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먼 타지에서 무력함을 달래기 위해 헌책방을 자주 이용했었다. 나에게 한 줄기 빛으로, 무일푼으로 책을 읽고 구입했던 곳이었다.
헌책방이 살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낡고 손 때 묻은 헌책을 오롯이 느낄 때가 많았던 시절에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헌책방은 누군가의 삶과 철학, 역사가 담긴 곳이기도 하다. 소소하고 하찮은 오래되었던 헌책이 가진 무수한 사고들의 편린을 우리는 깨우고 살펴보아야 할 때이다.
진주 망경동 골목에 있는 소소책방을 찾았다. 요즘 망경동에는 오래된 골목에 작은 카페, 공방, 헌책방, 독립서점이 들어서 젊은 방문객들이 오가는 핫한 곳이 되었다. 소소책방도 그중 한 곳이다.
과거 진주시내에는 7~8군데 헌책방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4군데 밖에 남지 않아 안타까움을 더했다. 소소책방 조경국(48) 책방지기는 학창 시절 학교 앞 중앙서점을 매일 같이 오가던 단골손님이었다. 그는 책을 접할 기회가 많았고 그 공간이 주는 따뜻함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오래전 꿈꿔왔던 책방의 주인장이 되었다. 책을 좋아했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앙서점 박상목 대표의 영향이 컸다고 전했다.
4번째로 옮긴 소소책방은 원목 테두리에 빨간 벽돌로 둘러 쌓였다. 간판에 부엉이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부엉이는 소소책방의 캐릭터다. 창문에는 독일 사진작가 칼 라거펠트의 액자가 걸렸고 『한국회화 사론』, 『내면 기행』, 『우리 전통 예인 백 사람』, 『장자』, 『흑백사진 만들기』 등의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리가 밝고 또렷하다’ 또는 ‘이치를 밝힌다는 것’ 의미를 담아 소소(昭昭)책방이라 지었다.
오래된 특유의 헌책 내음은 책방 주인장처럼 따스함이 배어 있었다. 딱딱한 새 책의 멋보다는 손때가 묻고 먼지가 쌓인 낡은 책은 사연이 있고 짓눌리는 삶이 있어 정감이 갔다.
단골 헌책방에서 인수한 책과 직접 수집한 책 2만여 권이 있다. 외국소설, 역사, 사회, 종교, 예술, 여행 등 다양한 주제류의 책들이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책 제목만 보아도 눈길이 절로 가 익숙했다. 잠시 과거로의 시간 속으로 책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조경국 책방지기는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이면서 여행가 이기도 하다. 오토바이로 2015년에 한 달간 일본 책방을 순례하였고 2년 전에는 유라시아 대륙을 왕복 횡단했었다.
여기저기 그의 쏟은 정성을 보면 그의 책방에 고스란히 스며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코로나 이후 그의 일상은 책방 운영 외에도 책자를 만들거나 인터뷰를 하는 등 하루 일과가 바쁘다. 책방은 오프라인의 한계로 인해 중고서점을 연계하여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었다.
“예술서로 유명한 교토의 세이코샤 책방처럼 독립적으로 온라인 사이트를 구축하여 헌책을 팔고 싶다고” 밝혔다. 소소책방에서는 다양한 글쓰기 강의와 독서모임, 글쓰기 모임, 북 토크 등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어 공간의 가치를 높여 주고 있다.
조경국 책방지기가 좋아하는 문장이 칠판에 또렷하게 적어 놓았다.
“책은 한껏 아름다워라 그대는 인공으로 된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또는 제왕이기 때문”
헌책을 파는 것보다 원형 그대로 훼손되지 않고 보관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를리외르’ 순수한 아름답게 제본하는 프랑스의 제본 장인처럼 그는 책 제본을 위해 제대로 배워 보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헌책방 지기의 사명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어려운 현실에서도 하찮은, 버려지는 헌책의 생명을 불어넣어 새 주인을 만나고 당장 책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그 가치로운 책의 주인을 만나기 위한 수집과 보관, 수리하는 것이 책방지기의 역할이라고 했다.
소소책방에는 책이 마지막으로 쉬어갈 수 있도록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헌책들의 반란이 늘 서성거리고 있다는 것임을.
책 추천을 부탁했다. 『손으로, 생각하기』는 손과 몸을 쓰는 가치, 그리고 그것이 공허한 우리 삶에 미치는 치유의 효과를 소개하는 책이다. 직접 손으로 갈고닦고 기쁨을 주는 것 외에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어 헌책방 지기로서의 일의 기쁨과 가치를 주었기 때문이라면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조 책방지기는 “사진만 찍지 말고 도움이 되는, 어디선가 꽂혀있는 나만의 인연 책을 찾아가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헌책방은 누군가의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인연의 공간으로 세월이 지나도 보물 같은 존재다. 낡고 오래된 것들의 아름다움을 빛나게 하는 것은 우리의 현재, 미래 몫으로 남겨 두었다.
1926년 출간된 <HEIDI>
* 이 글은 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 알려드리는 소식지 웹진 Vol. 39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