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네가 인기 많은 게 아니라 스티커가 인기 많은 거야
아이가 할머니 집에 갈 때마다 쥐어주시는 만원을 가지고 집 근처 마트에서 보석 모양 스티커를 샀다. 한 장에 6천 원이라 스티커 치고는 고퀄이다.
반짝반짝 고퀄 입체 스티커를 가지고 유치원에 가니 친구들이 신기해하고, 나눠주니 좋아했나 보다. 아이는 주말마다 할머니 집에 가서 그 스티커를 사서 유치원에 가져갔다.
어느 날 집에 와서 남은 스티커를 가방에서 빼더니 말했다.
아이: 엄마 나 인기야
나: 친구들한테 인기 많다고?
아이: 응 나 인기 많아
나: 무슨 일 있었어?
아이: 보석 스티커 달라고 애들이 줄 서고, 여기여기 붙어라 하면 뛰어와
올록볼록 입체감 있고 보석이 박힌 한 장에 6천 원짜리 스티커는 당연히 애들 시선을 사로잡게 생겼다. 그중에서도 제일 큰 보석이 박힌 스티커가 있는데, 그건 1개뿐이니 그걸 달라고 아이들이 서로서로 아이에게 온 거 같았다.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물건으로 상대의 마음을 얻으려 하는 아이가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스쳐
"그런데 OO야, 그건 OO가 인기 많은 게 아니라 스티커가 인기가 많은 거야"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순간 아이가 아주 창피해하는 거 같았다.
"나도 알아"하더니 얼른 딴청을 부렸다.
아이는 굉장히 쑥스러움도 많고, 부끄러움이 많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밌는 물건 친구들이랑 나눠가지면서 놀 수도 있는 건데 내가 너무 과민 반응했나 싶어서 너무 미안해졌다.
어느 날은 스티커를 가방에 챙기지 않은 걸 알고 유치원에 가는 길 내내 불안해했다.
아들 : 나 오늘 OO이한테 그거 주기로 했단 말이야
나 : 내일 주겠다고 하면 되잖아. 운전 중인데 그것 때문에 지금 돌아갈 순 없어.
아들 : 안돼. 그럼 OO이한테 혼나
나 : 혼난다고?
나는 '혼난다'라는 표현을 듣고 아이가 혹시 흡사 빵셔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닐지 상상의 나래가 뻗어지기 시작했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아직 표현력이 서툴러 혼난다고 표현하는 거 아니겠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남편 말을 들으니 또 그런 거 같기도 했다. 친구가 주기로 해놓고 왜 안주냐고 말하는 걸 혼난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이는 이후 스티커 가지고 놀았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가 인기 많은 게 아니라 스티커가 인기 많은 거야"라고 너무 정확히 말하니 나는 또 마음이 무너졌다. (무너진다는 표현이 웃기긴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이한테 너무 미안했다)
스티커 나눠주면서 잠시 인기 좀 만끽해보는 게 좀 어떻다고 콕 집어 그렇게 말했는지 후회감이 밀려왔다.
스티커 한 장으로 이러고 있는 내가 웃겼다.
스티커를 나눠주다가 용돈 탕진도 하고, 스티커가 없어졌을 때 친구들이 예전 같지 않다면 현타 좀 느껴보고, 또 그러는 사이에 마음 맞는 친구도 사귀고 그러면 될 것을!
그러고 보니 열심히 보석 스티커를 사다 나르던 일도 잠잠해졌다.
어차피 잠시 그러고 말 것을 "나 인기 많아" 한 마디에 과민반응하는 엄마라니.
세심한 엄마가 아니라 과대망상 엄마가 된 기분이다.
봄인가 초여름에 써서 보관함에 두었던 글인데, 가을이 된 지금 보니 역시나 괜한 걱정이었다.
뭐든 '이런 것도 한 때'라는 시부모님 말대로 열심히 스티커를 사서 나르던 것도 한 때고, 지금은 동전 넣고 돌리면 장난감 나오는 뽑기에 빠졌다.
신난 아이에게 '네가 인기가 많은 게 아니라 스티커가 인기 많은 거야'라고 했던 말은 여전히 후회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