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책방은 잘 어울린다. 무르익어가는 책방은 가을처럼 고즈넉함을 품었다.
책방은 주인장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어 삶이 머물러 있다. 요즘 책방은 책방지기만이 풍기는 그 공간의 매력이 숨겨져 있어 찾는 이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오늘도 숨겨진 매력의 책방을 찾아 나선다.
마산합포구 육호광장 부근에 아주 작은 책방이 불을 밝히며 손님을 기다린다. 겨우 몇 사람이 들어갈 정도이지만 그 공간은 사람 냄새나는 따뜻함을 품고 있었다.
책방의 박연숙 대표는 ‘시인 백석이 1936년(당시 24세)자신이 흠모했던 통영 여인 란(蘭)을 만나기 위해 마산역사(현 육호광장)를 나와 통영으로 가는 배를 타려고 불종거리를 따라 걸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책방 이름을 지었다.
버스정류장을 오가는 이가 잠시 의자에 앉거나 쉼터가 되어주는 책방의 거리는 또 다른 멋스러움이 풍겼다. 빨랫줄에 걸린 사진과 젊은 여성작가의 얼굴, 그림책의 표지가 거리를 오가는 이에게 눈길과 호기심을 불러 모은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남편 신태균 씨의 작품이다. 오랜 수집 활동을 통해 책방과의 의미를 부각하고자 했다.
3년이 지나도 책방 부부의 일상은 늘 똑같았다. 하지만 온기 있는 풍경을 만들어가는 그 공간은 늘 변하고 있었다. 책방은 시집과 그림책, 지역작가가 출간한 책과 젊은 여성작가의 책들로 채워졌다. 그중에서 백석 시집은 늘 인기가 많았다.
신태균 북 큐레이터는 방송이나 독서 팟캐스트에 나온 시집과 책을 선정하여 구입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시집을 추천하는 것은 대형서점에서 흉내 낼 수 없는 우리 책방만이 가진 매력이랄까? 공간이 협소하여 책모임은 하기 어려워도 쉽게 닿지 않은 시어들처럼 그 여운이 오래 머물게 하는 곳이다.
커피를 마시려 오기도 하지만 우연히 찾아오는 손님은 책과 함께 인연으로 이어진다. 퇴직하여 남파랑길을 여행하다 책방에 들러 차도 마시고 책도 구입하는 손님부터 블로그로 인터뷰하고 소통하다 직접 책방에 들린 3명의 여고생은 따스한 환대에 방명록에 감사함을 남겼다. 책방 앞에는 거울이 있다. 잠시 쉬고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거울처럼 사람들이 부담 없이 찾는 공간이길 바랬다.
박 대표는 요즘 시의 위로가 절실함을 이야기했다. 그중 시인 서정주의 <자화상>를 읊었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숯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어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 마냥 헐덕거리며 나는 왔다.
서정주의 자화상에서 화자는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자아를 알아간다.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자신을 키운 건 팔 할의 바람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래도 바람같이 떠돈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삶의 처지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 헤쳐 나가며 성장하는 삶의 정신을 배우게 되었다.
책방 부부는 “문을 열고 구경하려 오면 좋겠다. 우연히 들린 곳은 인연이 되고 시를 통해 스며들고 환대하는 따뜻함을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부의 책방은 삶의 놀이터이자, 사회봉사의 터전이다. 책은 지식을 올바르게 사고하고 생각해하는 정신이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더 나은 마음의 양식을 채워가는 것들이 삶의 인문학이 필요하고 책방이 필요한 이유이다.
* 이 글은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소식지웹진 Vol. 38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