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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규석 Oct 29. 2024

月刊 영화세상 창간1호~제12호 편집 & 활동

영화세상 <대전 시네마테크 컬트>

영화세상 4, 5, 6, 7호 표지들
"서로 교류하며 영화세상을 같이 만들어요"

  저도 영화를 보고 난 뒤 뭔가 오래 기억하기 위해 뭔가를 챙겨가기 시작했습니다. 영화표, 극장에서 나누어주는 선전지(전단지)를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간혹 커다란 포스터도 말이죠. 영화를 보는 것은 학교 단체체 관람을 가면서 서서히 좋아했고 주말에 하는 텔레비전의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 토요명화 등을 즐겨 보았습니다. 그리고 노트와 일기장에 영화 감상문을 쓰고 있었습니다. 제대 후 복학을 하고 잡지를 정기적으로 구독하던 저는 우표를 안 붙여도 보낼 수 있는 소인이 생략된 관제엽서를 사서 보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입니다. 1993년 8월 월간 영화잡지 SCREEN 독자게시판 뒤에 '스크린 게시판'이라는 코너에 제 엽서 내용이 소개가 됩니다. 그 스크린 게시판의 부제목은 '시네마켓'이라는 이름이었죠. 당신 인기가 있었던 홍콩 영화 스타들의 브로마이드나 스크린 과월호를 교환하거나 파는 곳입니다. 한마디로 지금의 당근마켓이라는 개념의 공간이었죠. "영화 포스터와 자료 수집을 함께 하고 영화 정보 교환에 관심 있는 분... 영화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다니던 학교 주소와 이름을 남겼습니다. 저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자료 수집도 도움도 돼도 친구도 사귀고 말이죠. 이 일이 나중에 시네마테크를 운영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1호는 자기소개서만 2호부터 목차 만들어"

   부산, 대구, 서울, 구미, 평택 등지에서 12분이 저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편지들은 자신의 영화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드러낸 자기소개서 편지였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13명의 소개서를 옮겨서 영화세상 창간호가 나왔습니다. 한 페이진 영화계 짧은 소식이 들어있었네요. 총 10쪽짜리 복사와 제본을 해서 주소지로 보내주었습니다. 다시 또 답장이 왔습니다. 이번 에는 자신들의 영화감상문을 보내왔습니다. 그런 감상문과 늦게 잡지를 보고 새로 오신 새 회원 소개가 이제 기본 내용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제가 본 프랑스 흑백고전 영화 감상문 시리즈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잡지와 신문의 흥미로운 기사를 옮겨 내용을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2호부터 비로소 '차례' 즉 '목차'가 만들어졌네요. 1, 2호는 컴퓨터가 없어서 컴퓨터가 있는 친구, 선배의 자취방을 전전해서 만들었지요. 2명이 신규 회원이 추가되고 마지막 주소록 27페이지가 나왔으니 두 배 이상 내용이 늘었네요.


    

신문의 영화광고를 잘라 A4용지에 붙이고 코팅을 한 작업물
               "3호부터 486SX 컴퓨터를 할부 구입, 자체 편집을 시작!"            

   제대 후 제가 건설현장 알바를 종종 했거든요. 어머니가 일하는 도축장에서도 틈틈이 일을 도왔습니다. 그래서 486SX 컴퓨터를 할부로 구입을 해서 3호부터는 집에서 편집을 시작했습니다. 3호부터 24호까지 그러니까 2년간은 아주 초보적인 아래아 한글로 조잡한 편집이었습니다. 독수리 타법으로 그래도 열심히 자판이 부서져라 글자를 손가락 2, 3개로 쳤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제가 서울 동숭아트 센터 지하의 영화 관련 굿즈 매장이었던 KINO도 들락날락했습니다. 종로 3가의 서울극장, 단성사, 피카디리, 충무로의 대한극장, 명보극장 등을 다니기도 하면서 영화 전단지를 많이 챙겨 내려와서 그 소식지에 많게는 10장씩 끼워 보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반송 우표도 받기도 하였습니다. 여하튼 제가 대전에 사니까 그런 점은 좋았습니다. 서울을 편하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서 선진(?) 문물을 쉽게 경험하고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사양이 낮은 프린터라 한꺼번에 제가 많이 출력을 하니까 고장이 나기도 해서 자주 속을 섞이기도 했습니다.


회지를 만드는 건 꿈을 기록하고 날개를 다는 행동

   회지를 만들 생각을 어떻게 생각했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그냥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아요. 당시에 복학한 학교 생활에서는 점점 흥미가 떨어지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월간 스크린을 통한 '영화세상' 제겐 정말 소중한 운명 같은 존재로 다가왔습니다. "늦은 밤 1시 5분. 집에서 2호 편집의 교정을 보는데 저번 1호보다 더 풍성한 읽을거리가 있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중략.... 어찌 보면 꿈같은 일이다. 영화잡지에 빈신반의 하며 소식을 쪼그맣게 실은 것이 나와서 이제껏 많은 편지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계속 이어져 나가려면 보다 많은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이런 많은 참여와 열정이 있다면 좋겠는데... 계속" 당시의 일기장을 찾아 펼쳐보았어요. 걱정과 어떤 놀라운 기쁨으로 설레었던 25세 영화광의 들뜬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복학한 학교에서 사람에 치이고 공부도 하다가 이게 맞는 길인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뭐에 확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반대로 가정 형편은 좀 더 어려워지고 있었습니다. 2호는 표지두꺼운 비닐 코팅을 해 고급스럽게 보이도록 해서 권당 3500원이 제작비로 들었네요. 20권을 만들어 발송비 포함 7만 원이 회지 제작비로 나갔습니다. 우편 요금은 460원이었습니다. 영화세상 2호를 1993년 10월 13일 수요일에 발송했는데 사흘 전 10월 10일 서해에서 끔찍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 200명 이상이 숨지고 아직도 시신을 찾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던 때였습니다.


영화세상 1주년 축하모임 대전
  "지역 회원들과의 상호 만남을 통해 서로 친밀감을 높이다"

   회지에 연재되는 내용은 모두가 보면 흥미로운 내용을 찾기 위해 잡지를 뒤지고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면서 팸플릿을 모으면서 준비를 했습니다. 6호부터 시작한 연재 시리즈인 세계 영화 기행은 한국일보 특파원들의 글로 옮겨 실었습니다. 영화촬영장과 대사를 영국, 미국, 프랑스 현장에서 직접 가서 쓰신 글이 너무도 매력적이게 느껴진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일간지의 사설에서도 옮겨오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당시의 영화계 이슈를 알기 쉽게 정리해 주자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8월호 잡지를 보고 나중에 다시 편지가 오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지금처럼 휙휙 빨리 넘어가는 시대가 아니라 돌아보고 곱씹어보는 아직 미디어나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삐삐 연락처를 적어놓기도 했으니까 디지털시대로 넘어가기 전의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 친구들도 신이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보내주었습니다. 3학년 인 제가 당시 학회장을 했는데 매주 강의실에서 비디오로 프랑스 영화 보기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제라드 드 빠르지요의 '내겐 너무 이쁜 당신'은 3명의 학생이 보았고 '퐁네프의 연인들'은 10명이 모이는 대성황이었습니다. 본거지인 대전의 영화세상 친구들이 첫 대면 모임을 했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한국 영화 이덕화 주연의 '살어리랏다'를 정종향, 박병우, 김영애 회원님과 같이 보았습니다. 다방에 가서는 선물도 서로 교환했습니다. 저는 제임스 딘 사진엽서를 준비해 주고 그리고 신시사이저 음악으로 유명한 반젤리스 작곡가의 영화음악 카세트테이프를 받아서 집에서 자주 듣기도 하였습니다. '블레이드 러너'의 그 불확실한 미래 앞으로 내다볼 수 없는 우울한 인간 혹은 휴머노이드의 마음.

1회 여름 영화갬프  -베어스타운- (영화기획정보센터 주최)
"현장 체험과 자료의 수집으로 회지의 속살을 찌우다"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는 남산자락에 있었는데 종종 그곳 시사실에 갔습니다. 거기 둘러보다가 한국영화인협회 사무실이 보여서 그곳에 가서 인사를 하고 김혜준 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혜준 님에게서 얻은 자료집의 원고를 그래서 여러 번 싣게 되었습니다. 4호가 12월에 안 못 나오고 1월에 나온 이유는 12월 25일 컴퓨터의 원고가 입력하다가 저장을 못하고 다 날아가버린 참사가 있었네요. 학교는 3학년 마치고 휴학을 했습니다. 공부도 손을 놔서 학회장 장학금도 놓치고 창피도 하고 선배들과 관계도 틀어져서 더 이상 학교에 나가기가 싫었습니다. 어머니의 도축장 일을 직장차럼 다녔습니다. 돼지와 소를 잡는 일이었습니다. 오정동 도축장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거기서 돼지와 소의 목을 따서 나오는 피로 선지를 만들어서 정육점과 식당에 팔았습니다. 그나마 영화세상을 만들면서 현실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새해 1994년 1월 1일 늦은 밤, 귀한 손님이 왔습니다. 부산에서 최종원이라는 우리 영화세상 회원이 절 만나러 고속버스를 타고 왔습니다. 나중에 3년 후 영화세상이 시네마테크 컬트로 합병되어 영화문화 운동을 할 때도 부산에서 트렁크를 들고 대전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지내면서 살았죠. 시네마테크 사무실에서 공포영화 '킹덤' 극장 상영 이벤트를 하는 등 절 도와 많은 컬트에서 많은 일을 같이 했습니다. 너무 고마운 친구입니다. 지금 부산에서 '아휘의 키친'의 오너셰프이면서 칼럼니스트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잘 쓰는 친구인데 앞으로 기대해 봐야겠습니다.

  

월간 스크린 95년
 "비용의 고민도 꺽지 못하는 영화세상 만들기의 즐거움"

   영화세상 5호는 94년 2월 5일 토요일 모두 25권을 찾았습니다. 한 권당 1,020원, 제본비까지 해서 25,000원을 지출했습니다. 회원의 나이 제한을 두지 않다 보니 고등학생들도 많았고 회비의 압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돈을 좀 벌고 있었으니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2월 중순에는 부산에 내려가서 김명선 씨와 울산의 수영님 대구의 고등학생 홍현직 군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 만남의 이야기도 회지에 후기로 재미있게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오프라인 모임도 하면서 더 회지의 살이 붙어나가고 있었습니다. 휴학계를 내고 전 충무로 필동의 한국시나리오 작가협회 부설 영상작가교육원의 6개월 기초반에  접수했습니다. 시나리오를 배우고자 했습니다. 수강을 하러 일주에 두 번씩 통일호 기차를 타고 서울로 통학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영화도 더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에 더 빠져드는 분위기, 모임의 사람들과도 교류를 하고 어머니를 도와 새벽에 나가 일도 하고 회지도 만들고 늘 잠이 부족했습니다. 주중에 두 번은 수업을 들으러 왔다 갔다 해야 했고요.


  아마 늘 충혈되어 있는 제 눈은 이때부터 심해졌을까요? 매주 서울에 올라가다 보니 동숭아트센터에도 가고 남부터미널 위 예술의 전당에 있는 영상자료원에 가서 입구의 자료집도 많이 가져오고 챙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반복되는 회지 입력하다가 코드가 뽑아져서 싹 날아가는 사고는 반복이 되었습니다. 여름엔 한국영화기획정보센터가 주최한 여름영화갬프에 참가하여 그 소식도 회지에 적고 자세히 취재기사처럼 만들었습니다.

대전 대흥동 대흥빌딩 501호 '시네마테크 컬트'의 벽에 남은 흔적
"잠을 줄이면서 마감을 넘기면서 회지는 힘이 붙어 단단해지고"

   우리 회지의 표지는 3호부터 영화의 포스터를 붙여서 사용을 했습니다.  '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도와 토토가 손을 잡은 모습입니다. 특별한 작업은 아니고 회지가 흑백 레이저 프린터를 한 원고를 복사해서 좀 두꺼운 표지의 색상과 디자인을 잡고 제본을 하는 작업 방식이었습니다. 나중에 시네마테크에서는 옵셋 인쇄도 하고 극장, 서점, 도서관에도 조금씩 배표를 한 것에 비하면 디자인이라고 할 것도 없는 좀 어설픈 편집이지만 지금 다시 보니 그런대로 아날로그적인 순수한 감성이 묻어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편집은 24호 그러니까 2년 동안 계속되고요. 2주년이 지난 25호부터는 최정호라는 동갑내기 초, 중학교 동창 친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친구가 컬트에서 많은 충고를 해주기도 해서 지금도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그런대로 회지는 모습을 세련되게 바꾸게 됩니다. 1주년이 되는 12호 회지에는 저까지 주소록에 회원수가 32명이 되었네요. 무언가 기록하고 남겨두는 것 그것이 제가 그 어떤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을 하여 계속하는 일입니다. 때론 한두 줄의 문장의 열 장의 컬러 사진 보다 더 많은 이야기와 감정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엔 영화세상 13호부터 24호까지의 월간 영화세상의 목차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화세상 1주년 모임, 맨 오른쪽 현재 대전 아트시네마 대표 강민구님




시네마테크 컬트의 옛 사무실,  2년전 방문 했을때도 아직 흔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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