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대안 영상문화의 비상구,
대전 시네마테크 컬트

by 황규석


시네마테크란 무엇인가? 국내 시네마테크의 역사는

그리고 대전지역 영상문화를 이끌어 가는 문화단체로서의 대안으로 '컬트를 소개한다


글. 황규석(대전 시네마테크 컬트 대표)

20230618_213743.jpg

시네마떼끄란 무엇인가?


시네마테크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사설 영화자료실의 이름이자 관객이 중심이 되는 영상 문화 운동을 일컫는다. 영화 필름과 영화에 관한 모든 자료를 수집하여 보관하고, 보여주며 또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공간이다. 시네마테크(Cinémathèque) 용어는 프랑스의 '시네마떼끄 프랑세즈'라고 해서 씨네필인 1936년 프랑스인 앙리 랑글르와(Henri Langlois)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열정으로 시작하여 뜻이 있는 영화인들의 도움으로 설립한 것이 시초다. 이곳에서는 영화 탄생국인 프랑스의 오래된 영화의 당시의 필름뿐만 아니라 각종 영화와 관계된 자료를 수립하고 복원하며 상영과 전시하는 일을 하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모임이 생겨서 문화집단으로서 역할이 강조되었다. 이곳에서 영화를 보고 비평하고 또 즐기는 활동은 이후에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나 영화를 분석하는 비평가의 탄생을 가져오게 되었다. 또한 세계를 장악한 할리우드 양화와 견주어서 아직도 상대적으로 건재한 프랑스 영화의 든든한 토양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후에 이런 시네마테크의 성격을 미국과 일본, 캐나다, 영국 등 각지 다른 환경에서 생겨나 자국은 물론 다양한 나라의 명작등을 상영은 물론 다양한 문화운동으로 분화되어 그 역할이 중요해지고 정부나 사회의 각종 지원 속에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시네마테크


우리나라의 시네마테크라고 할 수 있는 단체들은 처음에는 외국의 문화원을 중심으로 한 영화 보기 모임에서, 또 대학의 영상모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서울의 프랑스 문화원에서는 '씨네클럽', 독일 문화원에서는 '동서문화 연구회', 그리거 서강대학교에서 '서강 문화공동체' 등이 나름대로 정기영화 상영과 자료의 확보 그리고 연구 모임을 해왔는데. 그것이 70년대를 지나 80년대로 넘어오면서 비디오라는 매체와 함께 다양한 이름으로의 시네마테크적인 성격을 갖추고 열혈 영화광들의 노력으로 서서히 그 활동 영역이 지방으로까지 확대되어 갔다. 1세대 시네마테크 사람들, 즉 문화원 사람들은 현재 계속 공부를 해서 감독이 되거나 후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2세대 사람들은 탄압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영화사는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정치, 문화사에서 태어났고 군부 독재 그리고 검열이라는 제도적 당치에 의해서 올바른 영상문화를 만들지 못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의 시네마테크들은 당국의 규제를 받아 그 자리가 위태로워진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검열이라는 장치를 비롯한 영상문화에 관련된 불공정한 영상 관련 법에 의해 우리 시네마테크가 제대로 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영상문화의 시대는 나날이 급변하고 달라지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90년대 초반에 서울의 '문화학교 서울'을 비롯하여 '씨앙씨에', '영화공간 1895', '천안 영화공방', '부산 시네마테크 1/24', '광주 굿 펠라스' 등이 지속적으로 관객과의 다양한 만남을 이어가고 학습이 이루어짐으로써 명맥을 이어오고 있단, 그리고 90년대 중반에 대구, 광주, 대전, 부천, 제주 등에서 시네마테크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서울이라는 자본과 인력과 시장이 집약된 도시를 제외하곤 나름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이다. 일단 재정적으로 회원들의 회비에 의존하여 영상 자료의 질 좋은 확보가 부족하고 이런 영상문화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인자가 부족하여 운영과 연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국 시네마테크 연합의 결성


이런 각개전투식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없애보고자 작년 '제1회 부산 국제영화제' 때에 전국의 시네마테크 운영자들이 한데 모여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지방을 순회하며 우리 시네마테크의 회원들은 각 지역의 활동을 함께 이야기하고 듣고 고민을 나누고 희망을 꿈꾸기 시작했다. 물론 "시네마테크란 무엇인가"라는 개념의 정의를 먼저 내려야 했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문화의 특수한 지형도에서 살아나가려 애쓰고 있는 시네마테크가 지향해 나가야 할 부분에 대해서 많은 논의를 거쳤다. 일단 우리 운영자들은 시네마테크 활동이 연대를 통해서 각종 다양한 영화의 정보 교환은 물론 함께 활동할 공약수를 찾고 서로 의지하고 도움이 되기로 하였다. 그리고 관객, 그러니까 누구보다도 자유롭지만 반대로 그 누구보다도 정열적이고 한국에서의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정책, 연구, 기획, 홍보, 배급이라는 외형적인 틀과 지역을 돌며 대표자 사무국 회의를 개최하고 연합의 정관 등 내부의 단단한 활동과 결속을 위한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만큼 많은 고민을 나누고 토론을 통해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바로 지난 5월 연세대학교 동문회관에서 '전국 시네마테크 연합(KOREA CINEMATHEQUE FEDERATION)'이라는 단체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대전의 '시네마테크 컬트'는 정책분야를 맡아 연합의 정관 초안을 작성하고 시네마테크 연합의 의의와 위상을 정립하는데 힘을 보탰다. 아울러 작년 10월 영화의 사전 검열이 위헌이라는 대법원의 판결 이후로 우리 시네마테크 차원에서의 대흥책을 서서히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과 영화 주제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독립영화에 대한 지지는 기본으로 우리가 지향하고 추구해 나가야 할 가치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서울에 편중된 영상문화에 대한 집중과 편식을 해소하여 지방의 영화관객들에게 다양한 영화 영상문화의 자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다짐을 하였다.


대전의 영화 영상문화운동을 위해


97년 시작한 '제1회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와 96년 시작하여 97년 올해 더욱 성장하고 발전하여 성공한 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우리 시네마테크 사람들은 직접 참가하고 참관하여 직접 그 열기를 느꼈다. 그리고 희망을 발견하여 한껏 고양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축제가 끝나고 활동 근거지인 지방에 돌아오자마자 우리들은 그동안 상존한 나름대로의 내부 문제와 운영상의 문제에 봉착해서 더없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미디어의 발달은 더 이상 사람들의 발걸음을 서서히 우리의 어둡고 칙칙한 시네마테크로 향하지 않고 있다. 아무런 지원 없이 얼마간의 회원들의 회비로 사무실을 운영해 나가야 하는 일차적인 생존의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눈이 높아진 관객들의 이탈 등 많은 어려움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이다.


이제 이곳 '대전 시네마테크 컬트'는 기존 컬트의 시네필 회원뿐만 아니라 일반 대전 시민들에게 영화의 미랴와 컬트의 미래를 보여주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시네마테크와 일반 영화관객과의 만남 역시 더욱 새롭게 달라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마니아를 위한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열린 영상문화의 '시립 도서관'의 형태로 문화수요자의 다양한 욕구를 위한 공익의 역할을 담당하게끔 접근 방식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토론하는 공부하는 모임이나 자연스럽게 직접 카메라를 들고 영상물을 제작하는 모임 등 세분화된 모임을 적극 활성화시켜 나갈 것이다. 그리고 시네마테크의 기본인 다양하고 내실 있는 영화감상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상설화하여 찾아오는 시네마테크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런 컬트의 색다른 노력과 시도가 뿌리를 내린다면 나름대로 한국적인 시네마테크의 전형을 이곳 대전에서 시작하고 완성할 수 있는 희망을 가지리라 생각한다. 그 바람과 희망이 확신이 되기 위해서 "앞으로도 '대전 시네마테크 컬트'를 많이 사랑해 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십시오'라고 대전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부탁의 말씀을 이 자리를 빌어서 드린다.


p.s 시네마테크(Cinémathèque)는 프랑스어다. 영화 자료 보관소, 영화 박물관, 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등을 뜻한다. 원래 프랑스식 발음 그대로 '씨네마떼끄'라고 했지만,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시네마테크'로 일원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