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집짓기3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한무 Nov 17. 2023

집 짓기라는 도전

집 짓기는 나에게 좌절된 꿈을 대신해 성공 경험을 가져다줄 훌륭한 목표였다.  


나는 어릴 적 꿈이었던 치과의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등학교 때, 대학교를 중퇴하고 재수학원에서, 결혼 후에 세 번이나 입시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잇따른 시험의 실패는 내게 큰 좌절을 안겨주었다. 힘겹게 잡고 있던 그 꿈을 마침내 포기했을 때, 홀가분했느냐 하면 아니다. 패배의식에 젖어 살았다. 끝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중간에 포기했다는 생각에.


집 짓기는 시험과 다르다 생각했다.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나를 맞추고 합격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니 어떻게든 끝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집이라는 실체는 반드시 나타날 테니까 성공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었다. 집을 짓고 나서 패배감에 휩싸여야 했으니까.


꿈꾸던 대로 짓지 못했기 때문에, 남들이 정해 놓은 기준은 없었지만 내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실이 자꾸만 패배감을 깊게 만들었다. 결과물도 그렇거니와 집을 짓는 과정 또한 내가 기대했던 좋은 건축주로서의 성숙한 모습과는 상반되었다. 사람들과 상처를 주고받으며 겨우겨우 다리를 끌며 갔을 뿐이었으니. 부족한 나를 여실히 확인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는 그랬다.


그러나 패배의식의 반대편에는 마침내 집을 지었다는, 드디어 끝을 보았다는 성취감 또한 분명히 있었다. 그것은 계속된 실패에 절망하여 위축되어 있던 나를 다시 일으켰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 등반을 마치고 돌아온 등산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하는 데는 몇 천만 원하는 입산비를 포함해 1억 내외의 큰 비용이 든다고 한다. 그는 중간에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어도 몇 년간 준비하고 큰 비용을 투자한 것이 아까워 죽을 고비를 넘기며 정상을 밟고 왔다고 했다. 그는 세븐서밋이라고 불리는 세계 7대 최고봉을 모두 정복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아니, 이거 집 짓기랑 너무 비슷한데? 집 짓기라는 도전에 큰 비용을 들이며 몇 년 동안 준비했고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은 고비도 넘기며 마침내 집을 지었으니 에베레스트 등반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힘든 과정이었어도 또 다른 도전을 꿈꾸고 있다는 점도.


집을 짓고 나서 달라진 점 중의 하나가 바로 이거다. 또 다른 도전을 꿈꾸고 있다는 것. 예전에는 해보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나와 다른 세상의 것이라 치부하며 감히 생각도 못했다면, 이제는 '쉽지는 않겠지만 한 번 해보자,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게 아니라, 여전히 실패가 두렵고 두려움에 옴짝달싹 못할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한 발 한 발 내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성장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적어도 내 실체를 깨닫는 복을 얻기도 한다.


작가는 ‘글쓰기는 내가 쓸 수 없는 것을 겨우겨우 쓰는 것’이라 고백했다. 오랜 시간 여러 권의 작품을 쓴 작가에게도 글쓰기란 겨우겨우 써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많은 위로가 되었다.


준비기간을 포함해 4년 간 집을 짓고 6년째 주택살이를 하고 있는데 모두가 겨우겨우였다.  10년간 겨우겨우의 삶을 통해 나는 천천히 성장해 왔다.


여전히 겨우겨우 살고 있지만, 겨우겨우인 나 자신에 대해 예전만큼 힘들어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 내게는 참으로 큰 자유이다.


꿈을 이루었다고 기대했던 대로 멋진 나로 변신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한 걸음씩 나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매일 지난한 일상을 더듬거리는 가운데서도 기쁨과 감사를 찾고, 도전하며 성장해 나가야 할 운명이라는 걸 배웠다. 집 짓기라는 도전이 내게 준 선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입주 후에도 집 짓기는 진행 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