버님이 가장 무섭게 생기셨는데요? 용왕님은 젊으실 때 그리신 건지 실제보다 둥글둥글하네요. 옥황상제님은 왠지 익숙한 동네 할아버지 모습인데.. 제가 그때 뵌 모습과는 좀 많이 다르네요. 다들 안 보고 그렸나 봐요. 뭐...그나마 용왕님은 쪼금 비슷하네요."


그림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리는 이런 내가 재미있는지 영천은 미소를 지었다. 순간 반대쪽의 방문이 벌컥 열리고 화려한 저고리를 입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안으로 들어오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자의 머리는 각종 휘황찬란한 색상의 꽃들과 귀걸이로 장식되어 있었다.



“왜 이제야 왔어!!!!!!”    


***     


천왕정화 선녀라 하는 젊은 여성의 두 눈은 검고 파란 색조화장을 해서 부리부리했고, 입술은 분홍 립밤을 잔뜩 발라서 반짝반짝 거렸다. 방 안으로 들어온 여자는 맞은편에 앉아 있는 우리를 보더니 다짜고짜 버럭 소리를 지른 후, 바탁에 털썩 앉아서 방울을 흔들면서 앞에 놓여있는 생 팥알을 몇 개 집더니 영천에게 냅다 던졌다.    


“안 좋아.”    


“안녕하세요.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뭐가 안 좋을까요?”    


영천은 빙그레 웃으면서 여자에게 말했다.    


“뭐긴, 궁합이지. 이년이 지 앞에 앉은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늦게 온 주제에 웃고 있구먼. 너 오늘 나 만나서 다행인 줄 알아.”     


“누구신데요?”    


“이 뒤를 봐 바.”    


그녀는 뒤에 걸린 세 장의 초상화를 가리켰다. 아까 들어올 때 봤던 ‘옥황상제도’, ‘염라도’, ‘용왕도’를 다시 바라봤다. 그리고는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보면서 크게 말했다.     


“너희들 앞에 있는 고귀한 나는, 옥황상제님과 염라대왕님, 그리고 용왕님을 모두 모시고 있는 천왕정화 선녀야. 자네 중고등학교 때 역사 시간에 배운 고려라는 나라 알지?”     


“네, 잘 압니다,”    


영천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려의 3대 국조 원덕대왕의 왕후. 즉, 태조 왕건의 증조모가 바로 나, 정화왕후야. 천수를 누리고 죽은 뒤에 극락으로 갔지. 그 후, 옥황제님의 총애를 받고 외동딸로 입양이 되어 천왕정화 선녀가 되었지.”    


영천의 옆에서 커피를 빨대로 마시던 내가 푸흡! 하고 책상 위로 뿜었다. 여성의 두 눈에서 레이저 빛이 나오자, 당황한 나는 후다닥 손을 뻗어서 책상 위에 튄 커피를 재빠르게 닦았다.     


“엇,, 죄송합니다.”     


내가 허둥지둥하면서 입에서 튄 커피를 닦자. 영천이 나를 보고 웃은 후, 해맑은 표정으로 다시 천왕정화 선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요? 그나저나 선녀님은 모시고 있는 분들이 참 많으시네요. 옥황상제님에 염라대왕님에 용왕님까지... 한분도 제대로 모시기 힘들 텐데. 능력이 참 대단하세요.”    


“어느 안전이라고 지금 꼬박꼬박 말대꾸야!!!”    


천왕정화 선녀는 흔들던 방울을 갑자기 멈추더니 자신의 앞에 있는 생쌀을 집어서 영천의 앞으로 냅다 던졌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서 뒤에 있는 초상화를 보며 말했다.    


“옥황상제님. 우리 아빠, 이 불쌍한 아이들을 용서해 주세요. 제가 잘 타이를게요. 너무 화내지 말아 주세요.”


그녀는 다시 뒤를 돌아서 방바닥에 털썩 앉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가만 보자. 너 옆에 있는 남자친구랑 궁합 보러 왔구나? 이름! 나는 생년월일 같은 거는 없어도 다 알아!”    


영천은 웃으면서 천왕정화 선녀를 보고 말했다.    


“저는 영천이라고 합니다. 제 옆의 이분은 련은 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름이 둘 다 괴상 요랄하구만,”     


천왕정화 선녀는 손에 든 금빛 딸랑이를 흔들었다. 갑자기 눈을 뜨더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안 좋아! 너무 안 좋아!”    


“그래요?”     


“당신 부모가 앞길을 캄캄하게 가로막을 상이야. 안타깝네.”    


“뭐가요?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옆에 앉은 남자친구가 올해 옥황상제의 기가 담긴 대운이 들어오는데 자네 부모가 다 막고 있어. 쯧쯧쯧.”    


“아.... 저희 부모님이 대운을 막고 있다고요? 그렇다면 혹시 남자친구 운을 틔울 방법이 있을까요?”    


“당연히 있지, 그래서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거야 너희같이 불쌍한 중생들 구제하려고. 방법은 염라대왕님에게 굿을 해야 해. 씻김굿을 하면서 자네 부모의 운도 내가 같이 한꺼번에 풀어주면 돼. 그러면 옥황상제의 외동딸인 내가 아빠에게 잘 이야기해서, 대운을 남자친구에게 전해줄 수 있어.”     


영천이 놀란 눈으로 다시 물었다.     


“염라대왕님에게 굿을요? 옥황상제님의 대운인데 왜 염라대왕님에게 굿을 해야 하나요?”     


“이년이 남편 될 사람 앞길 막을 셈이야? 내가 이야기한다고 미천한 네가 옥황상제님의 수양딸인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버럭 화를 낸 천왕정화 선녀는 손가락을 들더니 책상 위에 있는 은행계좌번호를 가리켰다.    


“자세하게 알고 싶으면 지금 당장 오백만 원 이체해. 싸게 부른 거야. 일주일 안으로 씻김굿을 해야 효험이 있어. 명심해.”     


“굿 값으로 오백만 원 비싸다. 그나저나 우리 아빠가 어떻길래 제가 옥황상제의 대운을 가로막은 건가요?”   


“아니, 이년이 꼬박꼬박 말대꾸네. 기다려. 내가 아빠한테 물어볼게.”    


천왕정화 선녀는 눈을 감고 금빛 딸랑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보인다. 보인다. 우리 아빠 옥황상제님 보인다.”    


1분 정도 방울을 흔들던 천왕정화 선녀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더니 딸랑이를 탁자에 떨어뜨렸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영천을 바라봤다. 그녀의 두 눈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다.. 당신은... 옥영천....님?”


그 순간이었다.


***


퍼엉!!!!!


우리가 앉은 방 안이 연기로 가득 차더니 점점 연기가 걷히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연기가 걷히자 지옥에서 고통받는 죄인들이 내는 피와 신음소리가 가득했다. 그리고는 우리 앞에 거대한 청룡언월도와 방천화극을 들고 붉은 적갑옷을 입은 덥수룩한 수염의 두 남자가 나타났다.



두 남자가 들고 있는 언월도와 방천화극의 날카로운 날 끝에서는 검붉은 핏방울이 바닥으로 후두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을 본 천왕정화 선녀는 덜덜 떨면서 아무 말 못 하고 있었다. 그 중 언월도를 든 키가 거의 2미터는 되어보일 남자가 부리부리한 눈을 더욱 부릅뜨고 천장이 내려앉을 정도의 큰 소리로 말했다.


“누가 감히 우리 옥황상제님과 염라대왕님 이름을 팔고 다녀? 너야? 어? 너는?”


날카로운 청룡언월도를 ‘천왕정화선녀’에게 들이민 남자는 마치 알던 사람을 만난 듯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옥황상제님과 염라대왕님의 이름을 또 더럽히는 이년을 끌고 가서 사지를 절단하고 혀를 뽑아 버릴까요?”

“괜찮습니다. 들어가세요.”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물러가옵니다.”


청룡언월도를 든 남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우리가 앉은 방은 다시 점집으로 변경되었다. 천왕정화 선녀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니 영천이 말했다.


“복채 오만 원 계좌이체했어. 나는 이만 가 볼게. 재미로 보는 점 정도는 괜찮지만, 굿 값으로 오백은 좀 심하지 않아? 혹시 또 선량한 사람들 상대로 거액의 굿값으로 사기 치면...”


영천이 웃으면서 천왕정화 선녀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앞에 계신 염라대왕님의 아드님이 천왕정화 선녀님의 혀를, 뿌리 채 뽑아서 저승의 밭에 갈아버린 후 지옥으로 끌고 갈 거야.”


놀라서 아무말도 못하는 천왕정화 선녀를 뒤로 하고 점 집을 나오면서 영천에게 물었다.


“영천씨, 혹시 아시는 분이세요?”


"오래전에 극락에서 쫒겨난 후, 뭐하고 사나 궁금했는데 여기 독광동에 점집을 차렸네요?"


"네에? 저분이 그러면 진짜 천왕정화 선녀에요?"


"한때 그랬죠. 지금은 아니지만..."


"무슨 잘못을 하셨길래..."


"남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선량한 나무꾼을 유혹한 죄 입니다."


"네에? 그렇다면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님이 저분이고, 극락에 남편이 있으셨던 거에요? 사냥꾼에 쫒기던 사슴을 나무꾼이 구해주고, 사슴이 그 대가로 선녀들이 목욕하는 장소를 알려준 거 아닌가요?"


"그 반대에요."


"네에?"


"잘생긴 나무꾼의 얼굴과 몸을 보고 반한 나머지, 사슴에게 자신이 목욕하는 곳을 알려주라고 로비를 한 겁니다. 그리고 극락에 있는 남편을 버리고 나무꾼과 동거를 해서 이승에서 출산까지 했지요. 그 후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결국 나무꾼과 나이든 시어머니를 버리고 극락으로 도망왔지요.”


영천의 말을 듣고 놀란 나는 점집 입구에 위치한 영천의 아버지 옥황상제님, 나의 아버지 염라대왕, 별이형이 모시는 용왕님의 작은 동상을 바라봤다. 세분 모두 온화한 미소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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