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도전이 던진 질문, 청소년과 ‘좋은 정치’의 조건
오는 6월 3일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김해시의원 선거에 도전장을 낸 18세 고등학생의 등장은 우리 사회에 작지 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창원대산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김태훈 학생은 김해 라 선거구(진영읍·한림면)에 예비후보로 등록하며 “시민과 함께 진영과 한림의 미래”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18세 고등학생의 정치 도전은 단순한 이슈를 넘어, “정치는 과연 어른의 전유물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복기시킨다. 분명 정치 참여의 문턱은 낮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 문턱을 넘어선 이후, 청소년이 마주하는 정치의 현실은 여전히 험난하고 복잡하다.
오늘의 정치 환경은 혐오와 적대, 진영 간 대립이 앞선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 문화가 더 이상 성인 사회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온라인과 일상 속에서 청소년 역시 그 영향을 그대로 경험한다. 그들이 처음 접하는 정치가 ‘토론과 존중’이 아니라 ‘비난과 편 가르기’일 때, 정치는 삶을 이해하는 도구가 아니라 타인을 공격하는 언어로 왜곡된다. 그 결과 청소년은 정치에 대한 기대보다 불신을 먼저 배우게 될 것이다. 나는 청소년의 대화에서도 왜곡되고 편협한 정치 생각들을 종종 듣곤 했다. 안타까웠고 미안했다.
그렇다면 청소년에게 필요한 진짜 정치 경험은 무엇인가. 단순히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을 넘어, 문제를 읽고 맥락을 이해하며 변화를 만들어내는 ‘정치적 효능감’을 체득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 과정에 학교 교육, 특히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독서와 토론의 역할은 매우 중요해진다. 한 청소년 독서 프로그램에서는 학생들이 사회 문제를 책을 통해 읽고, 이를 자신의 삶과 연결해 질문으로 확장하는 경험을 한다. 통학로 안전, 청소년 문화공간 부족, 지역 환경 문제와 같은 일상의 불편이 하나의 질문이 되고, 그 질문은 자료 조사와 독서, 토론을 거쳐 구체적인 정책 제안으로 이어진다. 일부 제안이 실제 지자체 논의로 연결되는 경험은, 정치가 먼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연결된 현실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활동을 넘어 청소년에게 ‘정치적 효능감’을 형성한다.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경험이 반복될 때 정치는 멀어지지만, 목소리가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현실적 믿음을 얻는 순간 정치는 ‘나의 문제’로 연결된다.
나는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독서의 힘을 강조하고 싶다. 독서는 다양한 관점과 맥락을 만나는 과정이며, 이는 청소년이 편향되고 왜곡된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토론과 질문이 더해질 때, 갈등은 ‘대립’이 아니라 ‘조정’의 문제로 전환된다. 중요한 것은 누가 옳은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함께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태도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주주의는 교과서의 개념을 넘어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의 많은 청소년 참여 제도는 여전히 ‘의견을 듣는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참여의 기회는 열려 있지만, 결정 과정과의 거리는 멀다. 이 간극이 지속될 때 청소년의 경험은 단절되고, 참여는 형식에 그칠 위험이 있다. 결국, 좋은 정치란 참여의 문을 여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참여가 실제 변화로 이어지도록 책임지는 데서 있다. 오스트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여러 나라에서는 16세부터 선거권을 보장하고 있다. 청소년을 ‘아직 준비되지 않은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을 더 넓히는 선택이 될 것이다. “니체의 가장 일반적인 기획은 의미와 가치라는 개념을 철학에 도입하는 것이다.”라고 철학자 들뢰즈는 말했다. 정치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계속 물어야 한다. 의미와 가치는 정치를 이롭게 하고 지속 가능성을 풀어낸다.
이에 청소년을 정치에 참여시킬 것인가가 아니라, 이미 참여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제대로 만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좋은 정치는 거창한 이념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 목소리를 끝까지 반영하려는 의미와 가치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청소년 역시 마찬가지다. 입시와 진로, 관계, 지역 환경 등 자신의 삶과 맞닿은 문제를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정치적 감각을 키워가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정치적 존재라 했으며 넬슨 만델라는 교육은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 말했다. 이 두 문장은 결국 읽고, 이해하고, 질문하며 참여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정치라는 사실임을 말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엘머 에릭 샤츠슈나이더는 "시민의 삶은 정치의 원천이다"고 했다. 청소년은 내일의 유권자가 아니라 ‘오늘의 시민’이다. 이들의 목소리가 공허한 외침에 머무르지 않고 제도적 변화로 이어질 때, 우리 정치는 비로소 세대 간 단절을 넘어 ‘좋은 정치’로 나아갈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청소년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가 삶의 변화로 이어지도록 책임지는 일이다. 그 출발점에는 ‘읽고, 이해하고, 참여하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환경으로 바꾸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