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정의'를 선택한다

[이야기] 단종과 세조의 증언

by 최경식

최근 우리나라에서 '공공의 적'이 된 역사 인물이 있다. 바로 수양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단종의 비극이 널리 알려지면서,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수양과 한명회가 거센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럴 만도 하다. 반란을 일으켜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고, 수많은 충신과 단종을 죽음의 길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배에서 나온 친동생들까지 죽였다. 이렇게만 보면 수양은 인간쓰레기에 해당된다.


■훌륭한 군왕, 세조

그런데 수양은 군왕(세조)으로서는 훌륭했다. 엄청난 과오에 가려져서 그렇지, 정치적 업적은 대단한 편이었다. 우선 세조는 왕권을 강화했다. 의정부 서사제가 아닌 '6조 직계제'를 실시, 군왕이 직접 전면에 나서서 중앙 집권제를 확립했다. 조선은 왕조 국가이다 보니, 왕권이 강해야 국가가 발전하는 경향성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것은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 편찬이다. 이의 완성은 성종 때였지만, 기초 작업을 한 것은 세조 때였다. 경국대전은 조선 사회의 모든 제도와 규범을 담았다. 이를 통해 혼란을 줄이고, 국가를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갈 토대가 마련됐다.


군사 제도를 정비하고 국방력도 강화했다. 조선의 중앙군을 '5위'(의훙위, 용양위, 호분위, 충좌위, 충무위) 체제로 개편했으며, 이전까지 부실했던 내륙 지방의 군사 조직을 보강해 '진관 체제'를 완성했다. 북방 개척에도 힘을 쏟아 두만강 유역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국경을 안정시키기도 했다.


재정과 예산 제도를 정비해 국고도 탄탄히 했다. 여기서는 걷는 만큼 쓴다는 '양위입출'의 원칙이 철저히 지켜졌다. 아울러 기존 과전법의 모순을 시정해 '직전법'을 실시, 현직자에게만 토지를 지급함으로써 국가 수입이 크게 증대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호패법'을 재시행해 호구의 실태를 파악했으며, '면리제'도 처음으로 시행했다. 특히 면리제는 지금도 우리나라의 주요 행정구역 제도로 사용되고 있다.


세조는 학문과 문화의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유교 경전 등 다양한 서적들을 편찬하고 보급했다. 금속 활자도 개량해 인쇄술을 크게 발전시켰다. 이는 더 많은 서적들이 보급됨은 물론 사회의 지식수준을 높이는 선순환 효과를 불러왔다. 더욱이 세조는 검소했으며, 아내를 극진히 사랑해 후궁들도 거의 들이지 않았다.


■역사의 정의

지금껏 살펴본 바에 따르면, 세조는 조선 시대에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군왕이었다. 철저히 정치적 업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그를 비판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찬양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 세조의 업적을 기리는 이들은 많지 않다. 되레 입에 담을 수 없는 비난이 난무할 뿐이다. 사람들의 인식 저변에 깔린 사고가 과연 무엇이길래,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은 올바른 도리인 '정의'(正義)에 대한 갈망인 듯하다. 아무리 세조가 권력을 잡고 업적을 남겼다 할지언정, 사람들은 그가 근본적으로 정의롭지 못하다고 판단해 폄하한다. 우선적으로 정의가 선행돼야 해당 역사와 인물도 비로소 정당성을 얻게 된다. 세조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영원토록 정당성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반면 단종과 그를 지키려 했던 사육신은 사람들이 매우 세밀한 것까지 기린다. 이들이 당시 국가와 백성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준 게 없음에도 그러하다. 정의와 동정의 관점에 입각해 역사적 정당성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단종과 세조의 사례를 통해, 그 옛날 사마천이 던진 물음에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하늘의 도'라는 게 있는가?" 하늘의 도는 분명히 있다. 단지 유예될 뿐이다. 역사는 얼핏 보기에 엇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최종적으로는 올바른 방향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이 같은 진리를 과거에도 보았고, 앞으로도 보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메인에도 실렸습니다.

정치적 업적은 대단했는데 '공공의 적'이 된 세조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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