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을 위한 기록은 의미가 없다고 늘 생각하면서 영화세상 모임을 이끌고 회지를 만들었습니다. 1년을 끌고 가다 보니 이제 편집도 익숙해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새로운 회원들도 꾸준히 늘어났습니다. 좀 더 다양한 내용을 담기 위해 고민을 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에게 유용한 정보는 좀 더 많은 참여를 늘리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학교는 휴학을 해서 시간을 좀 더 우리 영화세상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늘 기본이 되는 것은 친구들의 영화이야기 코너였습니다. 이 코너가 뼈대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노트에 그냥 쓰는 글과 사람들에게 읽힐 것을 생각하고 쓰는 글은 기본부터 좀 다르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자기가 쓴 영화감상문이 딱 비록 복사지만 묶여 목차가 있는 책자로 나왔을 때의 기분은 그것을 해본 사람만이 느끼는 즐거움이자 행복이었습니다. 또한 표지에 들어간 영화를 고르는 것도 많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표지에서 어쩌면 호기심과 관심도가 쭉 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보지 광고를 통한 대전 회원의 참여 확대"
제가 써 놓았던 영화감상문은 프랑스 흑백 고전영화시리즈(죄와 벌, 전원 교향악, 무도회의 수첩)를 끝낸 저는 황규석영화일기라는 코너로 영화감상문을 올렸습니다. 회원 중에 서울에 사는 한성수라는 친구는 만나 보니 수줍음을 많이 타는 친구인데 영화도 많이 보고 글 솜씨도 좋아서 늘 원고 청탁 삐삐를 치고 서울에서 대전에서 자주 만나는 친구였습니다. 자기소개서를 보면 지금처럼 개인 정보에 대한 기준이 미흡하고 아직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이라 개인의 주민번호도 올리는 것도 왕왕 보게 됩니다. 노래를 잘하고 키도 적고 언니의 소개로 동생이 친구의 소개로 또 우리 영화세상의 가족이 되기도 했습니다. 회원의 영화이야기, 그리고 신입회원들이 자신의 영화 취향을 밝히고 성격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코너도 인기가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13호(94년 10월)부터 24호(95년 9월) 중에는 제가 사는 대전 지역의 회원이 많이 늘었는데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무료 정보지가 유행이었는데요. 94년 2월부터 그 유명한 교차로와 벼룩시장, 대전의 중앙로에도 유료로 짧은 몇 줄이지만 광고 접수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회원들이 와야 더 많은 회비를 모으고 안정적으로 회지를 제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모임의 공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사무실이든 감상공간이든 전용 아지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딸에게 책 보내지 마라"
94년 10월에 신입회원이 되신 이종철 님은 카이스트 옆 에너지기술연구소에 다니시는 연구원이셔서 그런지 몰라도 디지털, HD TV 등 전문적인 원고도 여러 번 보내주셔서 회지에 실었습니다. 당시에는 잘 이해가 안 되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공학도로서 시대를 앞서기는 분이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조금 미안하게 생각하는 일이 있는데 합본호를 만들어서 그 두꺼운 책을 전달하고 팔러 갔었습니다. 이 종철 님의 아파트로 갔는데 당시 사모님과 어린아이도 있었는데 빈손으로 가서는 책값을 받는데 혈안이 돼서 다른 이야기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기억이 남아있네요. 그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또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회원의 어머니로부터 2월에 전화를 받은 것입니다. 00에 사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회원의 어머니셨는데요. 전화를 받았는데 "공부하는 우리 딸 공부 방해되니까 그 영화세상 책 보내지 말아 달라. 앞으로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연신 고개를 숙이고 "죄송합니다. 너무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했던 기억도 선명합니다.
"창간 2주년 기념 영상문화 발전을 위한 630명 설문조사 결과 발표"
영화계의 흐름을 좇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노력을 했습니다. 이슈가 되는 뉴스를 실었고 영화를 공부하는 코너도 있었네요. 마지막 24호에는
대전의 영상문화 발전을 위하여 630명이 넘는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객관식 문항 10개, 주관식 문항 5개 총 15개의 설문조사. 대전의 회원들이 주말, 평일 함께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서점가, 은행동에 나가서 직접 대면 설문조사에 힘을 보탰습니다.
그 결를 회지에 올렸습니다. 영화세상의 사회적 역할과 지향점을 좀 찾아가는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확장되는 활동 속에서 이제 우리 만의 공간을 가졌으면 하는 욕구가 생겨서 전 이래저래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를 다시 심층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는 다시 37호 그러니까 상영관갖춘 본격적인 시네마테크 활동을 하는 컬트에서 다시 각인하기위해 작성해 발표했습니다.